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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정쇼호스트 Oct 13. 2017

휘둘리지 않으려면

휘둘리지 않으려면....

선배의 헛 기침에도 어깨가 굳는다.

카메라 감독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는 말들이, 마치 내 욕을 하는 것 같다 .

게스트가 아이~씨 라고 한다. 나 보고 하는 소리인가? 

이어피스로 (귀 안에 착용해서 피디와 소통하는 작은 청취장치) 피디가 싫은 소리 한 마디만 해도, 어찌할 바를 모른다 .

주문량이 떨어진다.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안온다. 패닉상태가 된다. 장사를 못하겠다. 도망가고 싶다. 

흔들리는 동공과 두서 없는 멘트로 지금 난 '정상'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린다. 


콧노래를 부르며 스튜디오에 들어간다해도, 나올 때는 미간에 내천자를 그리며 나올 수 있다. 

전략을 잘 짜서 전투에 들어가도, 전장에서 이기는 건 전투력 + 정신력이다.  너무나 많은 변수들이 우리의 멘탈을 쥐고 흔든다 .

생각보다 크게, 생각보다 자주, 생각보다 다양하게....


마음의 목욕

그 날은 모 게스트와 식품 방송을 했던 날이다. 그 게스트는 전날 스캐쥴이 많아서, 잠도 제대로 못잔 상태에서 늦게까지 아내와 한바탕 하고 나왔다고 한다. 좋다. 그래, 부부 싸움도 할 수 있는 것이고, 피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고 봐주려고 해도 용서가 안되는 것이 있었으니, 방송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십수년간 이미 방송을 제법 오래 해오셨던 분이다. 개인적으로 악감정은 없다. 그런데 이미 베타랑이라고 생각했던 그 게스트가 방송 준비는 당연히 제대로 안해오셨고, 중간에 멘트 없이 음악 나가는 동안엔 아내 욕을 어찌나 하시는지, 아내는 남편이 밖에서 저 정도로 욕하고 다니는 걸 알까모를까 그 분 아내가 측은할 정도였다. 당연히 화가 가득찬 마음으로 오니, 불똥이 나에게도 튀었다. 본인이 뭐가 잘 안풀리고 준비가 안돼있으니 당연히 짜증이 날 터, 그 짜증을 나에게도 내는게 아닌가? 순간 코가 막히고, 기가 막혀서.... 사실, 멘탈의 금이 갈랑 말랑했다. 

준비 없이 멘트 하는 것도 옆에서 받쳐주려니 힘들었지만, 분노를 안고 들어온 그와  '즐겁게' 방송을 하자니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래, 태도는 밉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며, 정말 내 속 밑바닥에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박애주의정신까지 어떻게 해서든 박박 긁어서, 참고 봐주면서 어찌어찌 방송을 마쳤다. 당연히 방송 분위기 엉망이고, 매출 망했고, 기분완전 뭣 같은 날이었다. 


며칠 뒤, 그는 그 날 미안 했다며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방송을 대하는 태도는 쉽게 잊혀지지 않았다. 

집에서 지지고 볶고를 하고 온다 해도, 방송 전 회의시간에 열심히 깨졌다 하더라도, 오늘 따라 몸이 천근 만근 무너질 것 같아도 카메라에 불이 켜지면, 머릿속에서 깨끗히 지워야 한다. 가장 정갈하고, 가장 행복하고, 가장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로 들어가야 된다. 

내가 스튜디오에 들어가면 방송 전 '하는 짓'이 있다. FD. 호스트 후배, 후배들, 카메라 감독들에게 "아자 아자 파이팅~~~!!! 어이 어이 얍~!팟팅~~"이라고 나만의 우렁찬 기합소리를 내는 것이다. 내가 혼자 크게 소리치면, 처음에 보고 웃던 동료들도  나중엔 따라한다. 그리고 같이 웃는다.그리고 이젠 은정이 또 시작이네 하며 같이 파이팅을 외쳐준다. 시작 부터 좋은 기운과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고 들어가기 위해서다. 

보이는 옷만이 아니라 마음의 옷도 깨끗하게 빨자.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채우자. 작은 바람에 쉽게 휘둘리지 않기 위함이다. 


방송 전 난 스튜디오 조명이 흔들릴 정도로 기합 소리를 낸다. 내가 기를 모으는 나만의 방법이다 .


적극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 


방송하고  회의하고, 부딪히고 깨지고, 수다떨고,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면 하루가 한 시간처럼 후딱 간다. 홈쇼핑 시계는 일주일이 하루 같고, 한달이 일주일인 마냥 정말 빨리 흘러간다. 속도전이다. 빨리 정하고, 빨리 처리하고, 빨리 회의하고 이런 일상이 오래되다보니, 뭐든 속도전으로 빨리 처내야 되는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홈쇼핑. 사실 오픈 된 환경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게 쉽지 않을거다. 더더욱 회사는 직원들간의 소통을 원활히 한다는 이유로 책상에 모든 칸막이를 다 제거하고 아주 시원하게 서로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일 할 수 있게 하셨으니, 이건 뭐...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노력한다면 회사의 숨은 공간은 분명히 있다. 나만의 옥상 공원, 나만의 휴게실, 또는 회사 근처지만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아주 작은 커피가게도 찾다보면 나만의 '아지트'를 찾을 수 있다. 또 8층에 회사 북카페는 점심시간에 도저히 독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시끄러운데, 난 남들이 다 퇴근하는 시간에 북카페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그럼 그 곳은 나만을 위한 공간이 되는 거다.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매일같이 워낙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하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늘 고프다. 회사에서 워낙 많은 시간 머물다보니, 군중 속에서 하루종일 골수의 에너지까지 다 쪽쪽 빠진 채로 집에 가게 된다. 

