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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꽃 Dec 19. 2023

죽으면 못 춰! 죽으면 못 춰!

 아주 특별한 삼 남매가 있어요. 첫째는 올해 아흔일곱이고 둘째는 아흔셋이에요. 나의 아버지가 그중 막내로 여든둘이세요. 얼마 전 부모님을 모시고 3주 간격으로 두 분의 고모를 찾아뵀어요. 우리를 만났을 때 고모들의 첫마디가 약속이나 한 듯 같았어요. 

“죽기 전에 니들을 못 보는 줄 알았는데, 보는구나.” 

작은 고모는 아빠를 보시고

“네가 올해 몇이냐?”

“여든 둘이요.”

“근디 얼굴이 왜 그랴?” 열 한살이나 어린 동생의 늙음이 낯설었나 봐요. 고모의 말에 아버지가

“누님은 모르는구먼. 내가 밖에 나가면 이 거유.”하며 엄지를 세워 보이셨어요. 

“애들이 장거리 운전 못하게 해서 그렇지 운전도 하고 일도 해요.” 남매의 대화는 정겨웠어요.

 고모의 아랫집에 사시는 분이 아버지의 친구라고 고모가 말씀하셔서 급 만남이 성사되었어요.

“아이고, 이게 누구여. 만수 아녀? 시~상에 살아있응께 만나네.”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며 반가워하시더라고요. 세분의 표정에는 지난 세월을 훌렁 벗어던진 아이의 웃음이 가득했어요. 


아버지는 한 마을에서 같이 자란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셨어요.

“창수는 어디서 살어?”

“죽었어. 몇 해전에.”

“금자는 살아있어?”

“아녀~ 발쌔 갔어.”

“이름을 대는 족족 다 죽었네.” 

"나이가 어리냐."

거실바닥에 둥글게 앉아 술잔을 부딪히고 큰 소리로 웃으며 만남을 즐기셨어요. 나와 남편은 거실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등에 따스해 잠이 오더라고요. 우리는 슬쩍  빠져나와 고모 침대와 바닥에서 쪽잠을 잤어요. 대화하는 소리가 카페 안에 흐르는 음악 같았어요. 맛있는 음식을 야무지게 먹어치우듯 대화는 지루할 틈이 없어 보였어요. 


서너 시간이 흐른 뒤 이제 그만 가자는 아버지의 말에 모두 일어났어요.

“죽기 전에 한 번 더 봐야지?”

"가을 지나고 산소 보러 올 때 들를게요."

“아이고,  그때까지 살아있어야 헐틴디.”
 “형님, 이렇게 건강하신데 뭔 걱정이에요.”엄마의 말에

“내 마음은 아직도 애들인데. 쯫, 이 나이에 이틀을 내다보겠냐. 하루를 내다보겠냐.” 

열심히 운동하고 밥 잘 먹으면 또 볼 수 있다는 말이 최선이었어요.      

헤어지기 전에 큰 고모에게 전화해 삼 남매가 통화를 했어요. 큰 고모는 한숨을 쉬며

“나는 왜 안 죽는지 모르겄다.”

“언니, 왜 그런 소리를 햐. 살으야지. 잘 먹어요. 어떻게든 하루라도 더 살으야 혀. 죽으면 다 끝이여. 알었지?”막내 고모는 몇 번을 반복하며 당부에 당부를 더하셨어요. 두 분의 대화를 들으며 두 손은 공손하게 모아지고 마음은 경건함으로 묵직해졌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니어 인지수업에서 만났던 한 사람이 떠 올랐어요. 여든이 훨씬 넘은 그녀는 깡마르고, 주름이 굽이굽이 계곡처럼 흐르고, 머리칼은 하얗고, 걸음은 느렸어요. 어느 날 두 팔을 흔들며 춤추는 그녀 곁을 지나는 순간 낮은 읊조림이 단호하고 강력하게 내 귀에 꽂혔어요. 나의 걸음은 멈추어졌고, 시선이 그녀를 향했어요.

“죽으면 못 춰! 죽으면 못 춰!”

그 찰나의 순간은 영화의 명장면처럼 머릿속에 깊숙이 박혔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 파고드니, 쉽사리 빠지지 않을 거라 생각돼요.


나는 어떤 마음자세로 오늘을 살고 있는 걸까.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느슨해지다 못해 바닥에 질질 끌리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내가 만난 그들에게 간절한 하루를 나는 허투루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여요. 내가 이 세상에 딱 한 명이듯 오늘도 딱 한 번 뿐이라는 사실에 나의 감각은 그들보다 무뎌져있어요. 어제가 있었으니 당연히 내일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어제와 내일에 마음을 많이 쪼개면 오늘 써야 할 마음이 모자라겠죠. 어제와 내일로 들떠있거나 자랑하거나 또는 낙심하지 말고 오늘만 헤아려 봐야겠어요. 어제와 내일의 스위치는 끄고 오늘 주어지는 하나하나의 상황에 마음을 남김없이 쏟아보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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