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그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그녀들
초콜릿 가게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캐서린은 손이 떨려 운전을 할 수 없어 차를 멈춰 세웠다. 심장은 방금 달리기를 한 것처럼 뛰었고 심장 소리가 귀에서까지 울렸다. 핸들에 머리를 박고 천천히 생각했다.
‘어학원이 문 닫힌 건 26년 전이다. 그러면 세연이 많이 먹어봐야 열 살 미만일 텐데 그렇게 ’ 어린 학생을 받은 기억은 없다. 런던 어학원은 성인 대상 어학원이었다. 강 사장님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또 애자와는 어떤 관계일까? ‘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전화기를 떨어트렸다. 애자의 이름이 부재중 전화로 액정에 떠 있었다. 재 다이얼 버튼을 누르고 벨이 두 번 울리자, 애자가 대답했다.
“뭘 그렇게 서둘러서 돌아갔어. 세연 씨가 한국인을 만나서 너무 반가웠다고 같이 저녁을 먹자는데 어때? 집으로 초대했는데, 같이 가자”
적당히 둘러대고 사양했지만, 차라도 같이 하자는 말에 세연에 대해 알아볼 겸 마지못해 약속을 정했다.
세연의 집은 대학에서 제공하는 캠퍼스에 딸린 교수 저택이었다. 그녀는 플리머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사 논문을 봐주던 지도 교수와 결혼해 이곳에 정착했다고 말했다.
거실 선반 위에 학위를 받는 사진과 결혼사진이 놓여있었다. 신랑, 신부 두 명의 증인만이 있는 결혼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가족사진이 없었다.
“둘 다 일이 바빠서 아이는 아직 없어요”
“부모님은요?”
“아 두 분 다 제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세연은 탐색하는 눈빛으로 캐서린을 쳐다보며 느리게 말했다.
“언니가 한 명 있기는 한데.”
긴장을 풀어보려 애자가 나섰다.
“전공으로 심리학도 어려운데 어떻게 범죄 심리학을 선택했어요?”
“대학원 다닐 때 경찰서에서 인턴으로 범죄자들을 인터뷰했거든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심리가 궁금했어요.”
“그 사람들 인터뷰할 때 안 무서워요?”
캐서린도 궁금한 듯 말을 바로 이어 질문했다.
“범죄자들은 잡혀있어서 무섭지 않죠. 일반 사람들 틈에 섞여 있는 범죄자가 실은 더 무섭죠. 그들은 거짓을 진실처럼 말하잖아요. 그것을 구분해 내는 게 저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날카로운 눈빛으로 세연은 캐서린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캐서린은 무언가 불편한 듯 세연의 눈빛을 피하며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캐서린이 자리에 돌아오자, 세연은 좀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애자 언니가 그러는데 캐서린 언니도 집이 아주 좋다고 하더라고요. 애플트리 하우스는 남작 부인 집만큼 예쁘다고 하던데….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그녀답지 않게 초대해 달라는 게 무례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급하게 덧붙였다.
“남작 부인 집은 초대받아서 매년 방문했는데 교수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는 궁궐이더라고요. 유지비용만도 엄청 날 그것 같더라고요” 상류 사회에 대한 갈망이 있던 캐서린을 꿰뚫어 보던 세연이 남작 부인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그리고 캐서린은 남작 부인에게 관심을 보였다.
“남작 부인을 아세요?”
“아 우리 대학교 최대 기부자예요. 남편 연구에 투자도 많이 해주어서 연말 기부금 행사에 항상 초대받아요. 학위 수여식에도 항상 참석하시고요.”
“한국인 유일의 남작 부인이 궁금해요.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한 번 애플 트리 하우스에 방문해 주세요”
남작 부인과 한번 같이 방문해 달라며 애플 트리 하우스로 초대했다.
세연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다음 주로 방문 일정을 잡았다.
캐서린이 돌아간 후 세연은 생각에 빠졌다. 애자 언니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언니가 캐서린이었다. 그리고 토키의 캐서린은 유진이라는 어학원 접수계에서 근무하던 사람이다. 서류상으로 언니는 증발해 버렸다. 자기 형부 리처드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가 이 모든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 리처드를 만나 봐야 한다. 하지만 애자 언니는 리처드는 위험한 사람이라고 만나지 말라고 했다.
