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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Nov 28. 2021

명동교자

중국의 맛?

칼국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다. 아저씨 입맛 가진 사람치고 칼국수 안 좋아하는 사람 없을 것이다. 뜨거운 국물 좋아하는 비슷한 식성의 동기 하나는 김광석 샤브칼국수를 소울푸드라고 부르면서 점심 때마다 질리지 않고 꾸준히 먹으러 갔었는데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폐업하는 바람에 무척이나 아쉬워 했었다.

나도 그래서 맛있다는 집들은 일부러라도 찾아가서 먹어보는 편이지만 의외로 이 쉬워보이는 칼국수도 제대로 낸 육수, 쫄깃한 면발, 잘 담은 김치 요 3가지를 충족시키기가 어려워 여기저기에 맛집을 포진해두고 있지는 못하다. 최근 식당이 많지 않은 우리 동네에 꽤나 내공있는 칼국수 집을 찾아 기분이 좋았는데 이곳은 특성상 주말에는 자주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아쉬웠다.

어제는 멀리 올림픽공원 쪽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왔다. 결혼 전에는 참 자주 갔던 동네인데 이제 이사를 하고 나니 그저 멀기만 한 곳이 됐다. 지하철로 근 20정거장을 가야하는 먼 거리였다. 새삼 내가 얼마나 멀리 떠나왔나 하는 것이 실감이 나서 기분이 묘했다. 집까지 돌아오려니 숨도 차고 해서 남편과 중간에 만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별 생각없이 명동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의외로 명동엔 가고 싶은 식당이 잘 없다. 지난번 운동화 사러 오랜만에 갔던 명동은 1층 상점들이 머리빗 이 빠지듯 너무 비어 있어 이상한 느낌을 주었었는데. 

이제 위드코로나로 어딜 가든 사람이 바글거리니 좀 나을까, 생각을 하다가 떠올린 것은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못 가봤던 쯔루하시 후게쯔와 명동교자였다. 

면은 언제 먹어도 좋은데 특히 오꼬노미야끼는 쉽게 먹기 힘든 메뉴다. 연남동의 소점이 옆사람 죽어도 모를만큼 맛있다고 해서 너무 가보고 싶었으나 코로나로 방역수칙 한참 심하던 시기에도 5시에 가야 웨이팅이 덜한 수준이라 하여 아예 포기하고 못갔다. 그때 대신 와보려고 했던 게 이 곳. 내 기억엔 예전 10년 전쯤에 분명 홍대에 같은 이름의 이자까야가 있었다. 당시엔 보기 드문 세련된 분위기의 이자까야였고 직장 첫 멘토모임을 했던 곳이라 기억에 남아 있다. 근데 거긴 없어지고 이렇게 명동 내 오꼬노미야끼 전문점이 생겼다. 어쨌든 일본 오사카인가 어디의 분점이라고 한다. 그래서 추위를 견디며 종종걸음으로 찾아가보았다. 

허허 이럴수가. 거리는 그래도 한산한 편이었는데 왠일인지 토요일 6시 반의 시간에 이미 영업종료 게시가 붙어 있었다. 오늘의 대기손님이 너무 많아 더 이상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홍대 인근의 작은 가게도 아니고 나름 명동 한복판에 널찍하게 자리잡은 곳인데... 믿기 힘들어 안쪽을 들여다 보았으나 대기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는 남편의 말에 당혹스러운 마음으로 발을 돌렸다.

날이 추워서 더 이상 미련없이 바로 옆골목에 위치한 명동교자 분점으로 들어갔다. 

명동교자는 한국에 수없이 많은 칼국수 집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아이콘으로 영업하고 있는 곳이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칼국수, 그리고 명동의 상징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사람은 물론 명동에 관광객이 늘어나면서부터는 외국인들도 많이 찾아와서 먹는구나 싶었다. 내가 간 곳도 여러 곳 생긴 분점 중의 하나였다.

입구는 좁다랗게 나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깜짝 놀랄만큼의 조밀한 밀도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여앉아 모두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이렇게 바글바글한 식당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명동거리 한산한 게 다 여기 사람들이 들어와서 먹고 있어서 그런가 싶을 정도로. 운 좋게 두 명이라 바로 앉을 수 있었다. 가방과 코트 걸기도 힘들 정도로 바짝 붙어 앉아 우리도 칼국수 두개를 시켰다. 남편과 여기 온 것은 또 굉장히 오랜만이라 은근히 기대가 컸다. 음식도 빠르게 나왔다. 얇은 교자 4개가 얹어진 어두운 빛깔의 칼국수.

국물을 한 입 떴는데 엥. 난 고개를 갸우뚱했다. 중국집 맛이었다. 위에 올라간 고기 고명, 그리고 센 불에 볶은 듯한 양파와 채소들이 정확히 중국집 요리에서 나는 맛이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굴소스 비스무리한 맛과 향도. 독특하네. 옛날엔 분명 전통 칼국수 맛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늘폭탄 김치는 여전했고 국물도 면도 다 좋았다. 그런데 먹는 내내 중국 퓨전 국수를 먹는 것 같아서 영 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먹자마자 중국집 맛이라고 한건 남편도 같은 반응이었는데 원래 타국 음식을 선호하는 남편은 그래서 더 좋다고 했다. 안 오던 사이에 명동이 중국 관광객들의 천국이 되면서 명동교자도 살짝 스타일을 바꾼 것인가. 그러고보니 애초 명동교자란 상호조차도 중국식 이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래도 한국음식의 대표인 칼국수, 그리고 그 대표격인 명동교자인데 왠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명동교자는 정통이 아닌 미묘한 퓨전음식같은 무엇이 되었고, 오히려 이름없이 동네마다 퍼져있는 명동칼국수에서 진짜배기 한국식 칼국수를 끓여낸다. 사실 너무나 먹기 쉬운 생활형 메뉴라 어디든 무슨 이름이든 상관은 없다. 다만 우리나라는 돈의 흐름을 쫓아 유행을 타는 경향이 강하다. 빨리 빨리 바꾸는 걸 잘하다보니 내 색깔, 내 개성을 오래 지키고 보존하는 것은 약하다. 수많은 작은 가게들은 몰라도 아이콘 격이 될 정도의 브랜드는 그런 기둥 역할을 해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찾아갔던 노포 명동교자에서 조금 남았던 아쉬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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