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그녀들
세연의 언니는 부모님 장례식에 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한날한시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군 간부였던 아버지의 부부 동반 행사에 참석 후 돌아오던 길이었다. 세연의 나이, 아홉 살이었다.
장례식 내내 그녀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언니는 언제 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 후 국제 우편 소인이 찍힌 편지도, 전화도, 런던 풍경이 담긴 엽서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세상은 언니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조용했다. 세연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언니가 보내주던 달콤한 쿠키를 기다렸다. 이층 버스 모양의 빨간색 철제 깡통에 들어 있던 레몬 맛이 나는 쿠키였다. 그녀는 오지 않는 크리스마스카드와 쿠키를 기다리며 혼자 어른이 되었다. 기다림은 습관이 되었고, 고독을 너무 빨리 배웠다.
오지 않는 인간에 대한 심리가 궁금했다. 전공을 통해 인간이란 기억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세연의 기억 속엔 언제나 ‘언니’가 있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희미해질 때쯤 언니는 올 수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세연은 언니를 찾아 직접 영국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부모님 유품 속에 넣어 두었던 언니의 흔적들을 다시 꺼내 보았다. 그리고 언니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카드의 주소를 따라 영국으로 향했다.
3층짜리 낡은 건물의 1층에는 집을 알선해 주는 부동산이 있었다. 오른쪽 옆으로 코너를 돌면 이층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었고 계단 옆 낡은 안내판에는 실내장식 업체와 짐을 보관해 주는 서비스 업체가 있었다.
“누구세요?”
K-마트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가 위아래 훑어보며 물었다. 그녀의 가늘게 뜬 눈매가 세연이 이 동네 사람이 아님을 확신하는 듯했다.
“아. 안녕하세요. 예전에 혹시 런던 어학원이 있던 자리인가요? 주소가 여기로 되어 있던데….”
“음…. 잘 모르겠네요.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어학원이 하나 있긴 있었다고 한 것 같은데. 1층 부동산 사장님이 여기 토박이니까 알 수도 있겠네요”
경계를 풀은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내 세연을 부동산 사장님에게 소개해 주며 해야 할 일이라도 생각났는지 총총히 사라졌다.
부동산은 한가했다. 세연은 부동산 직원에게 모아 두었던 엽서와 편지의 봉투를 보여주며 사정을 설명했다. 직원은 귀찮은 듯 서류를 정리하며 그녀의 편지와 엽서를 곁눈으로 훑어보았다. 약간의 사례금을 책상 위에 올려두자, 뒤쪽에 사장 자리에 앉아 있던 65세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다가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눈을 번쩍 뜨며 엽서를 집어 들었다.
“오…. 잘 알지 한국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캐서린이라고 불렀어.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돈 많이 벌라고 캐시라고도 불렀지.”
작은 희망이 보였다. 이 건물 3층이 그녀의 언니와 형부가 운영했던 어학원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혹시 어디로 가셨는지도 알고 계세요?”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그 신랑이란 사람이 로또라도 맞았는지 바닷가 근처의 고급 주택을 사서 이사 갔다고 하더라도 야반도주하듯이 가서 인사도 없이 사라졌어.”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었고 잘 살고 있는 언니에 대한 안도가 밀려왔다. 혼자 잘 살려고 부모님과도 인연을 끊은 거란 생각에 분노가 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부동산을 나왔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한국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당 안은 바쁜 시간대가 지났는지 한가했고 그 앞치마 아주머니가 빈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어머 아가씨 또 보내. 반가워요. 어학원은 찾았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디로 이사 갔는지는 모른대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리자, 밥부터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가 자신을 도와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더 사연 있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제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언니의 사정을 확인하기 전까지 분노를 잠시 넣어 두었다. 중요한 건 진실이니까. 부모님의 유산과 사망 보험료 덕분에 경제적 어려움은 없었으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혈육 찾기에 대한 열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세연은 그렇게 매년 영국을 방문하다가 박사학위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왔다. 혹시 소식이 있는지 언니의 마지막 행적이 끊긴 곳을 매년 방문했다. 언니 찾는 일을 도와주던 분들과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게 되었다. 부모 없는 그녀의 사정을 안타까워했고 방문할 때마다 가족처럼 대해주셨다.
플리머스 대학의 교수로 임용이 되어 축하 저녁 식사를 하려고 모인 날, 아주머니는 비밀이라도 이야기하듯 소곤거렸다.
