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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정쇼호스트 Sep 14. 2017

피겨와 쇼핑호스트

그 여자

저 여자 호스트 목소리 정말 피곤해요. 

난 그 여자 호스트 나오면 채널 바로 돌리잖아. 

말하는 게 그냥 괜히 기분 나빠요. 

챔기름 발라 놓은 것 마냥, 번지르르하게 말도 잘하고, 똑 부러져 보이는 호스트 

하지만,  정이 안가는 건 왜일까? 

듣고 있는면 피곤한 건 왜일까? 

피겨 스케이트 에는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가 있다. 기술적으로 아무리 매끈하게 작품을 완성했다고 하더라도, 

예술적 감동을 주지 못하면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들다. 

예술적 감동은 내 몸과 작품이 하나가 되어, 마음과 혼을 담을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법이다. 

"제 점수는요.......... 

호스트의 방송 점수도 제각각이다. 


신이 우리를 가르칠 때는 채찍을 쓰지 않는다. 신은 우리를 시간으로 가르친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 

한 분야에 십년이상 같은 일을 해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누구는 만시간의 법칙이라고도 하는데, 얼추 듣고 보니, 하루 3-4시간의 고뇌의 흔적들이 10년즈음 쌓여야, 만시간이 된다.  10년이 지나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처음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은 의욕이 앞선다. 잘 팔아야지. 목표 달성해야지. 칭찬 받아야지. 승진해야지.....고객을 내 틀에 맞춰서 조정하려고 한다. 

철저히 '나' 위주로 말이다. 

그 마음이 수년간 이어지면서, 사람은 안보이고 돈만 보이게 된다. 

내 앞의 고객은 나의 인사고과를 위한 발판 정도로 여기게 되고, 매출이 떨어질 때는 상품 탓, 소비자 탓만 늘어놓게 된다. 

상품~ 이만하면 됐고,

방송 세트 오 호 예뻐 예뻐~~됐어. 

진행 시트 훌륭해. 순서대로 딱딱 잘 돌아간다. 

그런데. 왜 

이 냉랭한 반응은 뭘까?

상품 사양, 방송 순서, 세트의 완성도, 신나는 배경음악, 뭐 다 딱딱 맞아 떨어지는데, 대체 왜 손님이 없지? 


기술 점수가 아무리 높더라도, 예술 점수가 떨어진다면, 고객은 이탈한다. 

예~~~~술 적인 쇼핑호스트란 ? '진짜'를 파는 사람이다. 

진짜 마음으로, 거짓없이, 솔직하게 ....... 진. 정. 성을 담은 방송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고객을 맞이해야 한다. 


한 번은 김치 방송을 하는데, 라이브톡( 방송 중 실시간 들어오는 문자) 으로 이상한 문자가 왔다고 했다. 

피디는 문자를 보고, 내가 기분 나쁠까봐 화면전송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 저 호스트, 김치 방송 하는데, 손톱에 매니큐어 칠하고, 저렇게 김치를 찢고 있냐고, 입맛 떨어져서 못보겠다고

어떻게 매니큐어 바른 손으로 음식을 만지냐는거였다. 듣고 보니, 그러했다. 

아~~~~ 내가 음식을 만지면서, 손톱을 안지우고 그냥 들어갔구나. 그저, 내 생각에 손톱 그거 하나 안지우는게 뭐 어떤가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내 생각이었다. 간혹, 요즘 젊은 엄마들이야 손톱 칠 한 상태로 요리도 한다고 하지만 당장 우리 어머니만 생각해도, 손톱 칠하고 나물 무친다는 건 천부당 만부당 한 일이였으니.....

얼마나 입맛이 떨어지셨으면 문자까지 보내셨을까 싶었다. 그날 이후 식품 방송을 할 때는 웬만해서는 색깔이 진한 매니큐어는 근처에도 안가고 정 바르고 싶으면 연한 핑크로 거의 눈에 안띄게 했다. 손톱에 뭔가를 칠하고 안 칠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홈쇼핑 고객층은 다양한데, 내가 너무 내 위주로 생각했구나. 사소한듯 사소하지 않은 사건이었다. 


'난,  정말,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김치를 보여줄 자세가 되었는가? ' ' 진짜, 내가 음식을 만든다면 어떤 손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할까? ' 

손톱 색깔 하나에 고객은 밥맛이 떨어질 수도 있구나. 조금 더 사려 깊었어야했다. 

그 날 이후, 난 늘 정갈한 손톱, 깨끗한 구두, 흐트러지지 않는 단정한 머리에 좀 더 집착하게 되었다. 


쇼핑호스트들에게 말년 병장이란 없다. 군기 바짝 든 이등병처럼, 언제나 고객 앞에서 바짝 정신을 차리고있어야 한다. 



그냥, 기분 나빠서 안 사~~!!!


실컷 공부하고, 하루종일 시장 조사하고 방송에 들어간다고 해도, '고객기분'잡치면 그걸로 '끝'이다. 

기분(氣分)을 한자로 보면 기운을 나눈다는 거 아니겠는가? 

책에도 안나오고, 공부해도 알 수 없는 기분~~!!!! 난 고객에게 좋은 기를 나누는 사람인가? 나쁜 기를 나누는 사람인가?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고객 한 명 한 명을 헤아려야지 다짐해도, 매 방송 깨지면서, 또 다시 일어 서고, 또 깨지고  그게 호스트다. 

고객이 어떤 '기분' 일까 .......


기술과 예술이 하나가 되어, 멋진 하모니를 만들 때

우린 '진짜'를 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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