사람이 좋아도, 사람들 속에 있지말고 때론, 나를 돌아보고 매일 한 두시간 조용히 잠잠히 나와 마주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일기를 쓰는 것도 좋고, 독서를 하는 것도 좋고,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내 마음이 비워지고, 또 채워지는 연습.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한 기운이 넘칠 때, 여러분의 회사가, 여러분이 일하는 영업환경이 전쟁터라 하더라도 '평정심'을 잘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것이다 . 고독의 시간을 즐겨라. 


스스로 동기 부여하자. 


시도해보지 않고는 누구도 자신이 얼마만큼 해 낼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푸블릴리우스 시루스 


난 최연소 쇼핑호스트였다. 스물 넷 ...대학 졸업하고 바로 입사한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난 정말 어린 나이게 쇼핑호스트가 된 '최초'의 인물이었다. 뭣도 모르는게, 뭣도 모를 때 들어온 거였다. 그리고 내 뒤로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언니들이 후배로 들어왔다. 내 바로 아래 후배 중 나이가 나보다 7-8살 많은 분들도 계셨다. 웬만해서는 먼저 입사한 호스트가 먼저 방송에서 메인(리드하는 호스트)을 잡는다. 그럼 후배 호스트가 서브(보조 역할)를 하는게 일반적 규칙이었는데, 내가 워낙 어릴 때 입사를 했기 때문에 나에게 기회는 잘 오지 않았다. 결혼도 하고, 나보다 인생 경험도 많고 방송 경험도 많은 후배님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 난 GS 홈쇼핑이 LG 홈쇼핑일 때 입사를 했는데, 입사 후 일년 6개월 즈음 뒤에  LG와 GS가 분리 되면서, LG 홈쇼핑은GS홈쇼핑으로 회사명이 바뀌게 되었다. 그 해엔 대대적으로 콘테스트로 후배들을 뽑고, 특별히 GS1기라고 불러주면서 '특별케어'를 해주었다. 입사 하자마자 메인진행을 해볼 기회를 준다거나,신입이 심지어 신입인데 들어오자 마자 메인이다.  GS 1 기는 동기끼리 방송을 하게 해준다거나 ( 선배없이 기펴고 니네 마음대로 해보라는 배려(?) ) 뭔가 특별하고 새로운 기회들은 GS 1기 후배들의 것이었다. 난 어리지, 방송 경력도 없지, 결혼해서 살림을 잘 하는 것도 아니지 그야 말로 기회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애매한 호스트였다.


한번은 내가 후배를(유부녀 언니)  데리고 방송에 들어갔는데 당연히 내가 후라이팬에 대해서, 그녀보다 경험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내가 메인 진행을 했지만, 누가 메인인지 서브인지 모를정도로 난 그녀에게 휘둘렸다. 그녀는 애송이 같은 어린 선배를 기다려 주거나 선배의 멘트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나 따위는 그냥 먼저 들어온 선배이긴 하지만 '진짜선배'는 아닌 그런 존재였으리라.  이래서 난 평생 후배들에게 모자란 선배가 되겠구나 싶어 그때부터 한식, 양식 요리사 자격증도 따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김치 담그는 법, 남편 퇴근 시간을 당기는 집반찬 만들기, 온갖 베이커리 부터 테이블세팅법 까지 별의별걸 다 배우고 다녔다. 남편도 자식도 없는 아가씨 호스트였지만 그냥 주저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자격지심에서 못나서, 부족해서 , 후배들보다 못난 선배여서, '실력'으로 존경받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그때는 질투와 미움의 감정이 컸는데 세월이 흐르고보니 그들이 나의 선생이었고, 그들 덕분에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은 GS 1기 후배들이 더더욱 고맙다. 


아이를 가지면 공백기 동안 후배가 내 자리를 치고 올라 올까봐 아기를 못가진다는 호스트가 있었다. 정말 안타까웠다. 호스트간의 경쟁이 너무 과열되다 보니 내 가족계획도 내 맘대로 못하는 지경에 이르른거다. 좀 치고 올라오면 어때. 치고 올라오다가 내려갈때도 있고,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갈때도 있다고 10년 넘게 지내보니, 지금 반짝인다고 계속 반짝이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인정받지 못한다고 늘 변방에서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랴. 늘, 자기를 갈고 닦으면 좋은 때에 자신과 딱 맞아떨어지는 상품이나 사람을 만나게 된다. 언제나 그랬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어떨 때는 방송이 너무 없어서, 자괴감을 느끼고 어떨 때는 방송이 너무 많아서 돈은 많이 들어오는데, 친구들 가족들 만날 시간 없어 인간관계 꼬이고, 건강까지 잃는다.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 얻는게 있으면, 잃기고 하고 잃는게 있으면 그로 인해 새로운 것을 얻기도 한다. 

땜빵 방송 한다고 투덜거리지 마라. 거기서 너만의 색을 보여주면 넌 또다른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질투심, 경쟁심, 후회, 미움, 분노의 감정이 그대를 잡아먹지 못하게 마음을 비우자. 나를 갉아먹는 나쁜 감정들을 지우고 비워내야,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덤덤히 '내가 좋아하는 방송'을 제대로 잘 할 수 있다.

그대,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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