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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정쇼호스트 Sep 14. 2017

말은 날개를 달고

말은 날개를 달고~~~


말은 날개를 달고 허공으로 날아갈 수도 있고,  

누군가에 가슴에 씨앗이 되어 내려 앉을 수도 있다. 

말이 '무거워'야 ( 깊이가 있는 말) 듣는 이에 가슴밭에 깊이 뿌린를 내릴 수 있다. 뿌리를 내리고, 꽃이 피고 열매가 되어 상대의 행동변화를 만들 수 있다. 

허나, 가벼운 말은 민들레 홀씨처럼 작은 바람에도 그저 흩날릴 뿐이다 .

뭔가 맞는 말을 하긴 하는 것 같은데, 끊김없이 줄줄 쏟아내긴 하는데 '뭔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속도, 박자 조절의 문제도 있겠지만, 말이 가벼워 둥둥 떠다니기에 듣는 이에 가슴에 도달하지 못한다. 

아주 면면히 자세히 잘 들어봐야 된다. 잘 들리는 말과, 그렇지 않는 말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1. 말이 둥둥 뜨는 이유


말이 가슴에 내려 앉지 않고, 둥둥 뜨는 건, 여기서 둥둥 뜬다는 걸 '톤'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뭔가 와 닿지 않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되고, 그의 말이 나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지 못하는 '하나마나 한 말', 가벼운 말을 의미한다. 


00카드사 : "사랑합니다. 고객님~~~ 저희가 이번에 새로운 혜택으로 고객님을 찾아 뵈려고, 정보 좀 드릴까 하는데, 놀이동산, 마트, 공연, 비행기 이용 등등 엄청난 혜택이 쏟아지는......  시간이 괜찮으시면...

나 : 바쁜대요....

00카드사 : (내 얘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자기 할 말만 ) 아 바쁘시군요. 네네 고객님 

아 그렇다면, 제가  빨리 3분 안에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주저리 주저리 


오늘 처음 통화한 사람한테 지금 사랑고백하는 거야? 사랑합니다. 고객님 ~~~ 이런 거 시키는 카드사는 무슨 생각으로 텔레마케터 교육을 요딴식으로 하는 걸까? 듣는 고객님 어의 상실로 만드는 저 카드사에게 정말, 나를 너무  사랑해서, 다양한 혜택을 '꼭' 주고 싶은가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왜 '마음' 없이 아무말 대잔치로 바쁜 사람 시간 까먹게 하냐 말이다. 영혼없는 사랑합니다. 고객님은 절대 고객의 행동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말이 둥둥 뜨는 이유는 '진짜' 내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는 아직 아이가 없긴 하지만, 저희 조카를 제가 거의 키우다시피 해서, 잘 알거든요. ( 조카 일년에 몇 번 본다고 ...) 그래서 아이들의 육아는 사실 이런 부분이 저희 조카가 어쩌고 저쩌고 ......"

유아 도서 상품에 미혼 여자 후배를 데리고 들어갔다.사실 미혼이 아기책을 판다는 건 편성에서 부터 잘못된 것이었는데, 어찌 어찌 그냥 쑤셔 넣었나 보다. 분명히 그 후배도 고통스러웠을거다. 연기하느라고.....후배는 태연하게, 마치 애 젖도 물려보고, 똥도 손으로 받아 본 마냥 애 셋은 나아야 이해 할 수 있을 법 한 이야기로 장편  '소설'을 써내려갔다. 옆에서 들어주기 민망했다. 

