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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Jun 27. 2020

서촌, 까델루뽀

서촌도 인기가 많아지면서 수많은 식당과 카페들이 들어왔다가 바뀌는데 그 와중에도 오래가는 곳들이 있다. 

까델루뽀도 꽤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양식당인거 같다. 서촌이 유명해지기 시작할 무렵 여기랑 두오모가 이미 있었던 거 같고 조금 지나 갈리나데이지가 생겼던 것 같은? 아무튼 까델루뽀의 이재훈 셰프는 이곳 뿐 아니라 옆쪽에 비스트로 친친이라는 캐주얼한 분위기의 양식당도 운영하시고 매스컴도 타면서 유명해진 모양이다. 사실은 친친을 먼저 가게 되었는데 강원도 컨셉의 양식당이라는 특이한 소개는 물론이고 이태리나 프랑스 교외도시 느낌이 나는 캐주얼한 식당 분위기가 너무 좋았었다. 그때 먹은 메뉴도 하나같이 다 맛있었고. 가성비도 좋은 데다가 뭐 하나 빠지는게 없구나, 했어서 그렇다면 원조 격인 까델루뽀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생일을 맞아 제일 먼저 예약한 곳이 그래서 이곳이었다. 런치코스가 특히 가성비 좋기로 유명하길래 점심에 예약을 했다.

두오모 바로 옆 골목에 까델루뽀도 있다. 이 골목은 그래선지 뭔가 친숙하고 무게있는 느낌이다. 늑대 간판을 보며 안으로 들어가보니 생각보다 작은 한옥이었다. 원래 있던 집을 고친 것이겠지. 중간의 마당을 둘러싸고 디귿자의 모양이 그대로 살아있고 포도넝쿨이 싱싱하게 늘어진 마당은 아늑하고 분위기있었다. 안쪽도 쾌적하게 고쳐진 한옥으로 인테리어는 완벽했다. 강남의 비싼 냄새가 나는 그러나 어딘지 천편일률적인 식당들보다 강북의 작은 식당들은 왠지 모를 매력이 있다. 

런치코스는 34, 47 두 개로 운영되는데 앞쪽은 파스타, 뒷쪽은 스테이크 코스이다. 우리는 앞쪽으로 선택을 하고 파스타는 가격이 좀 더 추가되는 것을 골랐다. 남편은 부라타 치즈가 얹어진 토마토 파스타를, 나는 특이한 소라와 마늘쫑이 들어간 오일 파스타를 골랐다. 

처음 나온 애피타이저 플레이트는 감동적이었다. 차가운 멜론 수프, 사워크림과 함께 한 감자, 카르파치오, 칵테일 새우를 얹은 바게트, 아란치니가 한 입씩 나왔는데 모두 맛있었고 시각적으로도 훌륭했다. 그보다도 이탈리안 식당에 와서 이런 프랑스식 코스를 받은 게 너무 오랜만이라 더 감동이었다. 가성비가 좋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이어서 나온 따끈한 당근 수프와 식전빵. 빵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구운 채소를 곁들인 풍성한 샐러드가 나오고 메인요리인 파스타가 나왔다. 양도 적당하고 좋았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소라의 식감이 너무 질겨서 먹기가 힘들었던 것. 그리고 전반적으로 음식의 맛이 미묘하게 내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이다. 참 신기하다. 전반적으로 알차게 구성되고 잘 요리되어 나온 코스였는데 그와는 별개로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사람 간의 궁합처럼 식당의 음식과 나의 궁합도 있다. 간도 그렇고 이건 좋아하는 색깔 같은 거라서 뭐라고 말로 설명도 잘 못하겠다. 그래서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꺼이 추천하고 싶은 묘한 결론이 나왔다. 물론 남편은 매우 만족스럽게 식사했다. 내가 봐도 가격 대비 참으로 괜찮은 코스였다. 그런데 같은 셰프가 운영하는 또다른 식당인 친친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심지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크림 파스타까지도 맛있게 먹었으니 그것도 참 흥미롭긴 하다. 역시나 궁합 문제인건지.

경복궁을 따라서 죽 걸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삼청동 블루보틀로 향했다. 코스의 끝으로 차와 판나코타를 먹었지만 왠지 커피가 한 잔 하고 싶어서. 그간 사람이 너무 몰려서 가지 않았던 블루보틀은 이미 서울에 5개나 지점을 넓혔다고 한다. 지금쯤은 삼청동 지점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가보니 예상대로 약간 바글거리는 정도로 사람들이 차 있었다. 뉴올리언스는 적당히 달고 맛있었다. 2층과 3층에 올라가 보았다. 깔끔한 외관과 비슷하게 층마다 인테리어가 좋았다. 커피계의 애플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브랜드였다. 카페가 많아도 또 블루보틀과 같은 디자인은 잘 없다. 그러나 기사를 보니 원두의 맛으로는 의외로 한국에 매니아 층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카페인 과민반응 때문에 진한 메뉴는 못 먹지만 그래도 뉴올리언스는 먹기 편하던데. 난 커피의 고수는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더운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코로나 때문인지 삼청동 미술관 대로는 사람이 별로 없고 한가로웠다. 걸어서 광화문으로 나오기에 아주 좋았다. 그러나 점심이 미묘하게 속에 안 맞아서인지 뱃속은 영 편치가 않았다. 장소가 그렇게 맘에 들었는데도 속이 안 좋으니 안타까웠다. 날씨도 은근히 찌는 듯한 더위라 책을 몇 권 사고 집으로 와서 쉬었다. 책을 읽다보니 장 자크 루소의 어록이 하나 나왔다. "행복은 통장 잔액과 맛있는 요리와 튼튼한 위장에 달려있다" 정말이지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구석기 시대의 몸을 가진 우리로서는 아직까지도 음식을 많이 축적해야 한다는 본능이 DNA에 박혀 있고 그래서 먹을 때 큰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가만 보면 소화기관 강한 사람들이 성격도 느긋하고 인생이 행복한 것 같다. 아니, 느긋한 사람들이 위장이 튼튼한 것인지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입사 이후 원래 예민했던 위장의 컨디션과 소화력이 수직하강 하면서 나의 행복지수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밤꿀도 먹고 양배추 브로콜리 즙도 먹고 나름대로 많은 것을 시도해봤지만 별 효과가 없다. 건강하고 거침없는 식도락가가 되고 싶다. 생일을 맞이하여 한 번 더 강하게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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