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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Sep 08. 2020

카모메 식당

이름과 내용은 수없이 들었던 카모메 식당 영화를 이제야 보았다. 

사실 일본 컨텐츠를 보기 시작한 것이 오래 되지 않았다. 아주 기본적으로는 그곳의 성향과 취향이 잘 맞지는 않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아름답고 정갈한 것은 좋지만 저변에 깔려있는 체념과 죽음의 정서가 영 편해지지가 않았다. 나도 발산형 인간이라 그랬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는 자연스럽게 잘 살아와서 그랬는지 비슷한 남유럽이나 활발한 곳의 문화가 편하고 좋았다.

그러나 어쩌랴. 삶의 변화는 내가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인지 점점 일상이, 내가 지내는 환경이 일본과 비슷해져 가자 나도 모르게 그쪽의 컨텐츠를 보게 되었다. 조용히 혼자서, 작은 일상의 즐거움을 찾아 만족하며 사는 그런 방향으로. 슬프지만 이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특유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그 아름답고 정갈한 부분들이 위로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소확행이라 하면 결국 일상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 문화와 연관이 되는 것일 텐데 그중에서도 인간에게 가장 본능적이고 확실한 행복을 주는 것은 음식. 이미 식당과 카페, 먹는 것과 관련된 컨텐츠가 흘러 넘치기 시작한지도 오래 되었다. 그런데 아직 이런 것을 조용하고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는 잘 못 본 것 같다. 카모메 식당이 그 대표격인듯한데 이 영화 다음에 이어서 알게 된 것이 해피해피브레드였던 것 같다.

너무나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핀란드의 일본 가정식 식당. 이 영화를 보면 설정 자체부터 일상의 고독이라는 것이 훅 느껴진다. 외로움은 여러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태어난 나라와 동네에서 소속감과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매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한다. 실제 유학이나 이민을 선택한 사람들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와 운명적으로 끌리고 맞는 나라가 다른 곳에 있다더라는 드라마틱한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은 뼛속까지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더 큰 경우도 있다.

카모메 식당에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평범하면서도 야무지고 단단해 보인다. 외롭지만 다른 사람에게 기대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우연히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아주 따뜻한 연대감을 보여준다. 큰 공통분모가 있어서가 아닌 생활 공동체로서의 가족 같은 따뜻함이다. 

사실은 모두가 바라는 게 그것이다. 행복에 관련된 책에서 말하기를 행복지수가 높은 덴마크 국민들의 행복의 원천은 사회과 공동체에서 느끼는 높은 소속감과 연대감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점점 가면 갈수록 가족, 직장 등 모든 종류의 공동체가 약해지고 있으니 왜 사람들이 불행한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생계가 힘들어서라고 하기엔 옛날에 비해 분명히 잘 살게 된 것 같고 그보다는 서로간의 격차와 차이점이 다양해지고 커져서 그저 단순하게 서로 어울리고 의지하기엔 복잡한 사회가 된 게 아닌가 싶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공감하기도 힘드니 그냥 연락하지 않고 각자 알아서 지내는 게 편해져버렸다. 소비와 생활형태의 고도화가 그런 차이를 만들었고 서울과 도시로 집중되면서 우리의 주거형태도 잘게 분절되고 단절되었다. 좀 있으면 7,80년대 히피 운동처럼 전원의 공동체 생활을 외치며 옛날로 돌아가자는 움직임들이 본격적으로 생길 것 같다.

어쨌든 카모메 식당 같은 이야기를 보면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다시금 강하게 든다. 쓸데없는 것들을 다 지우고 본질에 충실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 물론 좋은 사람과의 연대감이라는 것은 맘 먹는 대로 쑥쑥 되는 것은 아니지만. 궂은 날씨와 적은 인구로 인해 생활의 즐거움에 충실한 북유럽을 무대로 선택한 것은 이유가 있어보였다. 아름다운 풍경과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무척 담백하게 잘 담아낸 좋은 영화였다. 

느낌이 좋아서 본 김에 해피해피브레드도 이어서 봤는데 이건 좀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 의아했다. 카모메는 책 못지 않게 영화가 아주 좋다는 느낌이었으나 이 영화는 왠지 예쁘기는 예쁘지만 붕 뜬 듯한 느낌이랄까. 책에 비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영화였다. 맛있는 빵이 먹고 싶어져서 나는 해피해피브레드라는 동일한 이름의 작은 빵집에 가서 팥식빵과 크랜베리식빵을 사왔다. 너무나 조용해서 적막감까지 느껴지는 날이었지만 늦여름의 햇살은 오랜만에 뜨겁고 건조해서 무척 좋았다. 지금의 나도 붕 떠있는 느낌이지만 나만의 공간과 이야기를, 행복을 생산하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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