아무리 봐도, 인터넷 육아 사이트에서 긁어온 이야기를 자기의 이야기인 마냥 말아서 열심히 내뱉고 있는데, 아무튼 아주 '열심히' 자기 조카 이야기인양, 자기의 이야기인양 연기를 하니, 말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가끔 멘트 도둑들도 등장한다. 선배의 좋은 멘트를 마치 자기가 생각해서 만들어낸 멘트인 것 처럼 아주 살짝만 변형시키거나, 아니면 대놓고 그냥 쓰시는 분들. '저작권' 이딴건 애시당초 없다. 그들에게 '양심의 가책'같은 걸 기대하면 안된다. 멘트 도둑질이 습관이 된 진행자들은 나중에 연차가 차도, 남의 멘트를 자기가 연구한 것 마냥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 ( 쇼핑호스트의 방송멘트는 본인이 스스로 작성한다. 대신 써주는 전문작가는 없다. ) 사람들이 모를거라 생각하지만, 호스트 내부에서는 누가 남의 멘트를 훔치는지 파다하게 소문이 난다. 그리고 설령, 다른 호스트의 좋은 멘트를 그냥 사용해서 들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본인' 자신은 알고 있기 때문에 멘트가 매끄러울 수 없다. '자기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멘트는 둥둥뜬다. 어떤 연유에서, 어떤 관계로 이런 멘트를 생각해내게 됐는지 멘트를 낳은 친엄마가 아니라 친엄마인 척 하는 가짜 엄마이기 때문에 말이 깊어질 수가 없다.흉내는 낼 수 있어도 와닿을 수는 없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선배들 모니터링은 하되, 멘트를 그대로 베껴서 쓰지 말라고 말해준다.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는게 가장 안정적이고, 묵직한 말이 된다고....



2. 빨라지는 이유


너무 생각이 많거나, 너무 준비를 안 했거나....

방송 직전까지 준비한 종이를 들고 덜덜 떨면서, 부산스럽게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선배님 어떻게 하면 될까요?"를 아예 묻지 않거나, 방송에 임박해서 선배님 저 어떻게 할까요? 방송 당일 그것도 방송 시작 몇 분전에  물어보는 후배들이 있다. 그런 후배님들께는 난 언제나 니 알아서 하세요다.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당일날 이렇게나 빨리(?) 물어본단 말인가. 

많은 후배들이, 머릿속에 흐름에 대한 '지도'없이, 그냥  '선장'이 시키는대로 시키는 것만 해서, 욕만 안먹으면 된다 생각한다. 배가 어떤 방향으로 어딜 향해가야 되는지 애시당초 모른다. 물어볼 생각 안한다. 물어 봐야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못물어본다. 모든 선배들이 불편하거나 , 또는 무언가 물어본다는게 귀찮거나, 또는 전날 음주가무에 정신팔려, 대충 준비한 거 선배한테 들통날 까봐, 아에 입을 안연다. 그리고 방송에 정신을 빼놓고 들어온다. 이런 후배님들은 알아서 도태된다. 


자, 너무 생각이 많은 경우, 이것도 사실, 준비를 제대로 안한거다. 버릴 걸 제대로 안버리고 들어오는 거다. 

이것저것 네이버가 알려준대로, 긁어 모으긴 했는데, 이게 맞는 얘긴지 틀린 얘긴지 확신이 안선다. ( 시장조사, 경험 공유, 제조사 확인 등 논리를 확실하게 받쳐줄  증거 부족, 증명 절차 생략 ) '아리까리 자료'들만 잔뜩 들고 준비해서,  에라이 모르겠다 뭐라도 되겠지 라는 식으로 들어온다. 

적어도, 같이 진행하는 선배들이나, 게스트, 협력업체에게 긴지 아닌지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들어와야 하는데, 불명확한 상태로 약간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끌어 안고, 방송을 시작한다. 당연히 안풀린다. 조급해진다. 선배가 하는 말의 말 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다. 

A 를 이야기하면 적어도 A' 를 이야기해서 추임새 ( 리액션)을 넣거나, 말의 힘을 실어줄 같은 맥락의 논리( 선배가 말한 A 주제에 맞는 같은 주제지만 그 주제를 더 빛내줄 다른 이야기) 로 이야기를 탄탄하게 쫀쫀하게 만들어야 한다. 깊이 연구하지 않으면 제대로 말의 살을 붙이지 못한다. 

물살 말고, 탄탄한 근육 말이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가 있는 말 말이다. 

