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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Feb 26. 2020

코로나

사상 초유의 바이러스 사태로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특이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진짜 한 달 전 중국이 떠들썩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중국 주재원들 대응방안 때문에 시끄럽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우리나라가 더 패닉상태인 것 같다.

문제는 경험해보지 않아서 더 우왕좌왕하고 두서없이 하루하루가 흘러간다는 것이다.

운영리스크 관리계획을 짜고 누가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렇게 계획과 고민과 보고로 점철되면서 이번주도 지나가고 있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 개별 직원들의 자리는 좀 고요해졌다.

신기하게도 난 해외사무소 담당인데도 예산협의 등 문의가 뚝 끊겨버렸다. 역시 세계적 현상인건가.

매일 확진자는 늘어가고 있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고.

그렇다고 몇몇 발빠른 기업들처럼 재택근무를 실시하거나 돌아가면서 휴가를 쓰거나 조치를 취하면 차라리 나을 텐데 이도 저도 아니게 계획과 고민과 보고만 반복되다가 아마 이번주도 꾸역꾸역 출근할거 같다.

재택근무도 아무나 하는건 아니고 하게 되어도 소수만 할텐데 안 그래도 어린이집 휴원이 비상사태라 난 후보에도 들지 못할거 같다. 끝까지 필수요원으로 자리 지키면서 또 멍때리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인가.

점심엔 몇 몇 비슷한 기수 사람들과 조용히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그야말로 분위기가 푹 가라앉았다. 의미없는 업무도, 팀 내 갈등도, 이상한 상사도 다들 십년 남짓 회사생활을 하다보니 초기에 강성 반골이었던 사람도 이젠 지쳐서 다들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게다가 반복되는 주제와 패턴에 이젠 그 색깔도 희미해져버렸다. 결국 결론은 이렇게 매일매일 영혼없이 지내다가 또 무서운 속도로 하루하루가 지나가서 마흔이 훌쩍 넘어버리냐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우울하다고.

그렇지. 그 누구라도 인생의 동력을, 의미를 필요로 하는데. 그 존재의 의미가 너무나 간절하고 간절한 것인데 나이가 들수록 이 촘촘하게 망처럼 짜여진 사회와 일반인들의 생활은 무미건조하기만 하다. 이렇게 결국 무언가에 오타쿠처럼 빠져든다고 해도. 그것이 취미든, 혹은 종교집단이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최근 출산율이 기록적으로 떨어진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주위엔 다들 성실하게 아이들을 낳아 기르고 있다. 확실히 육아에 너무나 험난한 환경은 맞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낳는건 역시, 부모 자신의 필요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긴 인생의 외로움과 권태를 이기고 본질적인 채움을 하나 만들어보려는 욕구 때문에.

어찌됐든 미세먼지만으로도 참 힘들겠다 싶은데 전염병까지 창궐하니 애기있는 집들은 너무 힘들거 같다.

사무실에 있어도 재택을 해도 어디에 있든 지금은 작은 큐브에 갇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답답한게 항상 너무 싫었는데 이젠 어쩔 수가 없다. 일본 사람들처럼 내 안으로 파고드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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