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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Jul 08. 2020

스테인레스 주방도구

각종 화학물질이 이제는 몸과 건강에 직접 영향을 주는 시대가 오다보니 한쪽에서는 친환경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특히 몸 예민하고 약한 사람들이 먼저 시작하는 거 같다. 그리고 가족들 챙기는 주부들도.

신혼살림 살 때 워낙 정신도 없고 귀찮아서 그냥 엄마가 다니던 주방용품 전문점에서 가격 저렴한 이태리 브랜드로 몇개만 사서 써왔는데 그건 평범한 세라믹 코팅 냄비들이었다. 쓰기에 편하기론 이게 제일인거 같은데 몸을 생각하면 스테인레스로 바꾸라는 말을 하도 들어와서 그럼 바꿀 때 하나씩 스테인레스로 바꿔 보자 하면서 브랜드 몇 개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마침 테팔 냄비들을 싸게 살 기회가 있어서 이때다 싶어 일리코 20cm 양수를 한번 구매해보았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고급 스테인레스가 어쩌고 저쩌고... 무엇보다 테팔이면 제일 알려진 브랜드니까 굳이 WMF니 뭐니 안 사도 되겠지 하면서. 그리고 냄비가 득달같이 도착했다. 딱 보니 외관은 참 맘에 들었다. 다만 스테인레스 제품은 첫 세척이 중요하다고 해서 며칠을 묵혀뒀다가 오늘 팔을 걷고 세척을 시작했다.

아이고. 그런데 연마제가 정말 닦아도 닦아도 계속 묻어나오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면서 닦아냈는데 키친타올을 10번 정도 돌리며 닦고 또 닦는데도 하얗게 되지 않으니 슬쩍 무섭기 시작했다. 도대체 연마제가 얼마나 묻어있길래. 영영 하얗게 안 닦이면 그럼 여기에 음식 요리해먹어도 되는 건가..

기름으로 닦다가 너무 팔이 아프고 힘들어서 두번째는 베이킹소다를 엎어서 닦았다. 하얀 가루가 어느새 거뭇하게 색깔이 변했다. 도저히 더 못 닦겠다 싶을 때 그냥 그만두고 다시 세제로 세척했다. 

친환경으로 가는 길은 멀구나. 이게 제발 건강에 좋은 냄비였으면 좋겠는데 끝도 없이 묻어나오는 시커먼 연마제를 보니 별로 믿음이 가지도 않았다. 이젠 뭘 써도 비슷한 그런 시대가 된 것일까. 장작불에 가마솥을 얹히던 시대엔 그만큼 여자들이 혹사를 하며 살았겠고.. 내가 생각했던 온건하고도 친환경적인 삶은 어쩌면 상상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힘을 들여 열심히 닦았으니 이 냄비는 오래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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