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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금 Sep 02. 2022

맛있는 단어들

오늘의 도파민

1. 이 주제에 관심이 생긴 계기


마음속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는 감정이나 상황을 딱 한 단어로 말하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다. 설명하기 위해 3분 넘게 걸리지도 않고, 딱 한 단어로 정리되는 딱 떨어지는 단어 말이다. 또 그런 단어를 발견했을 때는 퍼즐이 딱 맞아떨어졌을 때 느껴지는 그 만족감이 있다. 등 긁어달라고 했을 때 딱 찾아서 긁어주는 그 만족감이랑도 비슷한 것 같다. 맞아. (이런 만족감을 뜻하는 말은 없을까?)

무려 루시드폴이 번역했다. 루시드폴도 이런 단어를 좋아한다고 서문에 썼더라.

작년 겨울에 <마음도 번역이 되나요>라는 책을 보고 이런 단어의 힘을 알게 되었다.


일단 이 책에서 소개한 단어를 잠깐 보면:


Komorebi(木漏れ日, 일본어, 발음 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스며 내리는 햇살. 이런 사진만 내 사진첩에 이 천장은 되는 것 같다. 이제 그 사진들을 코모레비 사진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Warmduscher(독일어, 붜름듀셔): 직역하면 따뜻한 물로만 샤워하는 사람이라는 뜻. 겁이 많아서 안전한 곳에만 있으려고 하는 겁쟁이를 말하며 놀릴 때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일차원적인 나는 또 Warmduscher가 되지 말아야지 하며 진짜로 찬물로 가끔 샤워를 한다. 아직 효과는 못 봤다.)


Gezellig(네덜란드어, 흐젤륵): 네덜란드에 살 때 친구들이 날씨 좋은 날 공원에서 햇빛을 맞으며 맥주만 마시면 하던 말이다. 일종의 평화로운 안락함을 뜻 한다고. 네덜란드 사람들이 이 단어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영어로는 번역이 안된다는 것.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한국어에도 그런 말이 있다고 하며 ‘정’의 감정을 열심히 설명했다. (질 수 없지.)


2. 새롭게 알게 된 것


이런 단어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또, 독일어에 특히 이런 말이 많다는 것도. 독일인 남편이 밥 값을 할 시간이다. 이런 독일어 단어를 찾으면 네이티브에게 물어본다. 이런 말을 실제로 쓰는지, 발음은 어떻게 하고 어느 상황에 쓰는지. 귀찮아했지만, 내가 본인의 모국어에 관심을 가지니 그래도 곧잘 대답해주었다.


Fremdschämen(프렘쉐먼)

독일어에서 이런 말로 가장 유명한 단어가 이 단어일 것이다. 남이 하는 행동 때문에 내가 부끄러워지는 감정이다. (아래 영상 참조) 예를 들면 사인필드 드라마에서 일레인이 춤을 추는데, 너무 이상해서 주변 사람들이 부끄러워한다. 주변 사람들이 가지는 이 감정을 프렘쉐먼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youtu.be/HQu_NLRvULM

일레인은 정작 본인은 춤을 이상하게 추는지 모른다.


Fernweh(펜붸)

Homesick이 타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한다면, Fernweh는 고향(일상)에서 타지를 그리워하는 감정이다. 지난 휴가에 갔던 그 바닷가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이다.

남편과 나는 지난 여름 다녀온 하와이에 가고싶은 Fernweh가 생겨버렸다.

Reisefieber(라이즈 피버)

여행 가기 전에 갑자기 불안해지고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그런 감정이다. 맨날 가는 곳에 갈 때는 라이즈 피버가 생기지 않고 정말 가고 싶었던 곳에 가기 전에 며칠 전부터 짐을 싸고 마구 기대가 되는 그런 심정이다.


Kummerschuck(쿠머슈펙)

직역하면 슬픈 지방. 우울해서 많이 먹어서 찐 살을 말한다. 우울해서 살이 쪄 본 나로서는 이게 어떤 살인지 딱 안다.


이런 단어를 알고 나니 Fernweh가 더 생기는 것 같고, 지나가는 아저씨의 배를 보면 혹시 Kummerscheck일까 하며 고단함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사진첩에는 코모레비 사진이 더 늘고 샤워할 때마다 Warmduscher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게 된다.


앞으로 또 어떤 멋진 단어를 만나 못 보던 세상을 볼 수 있을지 기대되는 오늘의 도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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