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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Jun 21. 2020

사직동, FOLKI

스칸디나비아 어딘가의 감성?


언제부턴가 주말에는 좋은 식당이나 카페에 다녀오는 것이 주된 소일거리가 되었다. 갈수록 감성을 자극하는 컨텐츠의 시대이기도 하고 결국 먹는 것이 사람의 가장 중요한 본업 중의 하나라서 그런거 같다.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공간은 변치않는 가장 강력한 컨텐츠로 남을 것이다. 좋은 사람이 함께 하면 더욱 완벽할 것이고.

그래서인지 요샌 인스타그램이 다른 SNS를 다 눌러버리고 있는거 같다. 이미지와 느낌이 중요하니까. 

폴키는 인스타에서 서촌 카페라고 치면 가장 많이 보이는 카페 중 하나다. 이미지와 감성을 외관에서부터 잘 잡았다. 폴키라는 단어도, 카페의 강력한 외관도 왠지 북유럽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서촌 골목골목에 조용하고 다채로운 명소들이 숨어있는데 폴키는 그중에서도 더 왼쪽에 치우쳐 사직단 길가에 면해있는 작은 카페다. 예전에 삼청동이 유명했다가 이젠 북촌과 서촌으로 퍼져나갔듯, 그 물결이 더 조용한 바깥 동네인 사직동과 내수동 쪽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사직단 주변은 정말 더 조용하다. 지난번 아르크에 한번 가보고 참 좋아서 다른 곳도 가보자, 찾아보는데 폴키가 등장했다. 오늘은 날이 너무나 더웠다. 예보에는 31도라고 했는데 체감으로는 34도는 올라가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이런 불볕더위니까 작은 카페여도 자리가 있지 않을까? 한가닥 생각을 품으며 가보았다.

사람도 얼마 없는 작은 골목 윗쪽에 조용히 자리잡았지만 이미 그 앞에는 타는 듯한 햇빛 속에서 카페 외관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였다.

한옥을 개조한 이 카페는 가죽공방을 겸하고 있었는데 작은 홀과 안쪽의 방 하나에 테이블들이 몇개 있고 바깥 중정에도 테이블이 두개 정도 있는 작은 카페였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가을이면 최고 명당일 창가 자리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바깥 풍경이 좋아 남편과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의자가 스툴이었다. 등받이만 있었어도 이 자리도 훨씬 편한 자리가 됐을 텐데. 일부러 이걸로 놓으셨나? 

안쪽 방에는 테이블이 네 다섯개 놓여있었는데 사람들이 꽉 차 있어서 흠칫 놀랐다. 좁은 공간에 좀 답답해 보였지만 다들 개의치 않고 앉아 있었다. 또다른 방은 작업실로 가죽 제품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재밌는 곳이었다.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원래 창가자리로 돌아와 밖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눈이 따가울 정도의 햇볕 속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운 좋게 옆 테이블 자리가 금방 비어서 우리는 옆으로 옮겼다. 창가자리는 계속 비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20분쯤 지나자 둘씩 들어온 손님들이 딱 붙어서 모두 자리를 잡았다. 앉아보니 의자가 오래 버티긴 힘들어 보였는데 이 손님들은 매우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오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온 가게가 만석이 되고 난 후에도 손님들은 10분 간격으로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냥 나가기도 하고 테이크아웃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조용하고 외진 동네에 이 더운날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주위에 등산로가 있는지 몇몇 테이블은 등산복을 입은 팀들이었다. 그밖에는 대부분 젊은 여자손님들이었는데 요즘 유행하는 베이지색 린넨 옷을 다들 걸쳐입고 비슷한 머리와 화장을 하고 있었다. 홀은 곧 조용해졌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들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한 테이블 뿐이었다. 모두들 대화가 아니라 쉬고 싶어서 들어온 모양이었다.

주로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들은 평일에 와서 한가한 카페의 사진을 찍고 올리고 하던데 여긴 정말 평일에 오면 좋을 카페였다. 누가 적은대로 우리 집 앞 골목에 있으면 딱 좋을 법한 그런 카페였다. 우리는 1시간 반 정도 앉아있다가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팀이 자리가 없어 시무룩해졌을 때 일어났다. 

사직단은 정말 조용하고 호감가는 동네였다. 고궁 근처가 모두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지난번 내자 내수동에 갔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담을 따라 죽 걸어보니 특이한 가게들과 또 하나의 명물 카페인 스태픽스가 나왔다. 거긴 건물이며 야외공간이 훨씬 널찍했으며 전망이 아르크보다 더 시원하게 트인 곳이었다. 조용한 바깥 골목과는 다르게 실내도 실외도 사람들과 강아지들로 번잡스러웠다.  

특이한 물건과 티벳 음식인지 음료를 파는 사직동 그집이란 가게도 맘에 들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라는 티벳 속담이 쓰인 흑판이 인상적이었다. 햇볕은 여전히 이글이글 뜨거웠다. 우린 그늘로만 해서 사직단을 삥 둘러 걸었다. 쭉 한바퀴를 돌아가니 아르크 카페로 향하는 길이 나왔다. 중간에 단군을 모신 작은 건물도 보았다. 그늘의 벤치 몇 개 이외엔 사람이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는 인왕산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었다. 거길 다녀온 사람들이 폴키로 들어온 것이었다.

쭉 걸어내려온 우리는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이렇게 뜨거운 날의 오후 나들이로는 아주 좋았다. 한적한 사직동은 흡사 다른 도시에 온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한적한 동네 속에 몇 몇 카페들만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것도 재밌었다. 조만간 다시 오고 싶은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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