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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Dec 22. 2020

건강한 위장을 위하여

커피는 언제쯤?

난 평생 체한 적이 없어서 위장이 엄청 튼튼하다고 생각했다.

식탐이 매우 강한 편이라 맨날 먹고 싶은건 수없이 많고 입이 좀 짧은 편이긴 한데 어쨌든 먹고나서 소화가 안되거나 체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회사 생활을 하다보니 위장은 점차 약해지고 결국 제대로 된 악당을 만나 크게 데이면서 한번 생기면 영원히 간다는 위염도 얻게 되었다.

소화불량보다는 힘들때 잔챙이처럼 위경련이 잘 찾아왔었는데... 아, 이제 나이들어서 보니 나는 위장이 매우 약한 체질이었다. 소화불량이 뭔지 몰랐던 20대를 돌이켜보면 참 눈물이 난다. 요새는 좀만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돼서 아주 죽겠다. 

위장에 좋다는 건 이거저거 다 먹어보았다. 양배추 브로콜리즙, 고구마, 밤꿀, 마누카꿀, 생강, 야쿠르트 윌까지. 그러나 식품으로 효과보는 것은 역시 쉬운 일이 아닌거 같다. 혹은... 체기보다 경련이었던 내 패턴을 봐도 그렇듯 나에겐 신경성 요인이 압도적으로 큰 것일지도. 

어제는 조선왕조실록에서 건강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해서 연재하는 칼럼을 재밌게 봤는데 그 중 눈길을 끌었던 것이 위장 안 좋기로 유명했던 영조대왕의 이야기였다. 난 그건 또 처음 알았네. 왠지 대인배 이미지인 영조대왕이 스트레스를 그렇게 많이 받았고 그래서인지 위장장애를 달고 살았다는 얘기에 매우 큰 연민을 느꼈다. 예민하고 위장 약한 사람에게 왕 자리는 절대 달갑지 않은 업무였겠지.

암튼 그래서 시도됐던 다양한 요법 및 지침들을 흥미롭게 읽다가 결론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조건 소식하고 기름진거 먹지 말고 몸을 따뜻하게 하라"

이미 다 아는 이야기였다. 실천은 쉬운데 일상의 소확행이 줄어든다는 것이 좀 슬프다. 먹는 것만큼 본능적인 행복이 없기에 적게 먹고 살려면 그만큼 다른 재미가 있어야 한다. 루소는 건강한 위장과 행복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슬프게도 요즘은 서양문화가 독식하는 사회이다보니 어느새 음식도 기름진 것과 밀가루 식단 비중이 커져버렸고... 이것들이 그냥 음식만 있다기보다는 사람들 관계, 생활 문화와 함께 녹아 있어서 무조건 피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커피도 괴로운 것 중 하나다. 카페인 과민반응은 그렇다치고 요샌 마시면 속이 쓰리고 더부룩해서 몇 주째 완전히 끊고 사는 중이다. 앞서와 똑같다. 사람들과 만나 얘기하는 공간이 카페. 그리고 각종 컨셉의 멋진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카페. 그래서 커피를 끊어버리니 참 큰 일이 있는건 아닌데 일상의 소소한 재미가 없다. 커피가 위장에 안 좋은지는 여러가지로 설이 분분한 듯한데 진실은 알 수 없고 어쨌든 먹었을 때 속이 편안하지 않으니 난 할말이 없다.

위장은 마치 가마솥과도 같아서 불을 팔팔 때어줘야 그 안의 음식물도 잘 삭고 소화가 된다고 한다. 몸이 찬 사람은 기본적으로 소화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건 따뜻하게 입고 핫팩 두르고 생강차를 마시는 것 뿐인가? 어쨌든 칼럼에 따르면 영조는 관리하고 관리해서 큰 탈 없이 잘 사셨던 것 같다.

스트레스와 식단의 조절은 나 혼자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그런 변수는 아닌거 같고. 아아. 요즘은 몸 따뜻하고 무던한 성격에 누우면 자고 못 먹는거 없는 그런 사람이 너무 부럽다! 물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고충이 있는 법이지만. 어차피 코로나로 모든 모임이 취소된 올해는 조용히 위장을 보하면서 내 식대로의 연말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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