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속음!
다섯 살 때쯤으로 기억하는 어느 날 아침, 잠이 깼을 때 느낌이 이상해 눈도 못 뜨고 불안한 마음으로 이불을 더듬었다. 예상대로 푹 젖어있었다. 이불에 오줌을 쌌다. 물 마시다 실수로 쏟았다고 할까 잠깐 생각했지만 등까지 다 젖어 거짓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마당 한편에 있던 수돗가로 나를 데려가 씻기고 큰 고무 대야 안에 이불을 넣고 빨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룰 숙인 채 아무 말도 못 했다. 아무리 내 엄마라도 창피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옷을 갈아입고 마루로 나가자마자 엄마가 내 머리에 대뜸 키를 씌웠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고 만 거였다. 엄마는 바가지를 안기더니 옆집에 가서 소금을 얻어 오라고 했다. 엄마가 엉아라고 부르는 옆집 아줌마의 막내아들이 내 친군데. 그리고 부지깽이로 맞으면 얼마나 아프다고. 다섯 살 인생에 매우 심각한 순간이었다. 어떻게 하면 창피를 면하고 매의 공포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다 좋은 생각이 반짝하고 떠 올라 마음이 놓여 미소가 지어졌다. 키가 내 몸만큼 크니 얼굴이 가려져 그나마 다행이었다. 키가 떨어지지 않게 양손으로 붙잡고 땅만 보며 후다닥 옆집으로 달려갔다. 키를 아줌마네 집 담에 기대 놓고 바가지만 들고 들어갔다. 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아줌마, 엄마가 김치 담글라고 하는데 소금이 떨어졌다고 한 바가지만 빌려 달래요."
"그래?" 아줌마는 웃으며 바가지를 받아 들더니 소금을 가지러 들어갔다. 심장이 콩닥거리고 어지러운 것 같았다. 마음이 들키기 전에 빨리 집으로 가고 싶다고 동동거리며 보채는 것 같았다. 아줌마의 손에 들려오는 바가지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야~ 이제 됐구나 안심하며 바가지를 받고 보니 소금이 한 움큼정도였다.
'치! 김치 담근다고 했는데 겨우 요만큼만 주네. 쪼금만 더 주지.'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아무 말 안 하는 걸 보니 아줌마가 속은 게 분명하다고 착각했다. 이제 집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절대로 뛰면 안 돼. 그럼 들킬지도 몰라. 마음 같아서는 냅다 뛰고 싶었지만 진짜 김치 담글 소금을 빌리러 간 것처럼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 순간이었다. 역시 방심은 금물. 아줌마는 속은 게 아니었다. 몽둥이가 내 엉덩이에 착하고 감겨와 깜짝 놀랐고 너무 아팠다. 내가 울며 달리자 아줌마도 빠른 걸음으로 따라오며 몇 대를 더 때렸다.
"앞으로 오줌 싸지마. 또 오줌 싸면 더 아프게 때려줄 테니까." 아줌마의 목소리가 나의 울음소리와 섞였다. '차라리 키를 쓰고 들어갈걸. 그럼 덜 아팠을 텐데.' 나의 얕은 꾀는 보란 듯이 실패였다. 어른이 되고 문득 떠올리다 알았다. 천재가 아닌가 하며 스스로를 기특해했던 거짓말이 어른 눈에는 뻔하게 다 보인다는 것을. 소금 바가지를 들고 엉엉 울며 집으로 갔다. 키는 어디 있냐는 엄마의 야속한 말에 한 번 더 놀랐다.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불행한 날이었다. 키를 가지러 갔다가 또 맞으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나무 대문에 숨어 담벼락에 기대 있는 키를 보며 저걸 어떻게 가져오나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을 살피다 아줌마가 밭으로 가는 걸 보고는 냅다 뛰어가 키를 가지고 왔다. 창피를 준 엄마와 속은 척 한 아줌마 둘 다 너무 미워 약이 바짝 올랐다. 게다가 아줌마의 막내아들이 그 걸 알고 동네 애들한테 말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더 해졌다. 산 넘어 산이라 한숨이 나왔다. 나중에는 내가 오줌을 싸고 싶어서 쌌나 하는 억울한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난 어른들의 암묵적 약속을 알아채기엔 너무 어린 꼬맹이였다. 혼자 퉁퉁거리다 나무 마루에 벌러덩 누웠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날 엄마랑 엉아아줌마는 내 얘기를 하며 한바탕 웃었겠지. 그렇게 혼쭐이 났으니까 이불에 실수하는 일이 다시없었을까. 다행이었던 건 엉아아줌마 막내아들이 몰랐다는 거였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오줌 쌌냐며 놀리는 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애가 알았더라면 동네 아이들이 다 알았을 테니까. 그 후로 비밀이 들통날까 싶어 불안한 며칠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아이들이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노심초사하던 마음에서 벗어나 하늘을 날 듯 자유로웠을 게 뻔하다.
