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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Mar 16. 2020

시골 입맛

갈수록 원래 입맛이 강해지고 별로 안 좋아했던 음식은 비위가 상하거나 뒤끝이 안 좋아서 더 안 먹게 된다.

난 매우 한국스러운 입맛, 소위 말하는 아저씨 입맛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 밥집 찾아먹기가 쉬울거 같으면서도 또 그렇지가 않다. 그 흔한 김치찌개, 된장찌개 집처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의외로 여의도엔 잘 없다. 어쩌면 국회 쪽에 없는 걸수도 있고 ㅋ

오늘은 IFC몰에 뭐 살게 있어서 잠시 갔다가 점심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던 중 오랜만에 지하 푸드코드 층으로 내려갔다. 여긴 12시에 오면 줄이 하도 길고 복잡해서 자연히 발길 끊은지가 오래 되었다. 요샌 걸어서 멀리 가는걸 싫어하는 추세이기도 하고. 그간 상점들이 많이 바뀌고 리뉴얼되었다는 건 알았지만 자세히 본건 오늘이 처음이었는데 진짜로 메뉴가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쭉 보다가 해장옥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아저씨 입맛인 나에겐 이름부터 잘 맞을 거 같은 식당이었다. 언제나 아쉬운 건 아저씨 입맛이지만 내가 싹 비껴가는 것이 술을 못한다는 것. 그리고 기름진 곱창, 장어 등 몇 가지 메뉴는 피해간다는 것. 살펴보니 해장옥 메뉴들도 선지 곱창 국 빼곤 모두 내 취향이었다. 오미식당처럼 혼자 먹기 좋은 1인 테이블도 꽤 있고, 해장옥은 작고 깔끔한 식당이었다.

봄이라 그런가 미나리꽁치비빔밥이란 메뉴가 단번에 눈길을 끌어 그걸 시켰다. 먹어보니 매우 만족.

이곳은 묘하게 나의 취향을 다 만족시키는 집이었다. 내가 밥집 고를때 중요한 요소들 몇 가지.


- 단백질 반찬이 아예 없는 건 좀 그렇지만 비율상 밥이랑 김치가 훨씬 많아야 한다. 나물 같은 채소 반찬 많으면 더욱 좋고.

- 양 적은 거 정말 싫다. 특히 밥하고 김치 인심 적은 건 더 싫다. 김치가 요새 단가가 많이 든다고 듣긴 했는데 차라리 돈 좀 더 내더라도 김치는 눈치 안 보고 먹고 싶다. 말 그대로 단백질 메인요리 차림도 아닌 우리나라 밥상에 김치 깨작깨작 놓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듯.

- 따끈한 국물이 좋다. 간이 좀 있는 게 낫고 그러나 느끼한 건 안 맞는다. 얼큰한 건 좋다. 


비빔밥이 만원이긴 하지만 대신에 밥도 소복하게, 꽁치랑 미나리도 넉넉하게 들어있어서 좋았다. 역시... 봄을 대표하는 나물은 미나리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김치 중에 제일 좋은건 열무김치인데 난 이런 풋풋한 이파리 달린 채소가 왜 이리 좋을까. 폭 익은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넉넉하게 주고 거기에 포인트였던 건 싱싱한 풋고추와 된장. 이게 생각보다 신선한 맛을 더해줘서 리필까지 해서 먹었네. 이 집 대표메뉴가 빨간 한우국밥인거 같던데 그건 옆에 떠먹으라고 한 소반 주더라. 이모저모로 알차게 맛있게 먹고 나왔다.

먹으면서 다시 생각했지만 난 정말 시골 입맛이다. 밭일 하다가 먹는 새참 밥상, 아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가 그런거 아니려나 싶다.

깔끔한 밥집 찾기 힘들어서 자꾸 일본 가정식 비스무리로 가면 거긴 또 간이 너무 슴슴하거나 달달할 때가 많아서 뒤끝이 영 아니었는데 오늘은 만족스런 점심이었다.

MSG 안쓴다고 크게 써붙인 마마된장, 장사랑 등 백반 전문점들과 북창동 송옥까지 입점했더라. 

앞으로 시간 될 때마다 한번씩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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