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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Dec 01. 2021

휴대폰에 대한 단상

필수품이자 사치품이 되어 버린

원래 쓰던 휴대폰이 이제 갈 데까지 가서 갑자기 꺼지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교체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구매했던 스마트폰이 아이폰이라 별 생각 없이 이후로도 아이폰을 썼었다. 6s 모델을 지금까지 오래오래 잘 쓰다가 이젠 바꿀 때가 됐다, 싶어서 작년에 12도 한번 눈여겨보다가 그만 귀찮아서 해를 넘기고 이제야 바꾸게 된 것이다.

처음 애플 아이폰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참 신박했다. 디자인도 그렇고 인터페이스도 그렇고 뭔가 개성있으면서도 고급지고 예쁘고. 가격 대비 참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딱 필요한 기능만 들어있는 고급스러운 첨단 제품을 쓰는 느낌. 값어치가 있는 제품을 쓴다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스마트폰도 이후 시장이 커지면서 조금씩 그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카메라 기능을 먹고, 영상 기능도 먹고, 온갖 생활 처리를 휴대폰 앱으로 하기 시작했다. 뭐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sns가 너무 크게 생활을 잠식하면서 카메라의 비중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커진 것이다. 나야 원래 아날로그적인 인간이기도 하고 식당 갈 때 전문점을 선호하는 것처럼 기계도 여러가지를 탑재하기보다는 기본 기능에 충실한 게 좋다고 생각했다. 휴대폰은 어디까지나 통신기기이고 진짜 창작을 하려면 고급 카메라를 가지는게 맞지 않나, 영상 시청은 좀 더 큰 화면으로- 노트북이든 TV든.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스웠던 것은 중심기능은 이제 변할 것이 없다보니 그런 부가기능들이 비대해지면서 기계 자체도 무거워지고 그걸 빌미로 판매사들은 매년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면서 가격도 지속적으로 올렸다는 것이다. 나같은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언제부턴가는 더 이상 의미없는 스펙 확대가 저렇게 매년 행사처럼 나올 필요는 없는데-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몇 년 전의 심플하고 가볍고 예뻤던 그 폰의 기능 정도면 충분한데. 이젠 쓸데없이 무겁고 과하게 화려한 폰을 심지어 웃돈을 얹어서 사야만 한다.

나는 6s를 약 5년간 꽉 채워서 썼다. 번잡스럽게 쓰지도 않았고 곱게 써서 크게 불편하지 않았지만 주위에선 천연기념물 급이었다. 보통 주위에선 3~4년 정도면 폰을 바꾸는 것 같았다. 걔중에 IT에 빠져사는 사람들은 약정기간에 딱 맞춰 2년마다 꼬박꼬박 바꾸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난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따져보면 우리가 생활하면서 쓰는 모든 가전제품, 패션명품, 어떤 물건도 100만원에 육박하는 값을 지불한 후에 2년 후에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저 정도 고가의 제품을 샀으면 아까워서라도 5년 이상은 두고 쓰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휴대폰 산업은 통신사 약정판매와 교묘하게 연합하여 마치 휴대폰이 2년 단위로 바꾸는 소모품인 것처럼 프레임을 만들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 왠지 자연스럽다. 2년 간의 할부가 끝나면 다시 바꿀 때가 온 것이다. 그런 기분전환으로 바꾸는 소모품치고는 꽤 대단한 가격인데도. 매년 화려한 행사와 함께 새로운 버전을 소개하는데 이미 휴대폰이라는 제품 본연의 기능 업그레이드는 끝난지 오래됐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선 애플의 혁신도 이미 끝났다.

그래서 올해 구글에서 픽셀6라는 폰을 출시했을 때 나는 꽤 흥미로웠다. 디자인도 그렇고 브랜드 네임, 기능이 모두 괜찮아 보였는데 무엇보다 가격이 600불이라는 것이었다. 딱 내가 생각하는 적절한 가격이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필요한 기능만 있고 디자인이 예쁜 미니멀리즘 폰이 합리적인 가격대로 나오지 못하나, 궁금했었다. 분명히 그런걸 원하는 소비자들이 꽤 있을 텐데. 그것과 비슷한 제품이 드디어 나온 듯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글폰은 한국은 출시되지 않았다. 삼성과의 관계 때문인건지. 실제 써본 후기를 보지 못해서 평이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애플이 이미 어떤 선을 넘어간 것 같은 이 상황에 대항마로 나서기에 구글은 나쁘지 않은 기업이란 생각이었다. 

얼마전 남편이 구독하는 어떤 해외 테크 유튜버가 자기만의 올해의 폰 시상식을 만들어 올렸는데 올해의 폰에 가성비를 가장 큰 특징으로 꼽으며 구글 픽셀을 선정했다. 이제 폰 시장에서 기능을 강화하는 시기는 지났고 좋은 물건을 얼마나 합리적인 가격대에 내놓을 수 있는지가 경쟁의 포인트라고 생각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의미에서 LG전자가 휴대폰 사업부를 접은 것은 난 왠지 안타까웠다. LG의 가전은 팬층이 두텁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그램 노트북 같은 걸 보면 애플이나 소니 못지 않게 미니멀한 디자인까지 갖추어 아주 멋진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LG 폰이 잘 안되는 걸 보면서 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그램 같은 미니멀한 디자인과 탄탄한 기본성능을 갖춘 폰을 50~60만원 대에 출시하면 반응이 좋을 것 같은데... LG 잘 만들 거 같은데... 그러나 그러다가 끝나 버렸다. 실제 소비자와 시장은 아닌 걸까? 합리적 소비보다는 과시적 소비가 우리나라의 현실인 걸까? 

오늘 아이폰 13미니를 사고, 충전기도 따로 샀다. 심지어 이젠 디자인조차도 그렇게 세련되고 예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직전 폰까지는 케이스도 안 씌우고 다녔었는데. 이번엔 무광 실리콘이든 가죽이든 케이스도 또 하나 사야 할 것 같았다. 어느새인가 조금씩 부속제품도 다 추가요금제로 바꾸고 있는 애플의 행보를 보면 이젠 스티브 잡스가 처음 만들었던 그 색깔, 철학의 기업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이 시대에 매우 어울리는 자본주의 대기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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