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태권도?

오늘의 도파민

by 카후나

아 이렇게 재밌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니.


29 Aug 22 오늘의 도파민 기록:


어제 날씨는 초가을이라 화창했는데 마음이 장마 때처럼 축축거렸다. 건강한 철새들처럼 모두 다음 계절로 날아갔는데 나만 헌 계절에 남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터덜터덜 의무감으로 오늘의 걸음을 채우는 중이었다. 그러다 옆으로 노란색 승합차가 지나가더니 20미터 앞 태권도 학원 앞에 섰다. 아, 저기 태권도 학원이 있었구나 처음 알았다.


태권도장은 아이들이나 다니는 거겠지 하면서 지나가다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혹시 성인반이 있을까?


계단을 내려가니 막 초등반 저녁 수업이 끝났나 보다. 땀 흘리는 건강한 아이들이 예의 바르게 관장님께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관장님 감사합니다 하고 우렁차게 외치는 아이들의 기합을 들으니 나도 함께 씩씩해지는 것 같았다.


쭈뼛거리는 나를 관장님은 건담 프라모델과 태권도 트로피가 가득한 사무실로 안내했다.


나: 성인반도 있나요?

관장님: 그럼요.

나: 언제부터 다닐 수 있나요?

관장님: 언제든 가능해요. 매일 20:30 수업요.


한 시간 뒤 내 인생 처음 태권도를 시작했다. 얼떨떨했지만 원래 인생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이겠지.


일주일 다녀본 결론은 엄청 재미있고 신난다는 것. 선입견으로 가지고 있던 수업과는 매우 다르다.


1. 수업의 대부분은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한 운동이다. 태권도 품새 연습만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일단 수업을 시작하면 도장을 10바퀴 뛰고 스트레칭을 하고 줄넘기를 한다. 이렇게 준비운동을 20-25분 하고 나면 벌써 땀이 뚝뚝 떨어진다.


2. 꼭 10살 때로 돌아간 것 같다. ‘야합’ 기합을 지르고, 줄넘기를 하고, 뛰고 발차기를 하는데 운동장에서 친구들이랑 뛰어놀던 때가 생각났다. 40대에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정말 귀하다.


3. 단체 운동의 효력이란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그렇게 하려고 다짐했던 팔 굽혀 펴기를 2년 만에 처음 했다. 그것도 30개나.(무릎 대고 물론.) 조금씩 따라 하다 보니 운동량도 꽤 된다.


4. 그룹의 다양한 구성원이 재밌다. 액션 배우처럼 발차기를 잘하는 남자 중학생, 그만큼 잘하는데 더 절도 있는 그의 누나,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남자 고등학생, 60세 넘은 여자 어르신, 잘못 보면 횟집 셰프님인지 오해할만한 아저씨, 그리고 42세에 처음 태권도를 해보는 나.


5. 관장님은 기합을 질러야 힘이 더 난다고 했다. 기합을 내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그것도 잠시 이틀 만에 적응되었다. 부끄러움을 이겨내고 무언가 할 때 느껴지는 미묘한 고양감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다시 실감했다.


6. 저녁 8시 반부터 한 시간 기합을 지르며 땀을 흘리고 9시 반에 찬 바람을 맞으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인생을 긍정하게 된다. 오늘 하루 종일 나를 심란하게 했던 질문들도 모두 피곤한지 사라진다. 오늘 하루가 어떤 하루였든 마지막이 좋으니 괜찮은 하루가 돼버린다.


이렇게 동네마다 존재하고, 매우 저렴하며, 알찬 커리큘럼의 운동이 있을까? 실로 감동했다.


며칠 전에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 건져낸 이 문장처럼 태권도장은 어린아이들이나 다닌다는 선입견을 과감히 놓았더니 상상 이상의 세계가 열렸다.

밑미에서 하는 아침독서x문장메모 리추얼에 참여하면서 매일 아침마다 나에게 힘이되는 오늘의 문장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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