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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May 30. 2020

내수동, 북한산제빵소

빵보다 커피보다 멋진 공간

코로나가 다시 터졌지만 간만에 날씨가 좋은 주말이었던 오늘.

토요일 점심은 집에서만 먹었었지만 오늘은 밖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고민하다가 경복궁 쪽으로 갔다.

옛날에는 광화문 대로 근처와 북촌 쪽으로 많이 다니다가 이제는 흐름이 서촌과 내수 내자동 쪽으로 옮겨간 것 같다. 경희궁의 아침 단지에서 밥을 먹고 바로 옆에 북한산제빵소 광화문점으로 옮겼다.

지난번 은평 본점에 갔다가 대실망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 분점은 너무나 쾌적하고 좋았다. 묘하게 숨겨진 거 같은 이 동네의 분위기가 일단 좋았는데 대로 안쪽에 숨겨진 작은 골목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이 작지만 블루리본을 엄청나게 붙인 카페며, 예쁜 식당과 학원들이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북한산제빵소는 2층 단독주택을 매입하여 리모델링한 모양이었는데 작은 안뜰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져 옆 건물들과 조화롭게 위치해 있었다. 자리도 여유가 있었고 단독주택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어 어딘지 아늑한 분위기였다.

마당 의자에 앉아 한참을 날씨를 즐겼다. 커피도 빵도 맛있고 지난번의 실망했던 기억이 싹 사라졌다. 굳이 오래 걸려 본점을 찾아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1,2층 야외에 앉은 사람들 모두 만족스러워 보였다. 나도 기분이 좋아서 한동안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생각해보니 이런게 편안한 환경이었다. 조용한 골목, 넓게 트여 동네와 연결되어 있는 집 구조. 나무가 우거진 작은 마당. 길가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잘 보이는. 물론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있는 공간이 주는 심적인 편안함도 있었고. 원래는 이런 골목의 이런 단독주택 같은 주거지에서 산다면 좋았을 것이었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론을 읽어보면 난 구석기 DNA를 그대로 지닌 유형이다. 고립되면 불안하고 시야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환경이 맘이 편하다. 계속 얘기하지 않아도 가족들이 함께 있어야 집에서도 편안하다. 왠만하면 테라스가 좋고 바깥과 자연이 통하는 공간이 좋다. 그러니 왠만한 날에는 계속 나가고 싶어진다.

아마 우리나라도 대부분 그런 관계지향적 발산형 인물들이 많이 사는 나라인 거 같다. 그래서 업종 중 가장 성황을 이루는 것이 바로 카페인 것이다. 모여서 수다떠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혼자 작업하는 사람들도 전부 컴퓨터 책을 싸들고 카페로 나간다. 이유를 알 것 같다. 작은 집 안에 사람들과 완전히 단절되어 혼자 있는 걸 진정으로 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다. 혼자 작업하더라도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이 무의식적으로 편한 것이다. 물론 카페의 아름다운 인테리어나 감성도 한 몫 하겠지만.

서울의 인구 밀집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다보니 어쩔 수 없이 아파트는 점점 불편한 형태로 바뀐다. 좁은 땅에 최대한 많은 집을 지어야 하니 신축 단지들은 높은 동들이 좁고 빼곡하게 들어찬 형태를 하고 있다. 고급스러운 닭장이다. 공용공간과 녹지는 점점 없어지고 세대는 많지만 그간의 교류는 없다. 일단 집으로 들어가면 다른 사람들과는 철저하게 단절된다. 10억 이상을 주고 이런 집을 겨우 마련한 후에 사람들은 테라스와 나무와 전망이 있는 카페를 찾아 뛰어나간다. 내가 편안하게 여기는 환경의 조건은 알겠는데 현실에서는 그것이 오아시스 같은 꿈조각이다. 어찌됐든 가족, 친구, 동료 등 사람들이 내 행복을 좌지우지한다는데 무조건 넓은 집을 찾아 저 멀리 외곽으로 떠날 수도 없고 참 안타깝다. 이런 이유로 카페들은 앞으로도 발전하고 또 번성할거 같다.

어쨌든 북한산제빵소 분점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가끔씩 마음의 쉼터가 필요할 때, 그리고 좋은 사람과 수다떨고 싶을 때 이 동네로 다시 놀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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