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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이야기

영국 남자, 한국 여자

by 은주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빠가 밥도 주고 산책도 데려가는데, 넌 왜 엄마를 더 좋아해?”

저녁마다 이안은 아들처럼 키우는 반려견 만두에게 다그치듯 묻곤 했다. 만두 앞에서 그는 늘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그를 만두는 심 그렁하게 쳐다보다 자리를 뜬다.

부부가 ‘딩크(DINK, Dual Income, No Kids)’를 선택한 뒤, 강아지를 입양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나는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없었기에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코로나가 전 세계의 문을 걸어 잠근 어느 봄, 웨일스의 작은 마을에서 아홉 마리의 강아지가 태어났다. 짧은 다리에 통통한 몸, 유난히 크고 귀여운 귀를 가진 생명체였다. 다섯은 암컷, 네 마리는 수컷. 견종은 팸브룩 웨일시 코기. 아홉 마리 중 작은 몸집에 싸움은 제일 잘한다는 만두. 흰색, 크림색, 검은색 삼색이 강아지였다. 부부는 그 강아지를 만두라 이름 지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바로 만두였기 때문이다. “김치를 좋아했으면 어쩔 뻔했니?”라며 한국에 있는 엄마가 농담을 던졌을 때, 온 가족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태어난 지 3주 된 만두를 온라인으로 보았다.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는 8주까지 기다려야 했다. 영국에서는 젖을 떼는 시기와 예방 접종 시기와 맞춰 입양을 진행했다. 4시간의 여정 끝에 만난 만두는 차에 태우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강아지 짖는 소리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우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던 아이는 낯선 차 안에서 친구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눈물이 맺힌 눈으로 누군가를 계속 찾았다. 어른이 되어도 헤어짐은 슬픈 일인데 너무 어린 나이에 홀로 남겨진다는 것을 경험을 한 만두가 안쓰러웠다.

낯선 환경에 비행기 소리조차 귀를 쫑긋 세우며 놀라 짖던 아이는, 며칠 지나지 않아 집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소파 위에서 턱을 괴고 졸거나, 부엌 바닥에 널브러져 간식을 기다리는 모습은 부부를 미소 짓게 했다. 밥을 주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참을 먹다가도 배를 뒤집고 바로 잠이 든다. 어디 아픈가? 죽은 건가? 싶어 조용히 다가가면 가느다란 팔다리에 볼록한 배가 위아래로 들썩인다. 코로나의 긴 어둠 속, 만두는 집안에 색채를 불어넣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가야 했고, 정해진 시간에 놀아주어야 했다. 안정감을 주려면 만두가 예측 가능한 패턴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장난감을 물고 와 놀아 달라 조르거나, 놀아 주지 않으면 크록스 신발을 물고 다니거나 양말을 숨겨두거나 꾀를 부린다. ‘손’과 ‘엎드려’ 같은 명령어를 배워가는 과정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일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이제 만두는 다섯 살이 되었다. 여전히 다리는 짧지만, 매일 세 차례의 산책을 증명하듯 단단한 근육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만두를 가끔 ‘코기계의 마동석’이라 부르며 놀린다. 한국 친구들은 듣자마자 웃음을 짓지만 신랑은 설명을 해줘도 ‘아아~’ '이게 왜 웃기지?' 하는 정도의 반응이다. 외국인과 같이 사는 건 웃음 코드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풀이 무성한 들판에서 뛰어다닐 때는 귀가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것이 토끼 같기도 하고 힘껏 달리다가 금세 지쳐 배를 뒤집으며 쉬자고 시위하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늦게까지 글을 쓰고 있으면 앞발로 책상을 툭툭 건드리며 “이제 자자” 고 재촉한다. 주말 아침에는 침대 옆에서 기다리다 못 참겠다는 듯 이불 위로 뛰어오르려 애쓰지만, 결국 실패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 소리에 부부는 웃음을 터뜨리며, 결국 엉덩이를 밀어 올려준다.

하이킹을 가던 날, 만두는 끝없는 계단을 오르다가 중간쯤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빨간 스카프를 두른 채, 세찬 바람에도 끄떡없이 서 있던 모습. 남편은 앞만 보고 성큼성큼 가버렸다. 이기적인 이안의 뒤통수를 보며 신고 있던 신발을 던져버리고 싶었다. 같이 가자고 화를 내려는 차에 만두가 늦게 올라가는 나를 향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본인도 숨을 헉헉 대면서도 엄마 괜찮은지 확인하는 모습에, 남편보다 백배 낫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만두의 응원을 받으며 무사히 완주했다.


코로나로 인해 3년 동안 한국에 가지 못했던 외국 생활은 고달팠다. 만두가 있었기에 외로움은 덜했고, 집안은 늘 활기찼다. 전쟁 중에서도 꽃이 피듯, 최악의 시기에도 집안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만두는 아이가 없는 딩크 족에게는 반려동물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저녁이면 윈저 롱 워크 산책로를 함께 걷는다. 강아지는 귀를 펄럭이며 앞으로 갔다가 뒤로 왔다가, 사방팔방을 뛰어다닌다. 내가 나무 뒤에 숨어도 곧 숨바꼭질임을 알아채고, 쏜살같이 달려와 엄마를 찾아낸다. 그리고 저녁이면 이안의 무릎을 가볍게 지나쳐 금세 나의 품으로 파고든다. 엄마의 옆자리는 자신만의 자리라는 듯, 이안에게 으르렁 거리기까지 한다.

그런 만두를 보며 남편은 묻는다.

“왜 만두는 엄마를 더 좋아하는 걸까?”

“아직도 몰라? 아빠가 주는 밥은 매일 먹는 당연한 음식이고, 내가 주는 건 특별식이잖아. 잘 말린 연어 스킨, 발라 준 닭고기 말린 고구마 같은 거 말이야. 아빠는 일상이고, 엄마는 특별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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