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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도 같이 배우실래요?

영국 남자, 한국 여자

by 은주

런던 서쪽의 작은 동네, 집 근처에 합기도장이 새로 생겼다. 한국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전단지가 골목길에 붙어 있었다. 합기도(Hapkido). 많은 영국인은 합기도가 일본 무술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 이안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합기도장이나 태권도장은 늘 남자아이들의 공간이었다. 성인이 된 뒤, 영국에 오기 전 한동안 살았던 동네에는 도복 냄새와 구령 소리가 끊이지 않는 학원이 있었다. 아이들이 시간마다 몰려들었다가 빠져나오던 그 건물은 부모님 아파트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기억 덕분에, 낯선 땅에서 한국어 간판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게다가 이곳에서 합기도를 배울 수 있다니. 나는 망설이지 않고 도장을 방문했고, 곧 등록을 마쳤다.

“또 새로운 걸 배우려고? 요가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는데, 이제 합기도까지?.”

이안은 달갑지 않아 했지만 나는 대꾸하지도 않았다.

첫 수업에서는 잘 넘어지는 법을 배웠다. 합기도에서 낙법은 부상을 피하는 핵심기술이었다. 싸우는 기술을 배울 줄 알았는데 다치지 않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은 띠를 두른 사범이 보여주는 발차기, 구르기, 손목 꺾기등을 기억해 따라 했다. 단 하루 배웠을 뿐인데 '누가 덤빈다면 손목을 꺾어 버려야지'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았다. 밤길도 두렵지 않았다.


주 1회 수업만으로는 부족했다. 집에서도 틈날 때마다 동작을 연습했다. 어느 날 저녁, 배운 호신술을 시험 삼아 남편의 손목을 잡아 돌려보았다.

“아아~!”

이안은 고통에 소리쳤다. 나는 웃으며 허리띠를 고쳐 매었다.

“합기도에서 배운 거야. 호신술이지.”

“그런 건 나한테 쓰면 안 되지!”

“연습이 필요해. 안 하면 다음 주 따라가기 힘들어.”

무엇이든 배우면 열심인 나를 위해 남편은 대련 상대가 돼주었다. 팔을 비틀어 소파에 쓰러트리기도 하고, 발을 걸어 바닥에 주저앉히기도 했다. 프레셔 포인트를 가볍게 눌러도 이안은 기겁하며 쓰러졌다. 처음엔 장난처럼 웃어넘겼지만, 자꾸 제압당하는 일이 쌓이자 그의 태도는 달라졌다.

“좋아, 나도 배울 거야.”

하얀 도복을 입은 이안의 모습은 올림픽 태권도 선수 같았다. 나는 은근히 흐뭇했다. 이제 나만의 세계였던 합기도가 둘의 공간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안은 처음부터 즐기지는 못했다. 낙법을 배우며 매트에 등을 세게 부딪히고는 “오우!” 하고 신음을 내질렀다. 사범은 “다시 해봅시다, 천천히요.” 하고 격려했지만, 그는 금세 진땀을 흘리며 등이 아프다고 투덜댔다. 나는 염장을 지르듯 태연하게 굴러 넘어지며 합기도 선배의 여유를 보여주었다.

“잘하네. 집에서 나를 잡고 그렇게 연습하더니 보람이 있네.”

그는 내가 부러우면서도 '이걸 내가 왜 배워야 하지?' 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안도 조금씩 기술을 익혔다. 손목 잡기, 팔 꺾기, 기본 발차기, 돌려차기까지. 하지만 여전히 그는 종종 “오늘은 봐줘!”라며 엄살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기 쓰지 말고 그냥 넘어가야지. 버티다가 다쳐!” 남편을 매트에 내동댕이쳤다.

합기도에는 힘을 줘야 할 때와 빼야 할 때가 있다. 억지로 끌어당기고 버티는 게 아니라, 상대의 흐름을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가 고집부릴 때와 넘어가야 할 때를 아는 것은 합기도뿐 아니라 삶에 필요한 지혜인 듯하다. 처음엔 자신과 맞지 않는다며 매일 투덜거리던 이안도 차차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도장은 사라졌다. 나는 초록띠에서, 남편은 노란띠 직전에서 여정을 멈췄다. 걸려있는 도복을 보며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배우고 나면 여기저기 쑤시고 파스 붙이기 바빴던 터라 다시 시작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추억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합기도? 난 은주한테 배웠어. 내가 지켜주려 했는데, 사실 그녀는 혼자도 잘 지킬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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