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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Jul 05. 2020

효창공원, 고효동

작지만 강력한 동네 카페

집에서 좀 가면 효창공원이 있다. 이곳은 지형이 신기하다. 지도에서 보면 모두가 평면으로 되어 있어서 그냥 코앞에 있을것 같은데 실제로 강북은 언덕이 많아서 자주 다니는 만리동 고갯길에서 한 층 올라가서 수평으로 길이 있는 구조이다. 그 효창공원 앞길은 그렇게 양쪽의 대로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 용산 원효로와도, 공덕 대로와도 한 길씩 떨어져서 고개 윗쪽에 멀찍이 자리잡고 있다. 이쪽은 개발이 많이 안되어서 그런지 원형의 공원을 둘러싼 작은 길과 그 주위가 모두 조용한 단층 주택과 건물들이다. 마치 지방도시에 간 것 같은 약간은 옛날의 고즈넉한 느낌이 있다. 이 동네 살면서 남산을 주로 갔지 가까운 효창공원은 이상하게 안 갔었는데 아마 이렇게 묘하게 숨어있는 위치 때문이겠지.

남편의 농구 취미 때문에 가게 된 효창공원은 의외로 규모도 꽤 있고 시내 안에 숨어있는 조용한 섬 같은 곳이라 계속 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주변의 시장과 옛날동네 특유의 분위기도 그렇고. 지난번 신성각 짜장면을 먹고 걸어오는데 바로 옆에 고효동이라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딱 홍대 느낌이었다. 주변의 낙후된 분위기 안에 혼자 반짝거리는 것이 더욱더. 작은 방 하나 크기의 깔끔한 카페에 우드와 식물 느낌의 인테리어도 좋았고 음료가 담겨져 나온 금색의 컵은 묘하게 잘 어울리고 포인트가 되었다. 무엇보다 통유리창으로 보이는 공원과 조용한 앞길이 참 좋았다. 고효동은 고소한 효창동 동네커피라는 뜻. 위치와 분위기에 딱 맞는 이름이다. 사장님이 고소한 음료를 좋아하시는지. 처음 갔을때 먹었던 아메리카노와 흑임자 커피, 그리고 나중에 가서 먹었던 라떼, 비엔나 커피는 모두 정성스럽고 맛있었다. 우연히 내가 먹은 음료는 흑임자와 라떼였는데 정말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내가 고소한 맛을 원래 좋아해서 이래저래 느낌이 좋았나? 아무튼 자꾸만 생각이 나는 매력적인 카페다.

오늘도 이런 저런 일을 보고 고효동으로 향했다. 아침에 머리를 자르러 간 미용실에서 다시 코로나19에 대한 우려 때문에 손님들이 안 오고 있다는 말에 내가 너무 불감증인가 싶어 원래 시내나 홍대로 가려던 마음을 고쳐먹은 것이었다. 아무리 핫스팟들이 바글거린다 해도 이렇게 동네의 섬 같은 휴식처가 있으면 마음의 위안이 된다. 몇 번을 기분전환하러 그런 카페에 가다가도 언제든 조용히 쉬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아지트가 있다는 것은 기분이 좋다. 고효동이 바로 그런 카페였다. 오늘도 커다란 중앙 테이블에 커플 한 팀만이 평화롭게 앉아 있었다. 우리는 통유리창 바로 앞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으로 걸어오는 공원 옆길이 내내 너무나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서울이 아무리 시끄럽고 경쟁적이어도, 코로나가 창궐한다고 해도 여기는 마치 다른 도시로 넘어온 것 같은 한가로움 일색이었다.

가끔씩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한 잔 씩 사가지고 나갔다. 완전히 이과인 남편과 완전히 문과인 나는 서로의 회사 문화를 비교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보험 쪽에서 직장을 시작한 남편은 이제 가장 IT에 가까운 회사로 옮겨왔는데 그간 지나왔던 회사들을 떠올리며 역시 이과 쪽으로 갈수록 정치는 덜해지는 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성과와 결과가 비교적 정확하게 떨어지는 업무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반면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 문과 업종은 어쩔 수 없이 정치와 관계와 기타 등등이 다양하게 반영된다. 예전 학창시절에 수학이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어도 나는 정답이 정해져서 맞고 틀리는 것이 싫어 문과를 간다고 한 적이 있었다. 내 선택이니 어쩔 수는 없다만 갈수록 경쟁 치열해지는 사회생활 속에서 문과생은 피곤한 게 사실이다. 주위에선 기술직을 하고 싶지만 이제와서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다. 기술직... 딱히 생각나는 건 없고 가면 갈수록 삭막해지는 이 추세 속에 나는 사람을 살리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그런 일을 하고 싶은데 정말이지 뜬구름 같은 이야기다. 고효동의 아늑하고 작은 공간에 앉아 한가로운 공원을 바라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와서 보니 옆 건물도 전면 공사중이었다. 이곳에는 또 어떤 공간이 들어오는 것일까. 무언가 개성있고 창조적인 공간이 들어오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이런 거리에 단독주택을 짓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가고 내가 생각했던 황금기의 나이도 곧 지나가 버릴 것 같다. 나는 내 꿈을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 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평화롭게 지나가는 일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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