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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Aug 17. 2020

효창공원, MTL 효창

푸릇푸릇 모던한 카페

효창공원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 같은 재미있는 동네다.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했으면서도 아직 개발되지 않은 모습대로 그리고 고갯길 위쪽으로 조용히 남아 있다.

그간 즐겨 갔던 곳은 지하철 역쪽의 우스블랑과 한겨레신문사 쪽 고효동 카페였는데 최근에 어디에선가 독일의 보난자 커피의 수입원인 MTL 카페가 효창동에 2호점을 냈다는 글을 보았다.

한남동에 위치한 1호점은 동네에 걸맞게 이미 핫플이었고 또 언제 가도 손님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호점이 효창동이라니. 왜 이 동네에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가보기로 했다. 위장과 심장의 안 좋은 반응 때문에 커피를 즐겨 마시지는 못하지만 요즘 시대의 주요 키워드인 '감성'을 즐기기에는 카페만한 곳은 없는 것 같다. MTL의 경우 보난자 커피와 함께 '베를린 감성'을 보여주는 곳이라는데 기대되지 않을 수 없었다. 

커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좋은 커피를 마실 때는 아, 하고 알긴 알겠더라. 보난자 커피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으나 (TV 시리즈인지 영화인지로 들었던 기억이..) 알고보니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25대? 카페에 들어가는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리는 아이템이 한번 핀을 잘 꽂으면 무서운 속도로 발전 및 확장해 나간다. 그렇게 느낀 것 중 하나가 카페였다. 커피가 동양인에게 맞는 식료품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특유의 문화와 공간이 주는 매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꽉 잡아버렸고 이후로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때는 AA, 예가체프, 수프리모 정도의 원두 종류가 있으면 꽤나 전문적인 카페라고 느꼈었는데 이젠 거기에 이어 보난자 커피, 듁스 커피 등 유명 선진국의 수입원을 쓰는 것도 전문 카페의 한 색깔이 되었다. 

마지막 장마가 온다는 휴일 오전에 편안한 마음으로 효창공원 역쪽으로 향했다.

MTL과 함께 보았던 것은 리틀 파르크 라는 브런치 카페였다. 우스블랑 바로 다음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동네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세련된 집이었다. 그러나 역시 공원 옆쪽으로는 하나 둘씩 좋은 곳들이 들어오는 것 같다. 넓고 쾌적하고 딱 요새 인기를 끌만한 그런 브런치 카페였다. 

잠봉, 에그 샌드위치에 인기있다는 그릭요거트 볼을 시켰다. 꿉꿉하던 날씨에 우리가 들어서고 5분 후쯤 하늘에서는 열대지역의 스콜처럼 무섭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앞이 안 보일 정도의 빗속에서 우리는 여유롭게 브런치를 먹었다. 원래 브런치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여긴 맛있었다. 폭우를 바라보며 아늑한 실내에서 먹는 브런치라 더 맛있었는지도 모른다. 날씨 탓인가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신기하게도 비가 쏟아진 이후로 사람들은 꾸준히 도착하여 결국 자리를 꽉 채웠다. 근방에 아파트가 많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들 동네에서 알고 찾아오는 단골들인거 같았다. 잠봉샌드위치는 매우 맛있었다. 오랜만에 먹는 꾸덕한 요거트도 속이 편하고 좋았다. 

대충 다 먹고 숨을 돌리고 나자 신기하게도 폭우는 슥 그쳐있었다. 정말 열대 지방의 비 같았다. 타이밍 좋다고 생각하며 길 건너편의 MTL로 옮겼다. 공원을 둘러싼 수없이 많은 건물들을 놔두고 이 카페는 주택가로 들어간 골목 안 쪽에 정말 의외의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작은 회사 사무실이나 있을 법한 건물 1층에 비밀스럽게 자리하고 있었다. 깨끗한 통유리로 둘러싸인 1층 공간은 모던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가운데 베이커리도 팔고 각종 책과 물건들도 팔고 있었다. 다녀온 사람의 베를린 감성이란 말이 뭔지 알거 같았다. 고전적이기보다는 세련되고 모던한 공간이었다. 보난자 커피에 대한 설명이 담긴 짤막한 메모. 그리고 전문성이 넘쳐보이는 메뉴를 보다가 드립커피 두 잔과 살구파운드 하나를 시켜서 먹어 보았다. 그간 갔던 카페들과는 또 느낌이 다른 이곳은 위치도 메뉴도 분위기도 모두 새롭고 고급스러운 느낌이었다. 널찍한 공간이 좋아서인지 이렇게 후미진 위치에도 이미 창가를 둘러싼 테이블들은 꽉 차 있었고 혼자 와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작업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문을 받는 카운터에도 혼자 앉는 좌석이 있었는데 거기엔 예술계 종사자처럼 보이는 분이 두 명이나 각자 앉아 조용히 커피를 음미하고 있었다. 여기도 동네 단골들의 아지트 같은 느낌인지 그건 알 수 없었지만 얼마 간은 붐비지 않고 이대로 남아 한가로운 외국의 분위기처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벽에는 이곳에서 쓰는 귀리우유?인지 어떤 원재료를 쓰는 또다른 카페들의 명단이 광고처럼 붙어 있었는데 이 명단이 또 눈에 띄어 검색해보니 서울에는 정말이지 가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작은 전문공간들이 왜 이리도 많은 것인지. 한편 신기하게도 이런 공간들은 백이면 백 모두 강북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다시금 그 매력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구시가가 가지는 편안하고 오래된 매력이 잘 유지되고 또 이런 좋은 컨텐츠들과 함께 더욱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이럴 때 보면 서울은 나름 괜찮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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