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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누크 Mar 07. 2021

집 살수 있을까

집을 산다는 건 참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돈을 모으고 보러 다니는 것도 그렇지만 평생 한 번도 안 해본 이 큰 규모의 거래를 진행시키려면 마음의 준비도 쉽지가 않은가보다.

'17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이미 주변에는 집을 사야 한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있긴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만 해도 소수 의견이었다. 그 직전 몇 년 간 집 값은 큰 변화없이 꾸물럭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지만 이것도 너무 비싸다는 말들이 많았다. 그보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지금 대장주 기대주라고 불리는 마포 인근 대단지들이 줄줄이 미분양이 되던 시절이었다. 설상가상 양쪽 집 어른들도 평생 알뜰살뜰 아껴 살고 이런 시장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터라 마포 집값을 보고 다들 터무니없다는 평들이었다. 신혼집으로 들어갈 아파트는 신축 단지라 전세가 저렴했고 사실 대출을 끼면 얼마든지 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협소한 땅에 빼곡하게 우겨넣듯이 지은 단지를 보고 가족들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런 아파트가 무슨 이 가격이냐고 했다.

그렇게 만기 두 번을 거쳐 이제 난 4년차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17년 이후 서울 부동산 시장은 광풍의 연속이었다. 사실 지금도 왜 그때부터 이렇게 심한 급등이 이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마지막엔 정부의 정책 여파로 패닉바잉이 몰아쳐서 더욱 시장 심리가 이상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론 저금리에 풍부한 유동성이 문제라는데 갑자기 '17년 이후에 유동성이 어마어마하게 늘기라도 했다는 건지. 난 대체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

재복이라는  역시 개인의 인생 타이밍을 말하는  같다. 지난 4년을 거치며  그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신혼집을 구할  물론 꼬꼬마 마인드에 엄두도  나긴 했지만 무엇보다도  입사 이래 가장 무리한 환경에서 매달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너무 버거운 업무를 하고 있었다. 결국 신혼 전세집도 아파트는 내가 골랐지만 계약은 어머니들이 보러 갔다가 대신 정하는  결혼 준비 자체가 최소한으로 진행되던 때였다.

2년 후 첫번째 만기가 돌아오던 해, 나는 연초에 발목 인대가 파열되어 4개월을 목발을 짚고 아무데도 자유롭게 다니지 못했고 그해 만기에 집을 사고 이사를 가는 건 꿈을 꿀 수가 없었다. 같은 해에 공교롭게도 난 무척 스트레스가 심한 부서로 이어서 발령이 났고 2년간 우울한 시간 속에 지냈다.

만일 결혼하던 해에 내가 조금 한가한 부서, 한가한 시즌이어서   주도적으로 사람들 얘기도 듣고 다니면서 정했더라면. 만일 첫번째 만기인 해에 그랬더라면. 이건 모두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아무튼 그렇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흐름에서의 타이밍이 많은  바꾼다. 재복은 애를 끓이고 동동거린다고 해서 달라붙는 것은 아닌  같다.

지난 해엔 코로나19로 비어 있는 한 해였다. 재택근무가 이어졌고 어디 자유로이 나다니질 못했다. 어렴풋이 집을 사야하지 않을까, 코로나가 지나면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정작 부동산엔 가보질 않았다. 실은 귀찮거나 혹은 두려워서 미루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만기가 내년이니 그때에 맞춰서 뭔가 해야겠구나, 이런 생각만 하면서 나는 한 해를 그냥 흘려보냈다.

며칠 전 드디어 무거운 몸을 움직여 한번 부동산을 방문했다가 난 쓰디쓴 현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내가 어물쩍 거리면서 흘려보낸 지난 해에도 거래건수는 적으나마 있었고, 그 1년 사이에 우리 단지의 가격은 또 2억 남짓이 올라 있었다. 이미 신혼 때 매매가와 비교하면 2배를 넘어간지가 오래다.

맞벌이를 계속 하고 결혼 이후 아끼며 살아와서 우리가 모은 돈도 적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올라간 집값에 비하면 이 돈은 택도 없었다. 그리고 이 급등하는 장세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계속 정부의 대책과 청약과 부질없는 미래 전망을 내놓으면서 어물어물거렸던 나의 주변을 생각하니 참 한숨이 나왔다.

패닉바잉이란 말이  우습고 슬펐다. 언뜻 들으면 과민반응을 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집은 생활의 첫번째 기반으로  무엇보다도 안정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구과밀과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지금 서울의 모든 젊은이들은  생활의 기본을 위협받고 있다.

현실적으로 전국민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어느 정도 주거용 주택만큼은 한 사람이 과하게 가지지 못하도록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정책으로 어떻게 하질 못하는 부분인가보다. 부동산이야 물론 거래를 부추기는 쪽이겠지만 들렸던 곳마다 하나같이 신도시며 GTX며 앞으로 풀릴 토지보상금이 모두 서울 아파트로 몰릴거란 얘기를 들으니 참으로 미래도 희망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 빠졌다. 예전 노무현 정부 때인가, 지방 균형발전을 추진했다가 지방사람들이 토지보상금으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르르 강남 아파트를 사들여서 오히려 서울 집값이 폭등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현실 세계는 참 마음대로 주무르기가 어려운 것이다.

생활의 근간인 집 마련부터, 매일매일의 출퇴근과 의식주 관련된 모든 생활이 서울 인구과밀로 인해 스트레스를 넘어 분노지수의 상승으로 번지고 있다. 너무나, 너무나 여유로운 생활이 그리운데 점점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어 안타깝다.

집은 배우자처럼 큰 인연이다. 좋은 집의 공식은 물론 보편적으로 비슷하겠지만- 왠지 내 마음이 편하고 아늑한 느낌이 드는 그런 집을 만나고 싶다. 어디있니 우리 집. 어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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