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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Dec 24. 2020

조용한 연말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최고의 명절

코로나19로 역대 가장 조용한 연말이 될 것 같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재택근무에 휴가에 회사는 무척 조용하다. 이미 12월부터 이런 조용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거리두기에다가 재택과 폐쇄 등 여러가지가 겹쳐서 밥도 그날그날 동기들하고 만나서 빨리 먹고 헤어지고. 

연말이라 휴가를 쓰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휴가 쓰고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었다. 모든 활동 장소들은 거리두기로 폐쇄되었으니까 집에 있어야 하는데 남편도 연말이 바빠 같이 놀 수도 없고. 다들 비슷한 처지라 그런가 의외로 길게 휴가 쓰는 사람도 많지 않다. 올해는 그래서 책과 영화를 의도치 않게 많이 보게 됐다. 그렇지만 몰입이 잘 되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물리기도 하고 나이들어서 집중력 떨어지는 것도 있고. 많이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책은 역시 다섯 개도 되지 않는다.

오늘 점심 먹다가 동기가 그래도 이브인데 집에 케익이라도 하나 사가겠다고 해서 일단 밥 먹고 파리크라상에 들러 보기로 했다. 이미 들어가기도 전에 손에 손에 케익 박스를 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구름같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매장 밖에는 케익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고... 오피스타운의 파리크라상이 이렇게까지 붐비는 건 여기 일한 이래 처음 보았다. 안되겠다 싶어서 아티제로 발걸음을 돌렸다. 거리두기로 휑했던 아티제 매장은 여기저기 서서 케익 포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겨우 남은 케익 하나를 사서 15분을 기다린 후에 받게 되었는데 기다리던 중 옆을 보니 예약손님 받는 것도 분주했다. 직원이 책상 하나를 갖다두고 예약손님한테 케익을 전해주는데 A4용지에 엑셀처럼 빡빡하게 명단이 들어차 있었다.

지난번 할로윈 때 한번 컬처쇼크 받아서 이번엔 그러려니 했지만.. 역시 참 묘한 풍경이었다. 나도 크리스마스 좋아하지만 왠지 좀 과하다고 느껴지는 건 왜였을까. 파리크라상에 커다랗게 구워놓은 이탈리아 전통 빵인 파네토네며, 아티제에 진열된 바스크 지방 전통 치즈케익을 보니 참 우리나라의 서양 사랑 유럽 사랑도 지극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년 설날이 되어도 대부분의 집들은 모여서 밥 한번 먹고 끝나는 경우가 많을 텐데. 이번에는 가족끼리 윷놀이라도 한번 해볼까 싶다. 사주에 올해 나는 휴식을 취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아가는 시간을 가진다고 되어 있었는데 정말 그런가보다. 요즘은 정체성에 대한 생각이 여러가지로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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