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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Aug 20. 2020

재택근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탄력근무, 유연근무 이런 제도들이 조금씩 도입되었지만 크게 쓸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코로나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드디어 재택근무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평소에 재택근무가 잘 적용될만한 업종이 아니었기 때문에 준비가 잘 되어 있지는 않았다. 이거 준비하느라 IT부서 분들 고생하신 것은 정말이지 맘이 아팠다. 어찌됐든 해야하는 건 해야하는 것이니 재택근무에 돌입하게 되었다. 사실 부서마다 팀마다 업무 성격이 많이 달라서 적합도도 천차만별인데 다행인지 지금 내가 하는 업무는 꽤나 할만한 축에 속했다. 이메일로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서 전용 노트북으로 일하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올해 수 차례 재택근무를 하니 이제는 이것도 꽤 괜찮은 업무방식이구나 하고 느끼게 됐다.

아이가 있는 집들은 상대적으로 업무가 힘들다고 한다. 사실 아이들에겐 엄마 아빠가 집에 있는 것이지 일한다는 개념은 없을 테니까 ㅎㅎ 계속 놀아달라고 하는게 당연하다. 다행히 나는 혼자 집에서 여유롭게 할 수 있는 환경이라 라디오도 듣고 전체 공간을 편하게 쓰면서 할 수가 있다.

평소 하루에 한 번은 바깥 공기를 쐬어야 하고 사람들을 대면하면서 일해야 편안한 나임에도 하루 이틀 정도의 재택근무는 매우 신선하고 좋은 경험이었다. 처음 해보고 나니 사무실에서 일이 없을 때조차도 알게 모르게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업무를 보는 중간 중간 자투리 시간에 과일을 집어먹거나 집을 이리저리 치우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업무의 분위기를 확 바꾸어 놓았다. 집이라는 공간은 확실히 사람에게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을 맛보게 해준다. 재택을 하다가도 필요한 일이 생기면 반나절 정도는 출근을 하는데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어느 정도의 휴식이었나. 조금 숨 돌릴 수 있고 유연한 근무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다 비슷하다. 일과 삶의 균형이란 것은 참 당연하고도 중요한 개념이다.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식으로 살든 사람은 숨을 쉬고 여유를 가지며 웃으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사회는 가면갈수록 틀에 갇히고 바빠지고 고립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재택근무와 삶에 관해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회사의 어느 직원 한 분이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것에 한계를 느껴 결국 퇴사하고 말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른 부서지만 몇 번 통화도 해봤던 분이라 기분이 영 이상했다. 그 분에게는 재택근무도 무엇도 선택지가 없었던 셈이다. 무언가 아름다운 이상의 세계에서 웃고 있다가 현실로 꽈당 떨어진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 해외에 파견 나간 수많은 직원들도 코로나로 발이 묶여 6개월 이상을 반강제적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한국과는 달리 해외에선 모든 활동 자체가 너무 제한적이라 자칫하면 정신질환 오기에 딱 좋은 환경이라고들 한다. 

편안하게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당연하다고 느껴지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매우 지키기 어렵고 중요한 것들이다. 얼른 코로나가 종식되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조금 더 나아가 재택근무든 유연근무든 일상의 다양성을 좀 더 확장시켜 보고 싶다. 말로만 외치는 혁신, 창의, 유연성이 아니고 실제 생활과 관련된 그런 개선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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