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 한국 여자
영국의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다. 마차 시절, 마부들은 왼손으로 고삐를 잡고 오른손에 채찍을 쥐었다. 그 습관이 오늘날 운전석 위치까지 이어진 것이다. 켄트나 콘월의 시골길에는 여전히 마차 바퀴 자국이 자갈 바닥에 남아 있다. 한국에서 7년간 무사고였던 나도 반대 방향이 낯설었다. 공간 개념 없어 자주 왼쪽으로 기울어져서 달리곤 했다. 영국은 속도 단위도 다르다. 처음 운전했을 때 100km/h로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시속 100마일(160km/h)로 달렸던 것이다.
"100킬로가 너무 빠른 것 같아"라는 나의 말에 이안은 전직 레이싱 선수처럼 보였다고 했다.
계산을 하고 나서야 나도 목숨 걸고 운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라운드어바웃(roundabout)은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신호 없이 원형 교차로를 회전하며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회전 중인 차량이 우선, 첫 번째 출구는 좌회전, 두 번째는 직진, 세 번째는 우회전, 네 번째는 유턴이다. 하지만 나에겐 간단하지 않았다. 진입도 힘들었지만 빠져나가지 못해 손에 땀이 났다. 끼어들기가 힘들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갔다던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네 바퀴째 돌 때쯤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집 앞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경찰차가 바로 뒤에 서 있었다. 키는 180 센티미터 가량 되어 보이고 몸무게도 100킬로그램이 넘어 보이는 경찰이 모자를 눌러쓰고 다가왔다. 너무 긴장한 탓에 그 사이렌 소리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의 뒤에는 금발의 곱슬머리를 한, 키 작은 여경이 분주히 무언간 준비하고 있었다. 모자는 쓰고 있지만 머리에 얹어 놓은 듯했고,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긴장되었지만 웃음이 났다.
“음주가 의심되니 따라오세요.”
술을 마시지 않았으니 ‘당당하게 불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어제 마신 맥주가 혹시 남아있을까 싶어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 번에 크게 불었다. 불길한 ‘삐’ 소리와 함께 ‘0.00’이 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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