휴대폰에서 이메일 도착 알림이 떴다. 얼마 전 대사관에 보낸 언니 관련 문의에 대한 회신 메일이 도착했다. 첫 번째 메일은 거절이었다. 관계자가 아니면 알려 주지 않는다는 회신이었다. 남편 심프슨 교수의 도움으로 대학 명의의 정식 공문을 발송했고 그에 대한 회신이 온 것이다. 강애정이 캐서린 데이비슨으로 시민권을 신청했을 때의 사정을 알고 싶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사고로 죽기 이주 전에 시민권을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은 세연의 부모님이 대사관에 강애정을 찾아달라는 신고를 했다는 사실이다.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추적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한국 국민은 이중 국적이 불가능하여 시민권을 취득하면 자동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 당시 대사관에는 영국 시민권을 취득한 이민자의 경유 영국인임으로 대한 국민이 아닌 사람의 실종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이제 캐서린이 대답할 차례이다.
애플트리 하우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절벽 위에 자리한 저택 입구에 들어서자, 세연은 생각에 잠겼다. 이곳 어딘가 언니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바다가 보이는 거실에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세연, 애자, 지은, 그리고 캐서린이 앉아 있었다.
“남작 부인이라고 불러야 할지 지은 언니라고 불러야 할지.” 캐서린이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지은 언니가 편하죠. 어차피 편하게 한국말로 이야기나 나누자는 모임인데 불편할 이유가 있나요?”
남작 부인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조용히 대답했다.
남작 부인은 이 자리가 불편하였지만, 리처드가 없는 틈을 타서 서류를 찾아볼 심산이었다.
이 자리를 만드는데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은은 캐서린의 집을 방문하는 것이 꺼렸졌다. 세연의 계획이 첫 단추부터 틀어졌다. 지은을 설득하려면 사실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조사한 것을 설명하며, 언니를 찾기 위해 지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지은은 잠시 망설였고 리처드와 마주치게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세연 역시 리처드와의 만남이 꺼려졌기에 3개월 전 독서 모임에서 만난 작가 지망생 유진에게 그날 리처드와 약속을 부탁했다. 유진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세연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만, 나중에 말할 준비가 되면 이야기해 줄 거라고 믿어요”
그녀는 남편 이안과 리처드를 소개해 준다는 명목으로 약속을 잡았다. 세연은 이유를 묻지 않고 도와준 그녀에게 고마워하며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애플트리 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애자가 먼저 영국까지 오게 된 자신의 이야기했다. 약간은 포장된 이야기였지만 진실함이 있었다. 지은은 돌아가신 남작과의 유럽 여행을 하던 추억에 대해 이야기했다. 캐서린은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세연은 캐서린을 응시하다가 말을 꺼냈다.
“저는 제 얘기 대신 얼마 전 분석을 의뢰받은 사건에 대해 언니들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고 싶어요. 30년 전 한 여성이 영국 남자와 결혼해서 영국으로 이사했어요. 영국 시민권도 취득했죠. 그런데, 얼마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요. 그 영국 남자는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했고요. 아, 이혼은 안 했으니 재혼인지는 확실하지 않죠. 근데 재혼한 여자의 이름이 사라진 여성의 이름과 같아요. 흔한 이름이긴 하지만 이게 우연일까요? 우연의 일치라면 사라진 여성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아니면, 이 여자가 혹시 사라진 전 부인 행세를 한 걸까요?”
애자와 지은은 오늘의 만남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둘은 찻잔만 쳐다보고 있었다. 캐서린은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얼굴로 듣다가 점점 안색이 흙빛으로 변해갔다. 손이 너무 떨려 두 손을 움켜잡았지만 쉽게 멈추지 않았다. 세연은 날카롭게 캐서린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캐서린 언니 생각은 어때요? 아 언니 한국 이름은 뭐였어요?”
세연의 연이은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캐서린은 얼버무렸다. 보다 못한 애자가 나섰다.
“유진이였잖아. 여기서는 캐서린이라고 부르니 본인 이름도 낯설긴 하겠다.”
“이야기가 너무 무겁게 흘렀나요? 캐서린 언니는 어떻게 한국에 왔는지 궁금해요”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세연은 가볍게 말했다. 대답을 얼버무린 채 캐서린은 차를 다시 내오겠다고 자리를 떴고 지은은 조용히 위층 서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