키를 쓰고 소금을 받으러 가 매질을 당하면 오줌이 마려울 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화장실을 갈 거라는 어른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키와 소금을 사용한 데는 옛 어른들의 깊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키는 곡식을 까부를 때 쓰는 도구다. 시골동네는 키가 없는 집이 없었다. 키는 가라지는 밖으로 날려 보내고 알곡을 안으로 들여 골라내는데 유용했다. 밤에 오줌이나 싸는 아이가 대소변을 잘 가리는 아이로 무럭무럭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무럭무럭은 순조롭고 힘차게 잘 자라는 모양의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떤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당장이라도 두 손 모아 자식 위해 기도라도 하고프지 않은가. 소금은 귀한 양념으로 음식이 썩지 않게 오래 보관할 수 있게 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낼 뿐 아니라 음식의 맛을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경에는 사람에게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빗대어 말한다. 부패를 막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어 삶을 맛깔나게 살라는 바람이 들어있겠지 싶다.
몇 년 전까지 살던 동네는 지은 지 25년이 훨씬 넘은 오래된 아파트단지였다. 건물만 나이 든 게 아니라 젊은 시절 입주해 살던 주민들도 같이 나이가 들었다. 25년이 넘은 나무들이 더해져 시골동네에 사는 것처럼 여유롭고 정다웠다. 어느 날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게시판을 보다 한 장의 안내문이 눈에 들어와 다시 읽었다. ‘안 좋은 곳에 다녀오신 후 현관밖에서 소금을 뿌리지 마세요. 계단 신주가 망가져 비용이 발생됩니다. 발각 시 비용청구를 할 테니 주의하세요.’라는 내용이었다. 신주는 주로 오래된 건물의 계단에서 볼 수 있는데 황동 재질로 된 미끄럼 방지용이다. 옛 풍습으로 장례식장에 다녀온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가기 전 집에 있던 사람이 굵은소금을 뿌려 나쁜 기운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행위이다. ‘아직도 이런 걸 하나 보네. 어른들이 많아서 그런가.’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운동 삼아 계단으로 올라갈 때 발밑에서 서걱거리곤 하던 것이 모래가 아니라 소금이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했다. 그러면서 가족과 무탈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 마음만은 이해가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할머니가 검지 손가락에 굵은소금을 묻혀 양치하시던 것을 따라 했다가 짠맛에 놀라 물로 입을 여러 번 헹궈내도 혀가 얼얼했던 기억이다. 할머니는 치약을 두고 왜 소금으로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굵은소금은 엄마의 주방에 늘 있었고 나의 주방에도 필수로 있는 양념이다. 어릴 때부터 먹어 버릇해서 인지 국의 간을 맞출 때 국간장과 더불어 굵은소금으로 해야 더 맛있다고 느낀다. 굵은소금은 종지기에 담겨 식사 때마다 밥상 위에 올려졌다. 야채를 절일 때는 말할 것도 없이 굵은소금이다. 내 주방의 굵은소금이 양념으로만 있는 게 아니라 소금 한 줌 담긴 바가지 들고 큰 소리로 울며 뛰어가던 어린 시절의 나로도 있는 거였구나 한다. 굵은소금을 보면 정겹게 느낀 이유를 알겠다. 굵은소금은 내게 추억인 거였다.
어른이 되고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그때의 나도 어른 못지않게 삶에 진지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내 어린 시절에는 개인마다 다른 아이의 성장속도를 존중하여 기다려 준다기보다 단호하고 직설적이라고만 생각했다.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존중하지 않았나 생각하다 어른들에게는 그보다 한 수 위의 뭔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금바가지 안고 울며불며 달려가는 아이를 담장너머로, 대문 앞에서 바라보다 두 어른이 눈 마주치며 키득거리는 순간을 떠 올리며 조선시대의 화가 김홍도의 그림에나 나올법한 장면이 아닐까 한다. 세상을 살아봐서 뭘 좀 아는 그들 나름 은근슬쩍의 가르침. 그것이 바로 해학이 아닐까. 해학은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을 의미한다. 소탈한 어른들의 삶이 촌스러운 게 아니라 그들만의 품격으로 달리 보여진다. 그날의 감정이 억울하고, 무섭고, 창피하고, 불안했더라도 지금은 미소 짓게 하는 추억이 된 것은 어른들의 마음이 해학으로 잘 버무려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해학으로 간을 한 삶은 맛있는 음식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