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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Feb 18. 2020

영화 시즌

영화가 보고 싶을 때는 정작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다가 어느 때가 되면 갑자기 괜찮다는 영화가 쏟아진다. 전에는 그냥 어렴풋이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특히 명절과 크리스마스 연말 시즌에 영화 좀 좋은 거 개봉하면 괜찮겠다 싶어도 생각보다 영화관은 한산했다. 그중에서도 12월이 그랬던거 같다. 날도 춥고 저물어가는 연말에 뭔가 실내 공연이 그리운 시즌인데- 한 개 정도 볼까 말까 하다가 결국 새해가 밝아서 맘을 다잡고 이런저런 일이 바빠지다 보면 애매하게 2월쯤 괜찮은 영화들이 쏟아져서 뭔가 안 맞는다고 투덜거렸던.

이번에 기생충을 보면서 정말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닫게 됐다. 우리나라는 하반기부터 시작되는 서양 시상식 일정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상작들이 한번에 2월 쯤 개봉하는 일정이었던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해는 2015년 초로 버드맨, 위플래쉬, 이미테이션 게임,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이 동시에 개봉했다. 사실 역대 후보작들 목록을 보면 매년 수작들이 최소 2~3개 이상은 같이 오르는데 유독 저 해는 몇 주 사이에 빡빡하게 저 영화들을 다 보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주요 상은 버드맨이 석권했다. 그렇지만 지나서까지 계속 다시 보게 되는 영화는 위플래쉬다. 

최근에는 한국 영화들이 많이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는 확실히 외화가 더 다양하고 영화계의 주류를 차지했던 것 같다. 원래 난 책에서 시작했고 글과 상상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엔 종합예술로서의 영화가 얼마나 매력적인 장르인지 다시 느끼게 된다. 아니 그보다는 영화 한 편을 밀도 있고 멋지게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흔히 영화는 책보다 상상력을 제한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고도 하는데 바꾸어 말하면 그렇게 모든 이미지와 소리를 구현한 완벽한 세계를 만든다는 것은 글을 쓰는 것보다 몇 백배 더 어려운 작업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무섭게 치밀하고 꼼꼼한 스타일이라는 것을 보면서 다시금 대작을 만들려면 역시 장인정신과 끈기와 치밀함이 필요하구나 싶다. 우리나라건 일본이건 서양이건 어디건. 난 사실 그의 영화가 아주 맞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영화 살인의 추억은 참 명작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또 이번에 재치있는 수상 소감을 들으며 역시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건 역시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어록,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라는 그 말. 

하나씩 하나씩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걸 새기며 지나가야지. 위플래쉬도 처음 봤을 때는 살짝 숨이 막혔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쳐지는 곳이 1초도 없는 너무나 잘 짜여진 작품이다. 영화 속 플레처 선생이 학생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것은 절대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거장의 작품에는 그와 비슷한 광기와 노력과 그리고 연마 과정이 항상 함께하는 것 같다. 아마 데미언 셔젤 감독도 무섭게 에너지를 불살라가며 이 영화를 만들었겠지. 비단 예술뿐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몇 곳만큼은 그렇게 불사르는 지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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