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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Nov 03. 2019

무제

글은 어떤 의미에선 치유의 도구이다.

결국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게 된다.

그리고 가장 괴롭고 또 외로울 때에 글을 쓰게 된다. 사람들과 만나 즐겁게 웃고 떠들 때에는 글을 쓸 시간은 없다. 나로서는 가장 괴롭고 외로운 때는 역시 아플 때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어쩌면 끄적거리는 것을 시작한 것도 다 아플 때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플 때만큼 혼자일 때가 있을까.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공감할 수 없고 함께해 줄 수 없는 것.

오래 묵을대로 묵은 행사가 다시 돌아와서 주말 이틀을 꼬박 통증에 시달리면서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제는 복통, 오늘은 다시 두통.

그러나 둘 중에 고르라고 하면, 역시 복통이 낫다. 동의보감에 나왔던 말 그대로.. 통증의 제왕은 두통이다.

너무나 다양한 원인에서 시작되고 치료법도 없는 통증의 제왕. 눕지도 서지도 걷지도 먹지도 못하게 만드는 통증의 제왕. 월례행사가 끝나기 전까지 이 특별한 두통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해진 시간을 그냥 꾸역꾸역 견디어 내어야만 한다. 

오늘 오전에는 머리를 비스듬히 누이고 마루에 앉아 밖을 보고 있었다. 큰 유리창 바깥에 작은 연두색 벌레가 하나 붙어 있었다. 물끄러미 그 벌레를 보고 있으니 우습게도 벌레 처지가 나보다는 낫겠단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벌레는 작고 단순한 구조를 하고 있으니 아마 나처럼 아픈 놈들도 없겠지. 짧게 살다가 죽더라도 통증에 시달리며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복잡하게 진화해서 역시나 복잡다양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사람의 몸은 여기저기 불량도 고장도 왜 이리 많은지. 건강하게 사는 것을 제 일의 소원으로 빌어온게 벌써 몇 년인지 모르지만, 역시 타고난 몸의 사양은 쉽게 뒤집을 수 있는 건 아닌거 같다.

하필 미세먼지까지 덮쳐와서 어제 오늘은 창문도 제대로 못열고 집에 그대로 갇혀 있었다. 아마 그것도 컨디션 악화에 한 몫 했겠지.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한데 그걸 위해서 난 통증을 없애는 법을 알아야 한다. 어디 허준 같은 명의 없나. 이렇게 이틀 사흘의 통증을 견디어 내고 나면 십 년은 늙어버린 기분이다. 과연 이 아픔은 날 늙게만 만드는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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