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의 비밀 노트

<소설> 그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는 그녀들

by 은주

무언가 뒤지는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은은 불안한 듯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여기 있어야 한다. 서류를 어디에다 두었을까?’ 지은은 며칠 전 리처드가 그녀의 집으로 들고 와 겁을 주던 그 서류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세연과 애자가 시간을 좀 끌어주기로 했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릴듯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에는 서류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책상 가장 아래 열리지 않는 서랍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중요한 것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열쇠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만년필 한 자루와 연필 두 자루가 꽂혀있는 연필꽂이로 손을 뻗었다. 필통을 뒤집어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꺼내 보았지만, 열쇠는 없었다.


절망스러운 마음과 다급한 손놀림이 교차하였다. 그러다가 마호가니 책상과 어울리지 않는 제도용 고무판이 눈에 들어왔다. 별 기대 없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고무판 위를 쓸어 보았다. 울퉁불퉁한 느낌이 났다. 들춰보니 작은 열쇠 하나가 있었다. 서랍과 보려 시도하였지만, 손이 떨려 잘 맞춰지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열쇠의 방향을 바꾸어 넣었다. 돌아갔다. 그때 들려온 발소리. 지은은 반사적으로 책상 아래로 몸을 숨겼다. 서재 문이 열리고 애자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지은 언니, 언니 나예요” 지은이 숨을 몰아 쉬며 책상 아래에서 나왔다.

“너무 오래 혼자 계시는 것 같아서 와 봤어요. 세연도 캐서린과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고.. 찾는 물건은 찾았어요?” 애자는 남작 부인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리처드와 연관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세연과 캐서린만 남은 거실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세연은 생각에 잠겨 식어버린 찻잔만 바라보았다. ‘띵’하는 문자 알림 소리에 휴대폰을 보았다. 휴대폰 액정에는 유진의 문자가 와있었다.

‘리처드와 방금 헤이짐’


따로 부탁한 건 아니었지만 유진의 센스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시내에서 애플트리하우스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보니 차로 10분이면 도착한다. 그만 일어나야 한다. 아직 지은은 서재에 있었고 문서를 찾지는 못한 듯했다. 지은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리처드 오는 중. 곧 출발합니다.’ 차를 새로 내오면서 캐서린이 물었다.


“지은 언니는 어디 있어요?”

막 거실로 들어오던 애자가 말했다.

“글쎄 화장실 가는 길에 보니까 서재에 있는 것 같던데.. 책들에 관심이 있더라고. 내가 가볼게.”

애자는 말릴 틈도 없이 거실을 나갔다.

"서재는 이쪽에도 있는데 왜 굳이 리처드 서재에 가셨지?"


캐서린은 주인 허락도 없이 서재에 들어간 지은의 상식 밖의 행동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리처드가 알면 화낼 텐데'라는 생각에 애자의 뒤를 급하게 따랐다. 그때 세연이 차를 소파에 일부러 흘렸다.

“어머... 아 뜨거워”

애자의 뒤를 쫓던 캐서린은 세연의 다급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세연 씨 안 다쳤어요?”

“약간 데인 것 같아요.”

“여기 있어 봐요. 연고 찾아올게요” 캐서린이 자리를 무언가 찾고 있는 지은에게 못 하게 하려 다급하게 외쳤다.

“아니요! 그냥 옆에 있어주세요.” 세연은 캐서린을 붙잡아 두려 계속 말을 걸었다.

“소파가 더러워져서 어쩌죠?”

“괜찮아요. 청소해 주는 분이 있어요. 안 되겠어요. 잠깐만 있어봐요. 연고가 있을 거예요”

캐서린은 화장실로 가서 연고를 찾아왔다. 손에 연고를 발라 주며 세연과 너무 가까이 있다는 생각에 약간 옆으로 비켜 앉았다. 세연은 누군가의 보살핌이 낯설었고, 자기도 모르게 연고를 발라주는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순간 어쩌면 캐서린이 언니를 죽이고 그녀 행세를 할 만큼 나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있나요?”

“쌍둥이 동생이 한국에 있어요. 안 본 지 오래됐네요.”

“동생에게 자상한 언니였나요?”

개인 적인 질문이 캐서린을 불편하게 한 듯 그녀는 어색한 듯 일어섰다.


애자가 나가고 혼자 남은 지은은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여러 겹의 서류 뭉치가 질서 없이 쌓여 있었다. 지은은 손을 떨며 하나씩 넘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서류는 없었다. 대신 낯선 여자와 리처드의 결혼사진이 서류 사이에서 떨어졌다. 서너 장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어쩌면 세연이 찾는 언니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 아래, 오래된 봉투 하나가 있었다. 열어보니 변호사가 공증한 서류였다.

.‘이건 유서의 원본이야.’

남작이 죽었을 때 공증된 유서의 원본 서류를 본 적 있는 지은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변호사가 공증한 양아버지의 유서 원본이었다.

유산의 대부분은 사회 재단과 몇몇 이름 없는 수혜자들에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리처드의 이름은 조심스럽게, 아주 작은 비중으로만 언급되어 있었다. 금액도 삼만 파운드.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다. 그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왜 리처드가 그토록 큰 유산을 양아버지로부터 받을 수 있었는지, 왜 원본을 감추고 있는지.

지은은 휴대폰으로 유서를 촬영했다. 지은은 서류들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생각했다.

'이 집에 있는 사람들 중 진실된 사람이 있을까? 무엇이 진짜고 가짜일까?'

세연이 궁금해하는 만큼 지은도 궁금해졌다.


자신의 서류는 찾지 못했지만 유서의 조작 단서와 어쩌면 세연의 언니에 대한 흔적을 찾은듯했다. 어쩌면 그녀의 서류도 조작된 것 일 수도 있다. 만약 조작한 자가 리처드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지은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호가니 책상 위 연필과 메모장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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