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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Mar 22. 2020

후암동, The Monologue Cafe

산꼭대기 골목에 숨어있는 멋진 영국 감성 카페

주말에 잠시 바깥 바람 쐬러 나가기에 만만한 것은 역시 카페 투어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곳은 잘 안 가게 되고 그래서 더욱 조용한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들을 찾아가게 된다. 이 동네에 이사오고 나서 후암동이라는 동네를 처음 가보게 됐는데 참으로 매력있는 예스러운 동네다. 연희동, 성북동이랑 느낌이 좀 비슷한데. 여긴 남산 자락 아래에 있어서 어딘지 더 아늑하달까. 개발이 안되고 남아있는 것이 참 신기할 정도다. 역시 강북 특유의 그 분위기가 참 좋다. 처음으로 여기가 매력적이라고 느낀 건 야스노야에 양고기를 먹으러 갔었던 저녁인데 식당과 동네 분위기가 묘하게 일본 느낌이어서 아, 생각해보니 예전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이쪽에 살았더랬지 하며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후암동, 청파동, 원효로 일대는 개발 전 낮은 주택들과 저층의 건물로만 쫙 채워져있다. 특히 숙대입구역에서 용산고 쪽으로 쭉 들어가면서 시작되는 후암동은 살짝 교통이 외져서 그런지 더욱 조용하고 정취있는 분위기다. 이후 후암동 터줏대감이라는 밀영이라는 카페를 한번 갔었는데 여기도 너무나 매력적인 장소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가게처럼, 옛날로 돌아간 작은 마을의 로타리 광장 2층에 위치한 다락방 같은 가게. 책으로 빼곡하게 채워져있고 주인이 직접 이런저런 빵을 구워내고 온갖 종류의 커피와 차를 파는. 시공을 잠깐 잊게 만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어제는 밀영에서 더 남산 비탈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한 더모놀로그카페 라는 곳을 가보았다. 남산 자락에 더 바짝 붙어 올라가는 이곳은 완전히 주택들로 빼곡히 들어섰고 경사가 심한 옛날 동네이다. 이 카페도 협소주택의 두 층을 개조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좁고 위로 높은 복층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미 후암동 초입부터 조용했으나 이 윗쪽까지 올라오자 정말 조용하고 사람은 없었다. 여행온 것 같은 기분으로 카페에 들어서자 또다른 런던 느낌의 인테리어가 우리를 맞이했다. 사장님은 모노클 잡지를 비롯한 컨텐츠의 팬이신 모양이었다. 두 층이 아기자기하게 원목느낌의 가구와 각종 잡지 관련 컨텐츠로 알차게 꾸며져 있었는데 여긴 마치 런던의 한 주택 혹은 카페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모노클은 나도 정말 좋아하는 잡지이다. 출장 자주 다닐 때 비행기에서 알게 된 잡지인데 디자인이며 컨텐츠가 너무 좋아서 긴 비행시간 내내 그것만 보면서 다녔다. 잘은 모르지만 뉴욕에 뉴요커 잡지가 있고 런던에는 모노클이 있을거 같은 느낌이랄까. 왠지 타임이나 이코노미스트보다는 더 아기자기하고 문화컨텐츠 쪽에 초점을 맞춘거 같은, 집에 모든 호를 사다가 소장해놓고 싶은 그런 잡지이다.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다가 옛날 생각이 났다. 그런 의식주, 생활과 관련된 컨텐츠를 다루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그나마 구체적인 현실의 답처럼 보였던 것이 서양의 언론사들이었다. 그렇지만 문과의 한계인 언어와 문화 장벽으로 그건 그냥 꿈처럼 저 멀리 남겨진 채로 끝났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접하던 컨텐츠들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실제로 들춰보게 된 모노클이나 뉴요커 잡지는 현실에서 내가 꿈꿀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글로 쓰건 편집을 하건 아니면 그 업계에서 실제로 일을 하건. 

어느 나라건 파워는 주로 법조, 의료, 금융 이 쪽에서 쥐고 있는건 잘 알겠는데 좀 더 소프트하고 다채로운 색깔을 지닌 분야가 역시 좋아 보인다. 계속 꿈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색을 유지할 수 있는 걸 수도 있다. 그치만 인생은 한번뿐이니까 이렇게 관심이 가고 좋은 일도 한번쯤은 해보는 게 맞겠지. 

요즘 유행하는 이 카페 투어도, 컨텐츠에 목마른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마치 여행을 간 것처럼 만들어주는 후암동의 카페들. 난 강북의 예스럽고 개성있는 장소들이 참 좋다. 점점 도시가 개발되고 어디나 초고층 아파트, 빌딩들이 빼곡하게 들어서는데 제발 몇 군데 동네만큼은 옛날의 모습대로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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