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의 진심을 알아버린 순간, 외국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배가 된다. 친구에서 지인으로 관계가 바뀌는 찰나, 관계에 번아웃되었다. 상처 받고, 그 상처로 상대를 공격한 적도 있다. 스스로 사람 보는 눈이 없음을 인정한 적도 있다. 그리고 미워했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이 나를 더 성숙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나이가 드니 ‘미워서 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에 만나지 말아야 할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 파리, 언니네 집으로 짐을 꾸렸다. 마음이 꼭 맞지 않아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도버해협 너머에 언니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언니의 존재만으로 조금씩 봉합되는 기분이다.
평소 같으면 가방에 김밥이나 샌드위치, 물, 초콜릿부터 챙겨 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날의 여독이 채 가시지 않았다. 아침 7시 기차를 타야 했기에 6시에는 일어나야 했고, 몸은 아직 느릿했다.
프랑스 외곽 도시, 에브리-쿠르쿠론(Evry-Courcouronnes)에서 예약해 둔 차량을 픽업하러 갔다. 8시에 도착했지만, 예약자인 언니가 운전면허증을 분실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혹시나 오늘 출발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불안감이 밀려왔다. 엔진이 켜졌고 출발했다.
운전석이 바뀌어 낯설고 조심스러웠지만, 고속도로를 달려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쯤엔 비로소 ‘여행을 떠났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파리에서 약 170킬로 떨어진 샹보르성에 도착했을 때, 주변은 의외로 한산했다. 호수에 비친 성의 입구 앞에는 영어와 한국어로 된 방문 안내 지도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처음 해외를 여행하던 시절, 익숙한 언어가 없어 느꼈던 막막함이 문득 떠올랐다. 이제는 많은 유럽의 박물관, 미술관, 관광지에서 한국어 안내서를 마주하게 된다. 오래된 아쉬움을 치유해 주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1519년에 지어진 샹보르성. 중심부의 나선형 계단은 이탈리아 건축을 보는 듯했고, 실제로 다빈치의 영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루아르 고성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이 성은, 프랑수아 1세가 자신의 권력과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사냥용 별장으로 지은 곳이다.
1층의 시청각실에서 성의 역사와 구조를 담은 영상을 본 뒤, 곧장 그 유명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위로 올랐다. 계단을 오르자 실제 사용되었다는 프랑수아 왕의 침실이 나타났다. 문득, 침대가 너무 작아 보여 그 시대 남성들의 평균 키가 궁금해졌다.
죽어서도 삶을 전시해야만 하는 왕의 숙명을 생각했다.
3층에 다다르자, 햇살이 머무는 복도가 펼쳐졌다. 사냥의 전리품들이 걸려 있는 공간이었다. 나는 천천히 그 복도를 걸었다. 왕이 된 듯 걸었지만, 그 순간 마음속엔 조용한 문장이 하나 떠올랐다.
‘왕도 외로웠겠구나.’
약 두 시간 동안 왕의 성을 염탐하듯 둘러본 후, 성 좌측으로 펼쳐진 팝업 상점 거리로 들어섰다. 현지산 꿀과 치즈, 와인, 수제 비누와 초 등 각양각색의 먹거리와 소품들이 양옆으로 줄지어 있었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 루아르의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 테라스로 자리를 잡았다. 샹보르성을 마주한 자리에서 마시는 프랑스 와인의 첫 모금은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세상의 모든 근심이 사라지게 한다.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와 함께 찾아온 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순도 100%의 행복이었다. 프랑스와 언니는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아침의 분주함 속에서도 빠뜨리지 않고 챙겨 넣은 천 보자기.
바로 지금, 그 보자기가 제 몫을 해내는 순간이다.
샹보르성이 정면으로 보이는 잔디밭 위에 펼쳐놓고는 그 위에 몸을 눕혔다.
눈앞엔 성이, 머리 위로는 하늘이, 귓가엔 바람이 흘렀다. 그 모든 풍경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었다.
숙소의 앞마당에는 젊은 시절, 세계 곳곳을 여행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기자기한 동양풍 소품들이 이국적인 질서로 전시되어 있었고, 그 하나하나가 주인의 추억을 말없이 들려주는 듯했다.
번거로운 짐을 풀어두고, 산들바람이 스며드는 정원에 앉았다. 낮 동안 햇볕에 지친 몸은 천천히 식어갔고, 마음도 덩달아 고요해졌다.
저녁은 차로 20분을 달려 도착한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였다. 프랑스는 시골 곳곳에도 미슐랭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 4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입도, 코도, 눈도 즐거운 식사를 시작했다. 메뉴는 불어로 되어 있어 언니의 통역이 필요했지만, 다시 또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요리들에 대해 굳이 어려운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까. 그 순간의 코스 요리를 그저 온전히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