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견해가 이기고 있다고 집착하여, 자신의 견해를 위로 본다면, 그 이외의 모든 것을 '뒤떨어진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때문에 사람은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싸워야 할 견해가 아무 것도 없다.
- 석가모니 경집 중
석가모니는 논쟁을 걸 수 있고, 이길 수도 있는 분이셨다. 허나 나에게는 싸워야 할 견해가 없다고 했다. 이 얼마나 겸손하고 아름다운 자세인가.
우린 날마다 전쟁 속에서 살아간다. 자녀들에게 배우자에게 저주는 법을 잘 모른다. 끼어들기 차 그게 뭐라고 , 순간 입이 더러워진다. 누군가의 지각으로 회의가 좀 늦어지거나, 기획서에 오자 라도 보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분노의 총탄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게 된다.
홈쇼핑은 새벽부터 밤까지 전쟁통이다. 이게 맞니 저건 아니네. 이렇게 보여주는게 좋아, 아니야. 이걸 빼, 저 구성 더 넣어.
방송 이 따위로 할 거면 너 빠져. 투 호스트 말고, 원 호스트로 갑니다.
아, 이 상품은 이 사람하고만 진행 할래요. 저번에 저 호스트가 했는데, 영 별로였어요.
내가 시키는 것만 해. 넌 그냥 따라오기나해. 뒤에서 얘기 하냐고?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대놓고, 니 방송 별로에요 라고 얘기한다. 살떨리게 살벌하다. 홈쇼핑에서 '실수' 라는 대역죄를 저지른 호스트는 많은 이들 앞에서 '인민재판'을 당하거나, 그런게 아니면 조용히 '아웃'이다.
소리없이 편성표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건 일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초년 생으로 입사 했을 때, 난 날마다 눈물 범벅이었다. 무슨 욕을 이리도 많이 해대는지, 욕을 하도 많이 먹고 배불러서, 밥도 안 넘어갔다. 인사는 왜 그 따위로 하냐 에서 부터 시작해서, 멘트가 왜 그 모양이냐는둥 언제쯤 욕을 안 먹을 수 있을까? 난 누구인가? 여긴 어디인가?
왜 내가 이러고 사나? 싶은 나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욕 먹는게 정상이다. 대학 졸업하고, '아는게' 있어야지 말이다. 사회 생활이 뭔지, 방송이 뭔지, 선후배 관계가 뭔지, 뭐 도통 아는게 없는 상태에서 밥 값을할리 없는 '잉여인간' 에게 월급을 준다는 건, 회사 입장에서는 '자선사업' 같은 느낌이 었는지도 모른다.
한 번은 신입일 때, 선배를 따라 방송에 들어갔는데, 모 피디가 ( 당시 회사에서 엄청난 악명이 높았던, 지금 생각해보면 선배는 날 스파르타로 가르치신거였다. ) " 유은정씨 마이크 빼세요. 넌 옆에서 선배 하는거 보고 서있어. 말하지 말고......." 라며, 스텝들이 다 듣는 스튜디오에서 큰 소리로 망신을 주며, 방송 중 잠깐 음악이 나가는 사이에 나를 '아웃' 시켰다. 한 시간 내내 나는 보릿자루처럼 스튜디오에서 그저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눈물이 나오려는걸 죽을 힘을 다해, 참았다. 쥐 구멍을 찾고 싶었다. 너무 창피하고,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이런 수모를 당하나 싶었다.
14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설프고 부족한 것들이 있기에 오늘에 내가 있는 거고, 오늘의 내가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기에 내일에 내가 있는 거다. '인격'적으로 모독을 주면서 가르치는 건, 아무리 후배가 부족한 점이 많다 하더라도 문제다. 그런 선배에게 후배는 마음으로 존경심을 가질 수 없다.
지금 그 선배는 다른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때 자기가 왜 후배들을 쥐 잡듯이 잡았나 후회하고 계신다고 했다.
돈이 사람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때론 우린 '사람됨'을 잃고 직장 생활이라는 치열한 혈투 속에서 타인을 피흘리게 만들며 살아가는 지도 모르겠다. 홈쇼핑에 오래 있다보면 다들 시퍼런 칼날 뒤에 몸을 숨기고, 상대방을 어떻게 해서 이길지 찌를 지, 어떻게 하면 내가 '상처'를 덜 받고 상대를 넘어뜨릴지를 고민한다.
어릴 때부터 내 방송을 모니터해주시는 선배가 계셨다. 난 선배가 이 부족한 후배에게 왜 그리 많은 사랑과 관심을 보내주셨는지 늘 고마웠다 .
선배는 너 잘했어. 아니야 괜찮아 이정도면 돼. 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처참하게 모니터링 하신다. 왜 여기서 이런 멘트 했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시연했어... 한 참을 그렇게 모니터링을 하신다. 그리고 "독약도 약이다, 마셔라." 라고 하신다.
난 선배의 말뜻이 뭔지 안다. 듣기에 거북하고, 쓰지만, 너에게 약이 되라고 하는 소리니깐 새겨 들으라는 말이다. '기꺼이 받아 마시겠나이다.'
사랑이 첨가된 독약은 아무리 마셔도 죽지 않는다. 아니, 효과 직방 '강장제'다.
허나, 사랑이 빠진 '지적'과 '실날한 비판'은 언젠가 독이 되어 당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우린 하루에도 수 십명의 업체들, 스텝들과 하루 종일 회의하고, 맞춰나아간다. 피터지는 논쟁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안돼요" 라고 말할 때, 이 말 속에 그들을 향한 배려가 있는지 먼저 생각해보자. '나 중심'으로 '나만 편하자고' 논쟁을 만들고, 싸워서 이기려하고, '내 생각'만이 맞다라고 고집할 때는 일이 잘 안풀린다. 상대의 마음에 '분노의 씨앗'을 나도 모르게 심어놓기 때문에 일을 하면 할 수록 적만 많아 진다.
서점가에는 설득법, 이기는 대화,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라는 등의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다. 일방적으로 한 사람만을 위해 다수가 존재할 수 없다. 우린 서로 주고 받으면서 사는 존재다. 논쟁을 할 수 있다. 암요 그럼요. 할 수 있다. 단, 말로 사람을 찌르는 건 안 된다. 피흘리게 해서는 안된다.
많이 공부하고, 많은 경험이 쌓이고, 논리적으로 더 현명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때 논쟁은 좋은 결론으로 빛이 날 것이다. 허나, 내가 선배라고, 또는 내가 윗 사람이라고 상명하달 식의 회의, 넌 아직 뭘 모른다는 식의 암묵적 무시, 냉소, 냉대는 조직을 병들게 만든다.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고 하지 않았나.
자꾸 이기려고 하지 말자.
자꾸 '나'를 고집하지 말자.
내려놓고, 들을 줄 알아야, 상대방도 이 피곤한 싸움을 끝내려고 할 것이다.
지혜로운 논쟁......
오늘도 우린 즐겁게 일한다.
( 방송 전, 사랑하는 우리 선 후배 동료들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