“오래전 연락이 끊긴 내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뉴몰든 놀러 왔다가 얼마 전에 우리 식당 들렀어. 이야기하다가 알게 된 게 혹시 세연이한테 도움이 될까 싶어서. 한동안 동네에 떠돌던 소문이 있었데. 남편이 큰 유산을 받아서 사업을 금방 접고 어디로 이사 간다고 했데. 다들 부인이랑 가는 줄 알았는데 부인이랑은 이혼하고 접수계에서 일하던 여자랑 눈이 맞아서 둘이 야반도주하는 걸 본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고. 근데 내 친구가 그 커플하고 토키에서 딱 마주 췄다는 거야. 어려울 때는 조강지처 돈으로 살더니 살만하니까 부인 버린 인간이 잘 만 살고 있다는 거야. 신랑이 그렇게 부잣집 아들인지 아무도 몰랐다고 하더라고. 학원 할 때는 맨날 돈에 쪼들려서 돈 때문에 허구한 날 싸웠다고 하더라고…. 암튼 그 친구 얘기가 세연의 언니 얘기 같아서 내가 전해 주려고 했지!”
세연은 눈이 반짝였다. ‘그러면 언니랑 이사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인가?’
“혹시 그분 이사 간 주소 좀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이사 간 주소는 잘 모르고 어디 초콜릿 가게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친구 번호를 마침 받아두었으니까 내가 전화 한번 넣어 볼게”
세연은 초콜릿 가게 <호텔 쇼콜라> 진열장을 구경하는 척하며 애자를 지켜보았다. 뉴몰든 아주머니 덕분에 토키까지 내려왔다. 저 사람이 언니를 알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손님인 척 가게에 들어가 좀 더 관찰했다.
“혹시. 찾으시는 것이 있으세요?”
애자는 미소를 띠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네. 그런데 혹시 한국 분이세요?”
세연은 그녀가 한국인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반가운 척 연기를 했다.
“어머. 이곳엔 한국 분이 잘 없는데 반가워요” 애자 특유의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너무 반가워요. 그렇지 않아도 플리머스 대학에서 교수 임용을 받고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향수병에 걸렸는데 한국 분이라니 너무 반가워요”
세연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알려 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심리학에서 후광효과라고 부르는 것을 십분 활용했다. 그리고 그건 세연에 대한 호감을 올리는 데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친분을 쌓은 후 세연은 애자를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로 두기로 결심했다. 런던 유학원의 이야기를 꺼내자, 애자는 눈동자가 흔들리며 손까지 떨었다. 애자는 친절했던 캐서린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큰 키에 좁은 이마와 고양이상의 얼굴이 세연과 캐서린이 닮아 있었다.
“언니의 이름은 강애정이에요.”
“이혼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나요?”
애자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고 세연은 고개를 저었다.
애자는 무언가 알고 있는 눈빛으로 망설이며 초콜릿 가게 ‘호텔 쇼콜라’는 캐서린이 주인이라고 말했다. 캐서린이 세연의 언니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애자도 의심하고 있었지만, 진실보다 중요한 돈을 위해 묻지 않았던 사건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세연의 가족을 찾아 주고 싶었다. 캐서린과 세연의 우연한 만남을 주선해 주기로 했다. 그것이 최소한 추위에 떨던 자신에게 따뜻한 차 한잔을 건네주던 한때 강애정이라 불리던 진짜 캐서린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강 애정 씨?”
그 말이 캐서린의 표정은 얼어붙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그녀는 세연의 언니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니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만약 몰랐다면 그녀는 누구시죠?라고 물어보기 전 아닌데요라고 해야 맞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캐서린 데이비슨’이 되었을까.
“아 제가 사람을 잘 못 봤네요. 예전에 유학 왔을 때 다녔던 어학원 원장 선생님을 닮아서”
그녀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입이 뒤틀린 듯 불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 얼굴이 전형적인 동양인이라 좀 흔하게 생겼나 봐요. 가게 하면서도 이전에 만난 적 있지 않냐는 말 정말 많이 들었어요. 캐서린이 워낙 흔한 영어 이름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애자는 진열장 근처에서 초콜릿을 정리하는 척했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캐서린을 가게로 불러낸 건 애자였다. 세연은 손님을 가장하여 캐서린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캐서린이 서둘러 가게를 나가서 더 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그 만남 이후 세연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언니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언니는 부모님 장례식에 안 온 게 아니라 못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