말의 논리가 명확하게 정리되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설렁설렁 준비하면, 할말이 없으니 말이 빨라진다. 뭔가 종이에는 잔뜩 적긴 했는데, 막상 방송에 들어가니, 딱히 어떻게 말을 해야 될지 모른다. 할말이 없으면 말을 안하면 되는데, 자꾸 옆에 있는 선배가 멘트를 넘기니깐, 아무말이나 후루룩 해버린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공부하면, 명확하게 주제가 잡히고, 명확하게 말거리 재료가 머릿속에 세팅된다.

요리 경연장에서 파 다듬는 요리사를 본적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요리사는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파에 있는 흙도 털어내고 고기의 쓸데없는 부위는 제거하고 딱 알짜베기 재료만 준비해서, '땡' 소리와 함께 요리를 시작해야 한다. 날재료 다듬기는 이미 진작에 마친 상태로 '땡' 불이 들어오면 요리를 시작하란 말이다. 

방송도  '다듬어진 재료'를 들고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미리 준비가 덜 된 호스트들은 파에 흙이 묻어 있는 채로, 당근에 껍질도 안벗기고, 고기에 힘줄이 그대로 씹히게 재료를 준비해와서, 방송 중에 다듬고 있다. 난리 부루스다. 쯔쯔. 

그러니, 시간은 부족하지 요리는 빨리 만들어야 겠지...말은 두서없이 빨라진다. 믿어라. 많이 준비하고, 도려낼 거 도려내고, 말의 재료를 깔끔하게 다듬어놓으면 방송 중 멘트는 담백하고 차분해 질 것이다. 



3. 말의 포즈가 생기려면


말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빠르게 느껴지는 쇼핑호스트들이 있다. '쉼표'가 없기 때문이다. 

정리 싸인 들어오기 전까지 침 한번도 안삼키고 멘트를 한다. 정말 많은 쇼핑호스트들이 포즈 없이 말한다. 왜 그럴까?? 왜 ? 왜? 왜? 

대체, 왜 그런단 말인가? 

공간이 ( 분위기) 나를 잡아 먹었기 때문이다. 홈쇼핑 공간, 스튜디오 공간 속에서 긴박하게 돌아가는 음악, 조명, 분위기, 상황, 자막속도, 영상 속도... 모든것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니깐 나도 모르게 '숨'조차 쉬지 못하고, 멘트를 쏟아낸다. 

홈쇼핑은 기본적으로 '실수'가 용인이 안된다. 또, 1분에 몇 천만원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시간이 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1초라도 말을 안한다는 건, 장사를 안하고 있는 거라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말이다. 

하얀 도화지에 흰색이라곤 하나도 없이 빽빽하게 빨주노초 다 칠해야지만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의 쉼이 없다. 뭔가 쉰다는 건, 장사를 안한다고 잘못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연습을 하는게 필요하다. 집에서 자신이 준비한 멘트에 중간 중간 강조 포인트 앞에 2초 쉬고, 3초 쉬고를 연습하면서 묵음이 주는 강렬한 힘을 느껴보자. 그러다 스튜디오에 들어가서도, '오늘은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제대로 전달해보자.' 라는 마음으로 멘트 욕심을 내려놓자. 말의 쉼표를 의도적으로 써보자. 

난, 자막의 노예가 되지 않으리~~~ 

화면 속도가 빠르다고 내가 저 속도에 맞출 필요는 없어. 

들리게 말하자. 들리게 말하자. 들리게 말하자. 


의식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계속 해 나가면서, 무대 분위기를 내가 주도해야된다. 말의 포즈는 내가 완전히 무대를 장악할 때 만들어진다. 휘둘리지 않고, 내 페이스를 찾을 때 말이다.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실전에 들어가서도 집에서 연습한 것 처럼 하려면 말이다. 그리고 어느정도 쉼표를 주는 연습이 익숙해지면 말을 할 때 내가 의식해서 쉼표를 주려고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말에 쉼표가 생긴다. 내가 '진짜 말'을 할 때 꾸며진 쉼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긴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 '기'를 불어 넣어주자. 매일, 매 순간, 매 방송 마다.....  





말을 해. 말을....말을 하라고~~~!!! 왜 말을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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