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4월 01일 월요일
나는 이런 일꾼들 사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엄살 없는 의젓한 일꾼의 피가 내게도 흐른다.
_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79쪽
최근에 알게 된 몇 분. 마음속으로 얼마나 흉을 봤는지 모릅니다. 엄살이 심하고, 아주 작은 것도 큰 고생으로 느끼는 분들입니다. 이슬아 작가처럼 저도 일꾼들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금형 공장에서 태어나 공장 삼촌들과 놀며 자란 제게 그분들의 말은 참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쉽게 흉을 보면 안 되겠다, 자신이 택한 태도라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서 온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04월 02일 화요일
엄마와 엄마의 아빠와 그 아빠의 엄마를 동시에 품은 채로 노래를 하고 글을 쓰면서 저는 무언가가 되풀이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실은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온 느낌. 내 몸이 그저, 재주가 흐를 만한 통로인 것 같다는 느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느낌.
_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72쪽
지난 토요일은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는 날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남편에게 - 제사에는 아들이 중심이다, 그래서 사촌언니들은 안 오고 사촌오빠들만 온다 -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남편 독일인) 그랬더니 자기는 안 가도 되는 거 아닌가 하다가, 이왕 가는 거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 네 분 이름도 지방에 적어서 올리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농담으로) 이름을 다 기억하면 그렇게 하라고 했죠. 당연히 모를 줄 알고요. (제가 모르니까) 그런데 길기도 긴 그 이름들을 다 알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저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하더라고요.
진심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저와 25%나 유전자가 일치하는 네 분에 대해 잘 모르는 것뿐만 아니라 이름도 모르다니. 제사를 마치고 다음 날 엄마, 아빠에게 두 분의 엄마, 아빠에 대해 물었습니다. 어떤 분이셨는지, 몇 년 생이신지, 즐거운 기억은 무엇이었는지, 성함은 무엇인지. 나중에 내 딸이 나의 소중한 엄마, 아빠 이름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슬퍼지더군요.
04월 03일 수요일
“즐겁고 터무니없는 일 상상해라.”
_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95쪽
요즘 스스로를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삽니다. 뭔 말이냐고요? 처음 하는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용기도 안 나고, 그런데 잘하고 싶긴 하고. 그러다 떠올린 방법인데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쓸만합니다. 대학생이 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해 보자, 이러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이건 돈이 안 될 것 같은데.. 하다가, 대학생이 이 정도 하면 잘 한 거지, 이런 식으로 합리화합니다. 그런 자기 암시(?)에 이 문장이 앞으로 나가라고 등을 밀어주네요. 즐겁고 터무니없는 일을 상상하라니. 생각만 해도 궁둥이가 들썩거려요.
04월 04일 목요일
자연을 모르고 흙으로부터 단절된 채 자란다는 건 부모 없이 자라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로 아이들을 고아로 만드는 일일 것 같다. 우리를 낳은 근원에 대한 사랑과 외경과 순종을 전혀 모르면서 자라야 되니 말이다.
_ 박완서,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515쪽
1. 국민학교 하교하고 운동장에서 땅따먹기를 자주 했어요. 흙만 있으면 그림도 그리고 뭐 만능 놀이터였죠. 한문 학원 앞 정원에서 공벌레, 개미도 엄청 잡고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5학년 때까지는 매일 그랬던 것 같아요.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꽃도 따 먹었어요. 교무실 앞쪽 화단에 하교하다 말고 친구들이랑 앉아서 사루비아 꽃 밑에 맺힌 꿀을 빨아먹은 기억이 나요. 저도 흙으로부터 단절된 채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대로 추억이 있네요.
2. 우리를 낳은 근원에 대한 사랑과 외경과 순종은 어른이 되어서도 꾸준히 해야지. 도시 말고 시골에도 자주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