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남자, 한국 여자
나는 영국에 있는 일본계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회계사다. 입사 당시, 한일 관계는 최악의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했고, 한국에서는 ‘사지 않습니다, 가지 않습니다’라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영국인 신랑도 이런 관계의 불편함을 알게 됐다.
“한국은 일본 차에 주유도 거부한다는데. 똘똘 뭉쳐 거부하나 봐. 대단해!”
본인도 절반은 한국인 편이라고 생각했는지 당분간 일본 맥주는 안 마시겠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정치적 갈등이나 역사 문제가 있는 나라인 건 맞다. 솔직히 처음부터 일본 회사에 호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회계는 숫자로 이야기하는 직업이다 보니 나라가 무슨 상관있을까? 전 세계 공통언어 숫자는 정치적 이념도 역사적 사건도 담고 있지 않았다.
가족들은 내가 일본인 회사 면접을 보고도 안 다닐 거야 할 줄 알았다고 했다. 계약서 사인에 놀라는 눈치였다. 그녀에겐 이념이나 신념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한 일이었다. 일본인 총괄 매니저 무라이 씨도 이력서만 보았을 때는 기왕이면 영국인을 뽑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한 내가 최종 합격자로 선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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