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누크 Sep 05. 2021

효창공원, 홀트

이 시대의 트렌드, 지속가능한 삶

남편의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찾아본 결과 놀라웠던 것은 생각보다 비건 컨셉의 식당이나 카페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쉽게 갈 수 있는 동네들에도 꽤. 그래서 주말마다 그런 곳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하나 늘었다. 효창공원은 그 전에도 가까우면서 도심 속의 섬처럼 조용히 숨어있는 곳이라 몇 군데 카페에 즐겨 가곤 했었는데 이번에 정통 비건 식당과 카페가 공원 너머 경의선 숲길 근처에 있는 걸 알게 되어 가보게 됐다.

경의선 숲길은 공덕 홍대 쪽만 갔었고 이쪽은 온 적이 없었는데 의외로 조용하고 좋았다. 숲길은 언덕길로 쭉 이어져서 넘어가면 공덕오거리로 이어지는데 이쪽은 아파트가 꽤 많으면서도 조용한 동네였다. 주거자가 많아선지 의외로 숨어있는 가게들이 많은 느낌이었다. 아파트 단지 앞 높다란 골목길 안쪽에 숨어있는 리틀갱스터라는 조그만 비건식당에 들린 후 이번에는 삼각지 방향으로 쭉 내려와 홀트라는 카페에 갔다.

리틀 갱스터는 위치도 그렇고 동네 사람들이 단골로 삼을 법한 아주 작고 귀여운 가게였는데 홀트는 경의선 숲길 옆쪽으로 의외의 핫플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양 옆에 와인바와 주점도 이미 인스타에서 유명한 곳이라고 하는데 힙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용산은 완전히 안정된 주거동네의 분위기가 아니고 이것저것이 섞여 아직 개발 중인 묘한 느낌을 준다. 한 블록 옆인 삼각지는 워낙 대로변에 탁 트인 교차로라 좀 더 복잡하지만 효창공원 역 쪽은 적당히 조용하고 매력적인 동네다.

홀트는 완전한 비건을 지향하는 카페로 음료는 물론 베이커리까지 홀비건으로 구워내어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좀 유명한 곳인것 같았다. 오픈한지는 얼마 안된 거 같은데 홍대 느낌 물씬 나는 사람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사장님조차도 그렇게 보였다. 

나무를 사용한 따뜻한 느낌의 실내 인테리어와 가득 구워진 동물쿠키들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케익도 그리 유명하다는데 우리가 간 시간에는 아직 나오기 전이었다. 우리는 비건 카푸치노와 음양쿠키를 먹었다. 지난번 섹터바에서 먹었던 두부 브라우니처럼 음양쿠키도 비건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전혀 모를 정도로 식감이 좋고 맛있었다. 맛있는 메뉴도 메뉴지만, 주인의 철학과 스토리가 담긴 곳은 특별한 즐거움을 준다. 벽의 선반에는 여러가지 장식품과 함께 채식주의, 친환경, 슬로라이프에 대한 책들이 여러 권 쌓여 있었다. 

확실히 최근에는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비롯해서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에서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도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늘었다. 기후도 그렇고 우리 삶에 직접적인 변화가 체감이 되기 때문이겠지. 어쨌든 인간도 자연이 아름답고 평화로울 때 잘 살 수 있다는 건 본능에 가까운 진실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산처럼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를 볼 때 느끼는 답답함. 인공적인 철골 콘크리트 속에서 살면서 느끼는 답답함. 어느새 나도 자꾸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러움을 그리워하게 된지 오래 됐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당장 미미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모인 것들이 흐름을 형성하고 큰 방향을 바꾼다. 

카페 뒷쪽은 경의선 숲길이어서 작은 길을 따라 야외 테이블도 종종 늘어서 있었다. 에어컨이 추워서 잠시 나와 앉아 있으니 햇볕이 좋았다. 이 좁은 길로도 자꾸 차들이 비집고 들어와 아쉬웠지만. 

따뜻하게 꾸민 목조 단층집에 놀러온 것 같은 카페 홀트. 문을 열면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과 나무 숲이 보이고- 비건 컨셉을 빼고도 참 아늑하고 좋은 공간이었다. 살고 싶은 지구, 살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움직임이 많이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여러 모로 많이 개선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염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