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얼마 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암 4기라는 소식이었다. 어느 날 아침 단톡방에서 들려온 소식은 이거 장난인가? 싶은 정도로 황당한 느낌이었다. 불과 한 달 전에 만났을 때만 해도 너무나 멀쩡했고 그 동안에도 여러 운동을 좋아하고 매우 활기차고 건강한 친구였다. 그런데 암이라니. 놀라서 울고 통화하고 그런 후 며칠이 지났다. 잘 믿기지 않는 가운데 마음 한 구석에는 개운치 않은 끈끈한 무언가가 계속 남아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라서 오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역시 건강했던 친구의 모습과 아직 마흔이 안 된 나이에 발병했다는 사실이 너무 큰 괴리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물론 직장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에 또래 사람들의 이런 저런 암 발병이 있었다. 중증부터 초기까지 사례는 다양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일 열심히 해봐야 소용없다, 스트레스 받아봐야 소용없다, 내 몸 건강하게 챙기는 게 우선이다, 그런 얘기를 반복적으로 했었다. 회사의 업무가 점점 본질적인 생산성을 잃어가고 급여 복지 등 보상은 줄어드는데 이렇게 젊은 직원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문제까지 심해지니 직장 분위기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비단 우리 직장만의 특수한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였다. 대한민국 전체의 분위기가 그랬다. 생산적이고 본질적인 일, 그로 인한 성취감과 보상은 많이 없어졌고 대신 기본적인 생존 위기 속에 나 하나만을 지키려는 이기주의, 기회주의, 투기 심리만 커졌다. 이게 안 좋은 것은 알겠지만 왜 그렇게 변했는지 배경도 알기 때문에 씁쓸함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큰 화두는 바로 불안이다. 참으로 다양한 이유에서 오는 불안감을 기저에 깔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오늘 내일, 특별한 사건이 없는데도 수면의 질이 좋지 않고 조용히 가만히 있기 힘들고 가끔은 아무것도 안한 채 쉬는 것도 불편하다.
의식주, 기본적인 생존이 힘들어진 것이 제일 큰 이유. 심한 경쟁 속에 유대감, 안정감을 얻어야 할 인간관계가 하나 둘씩 사라진 것도 큰 이유. 게다가 요즘 느끼는 것은 불확실성이 점점 커진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삶이 조금 느리고 단순했다. 모두가 겪는 일도 사는 형태도 비슷했고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쉬웠다. 대충 내가 이렇게 살겠구나, 하는 예상이 쉬웠다. 그 와중에도 물론 인생은 모른다는 옛말이 예전부터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변화가 빨라졌다. 물질 자본주의로 인한 소비수준의 변화, 디지털 도입에 따른 생활 환경의 변화. 거기에 환경파괴로 인한 불가항력 분야의 변수까지 더해졌다. 특히 후자는 90년대 이후로 묘하게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젊은 나이에서 발견되지 않던 암을 비롯한 중증질환의 발병, 혹은 전세계적으로 퍼지는 전염병이나 자연재해와 기후변화 등. 일상에서 의식주를 챙기기 위해 헉헉거리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그 와중에 저런 대형 변수가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매우 현실에 가까워졌다. 10년 후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아둥바둥하지 말자는 말 속엔 사회의 빠른 변화 속도도 있지만 저런 블랙스완 부류의 대형사건도 포함된다. 개인의 입장에선 사실상 언제나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서로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저런 것들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 불안감이 사람의 몸과 마음에 다시 안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참 살기 힘든 시대인 것 같다. 인류가 자연스럽고 행복했던 시대는 이미 저 뒤로 지나갔고 이제 겉만 요란한 디지털 4차 혁명 얘기를 듣고 있으면 디스토피아 영화들만 떠오를 뿐이다. 행복의 본질이 어떤 건지 이미 잘 알고 있는데 시대는 이상하게도 반대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다.
어찌됐든 개인은 가장 강한 생존본능에 의해 살 길을 찾아 애를 쓰게 될 것이다. 나로서는 잠시 잊을만 하면 새로운 형태로 찾아오는 통증과의 싸움이 그 1차전이다. 통증의 원인이요 또한 치료로서 필요한 마음 수양 또한 큰 과제고 앞으로 내가 찾아가야 할 생존의 길이다. 이 불안의 시대 속에서 이 문제는 비단 나만 겪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시대가 흐를수록 관건은 잃어버린 본질을 찾는 것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친구의 건강, 나의 건강, 모두의 건강을 위해 기도한다. 어두워져 가는 시대 속에 작은 등불을 꼭 밝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