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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Dec 16. 2022

이걸 계속해야 하나?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구하려고 합니다

드디어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주부터 슬슬 연료가 바닥날 기미를 보이더니 이번 주는 정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무슨 말이고 하니, 새로운 사업에 대한 남편과 나의 의지다.


8월 29일. 남편과 나는 사업을 시작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정상회담에 나올 법한 진지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악수도 했다. 지난 3개월 동안은 새로운 일로 분주했다. 이름을 정하고, 우리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 로고를 만들고, 사무실을 구해 그 로고를 달았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우리가 쳐들어가는 업계를 공부했다.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짜고, 최대한 뾰족한 작은 칼을 만들기 위해, 누구에게, 무엇을 팔지도 정해보았다.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우당탕탕의 3개월을 보낸 것이다.


이렇게 3개월을 보내고 나니 어라, 연말이다. 연말에는 모름지기 연말 결산을 해야지 하고 우리가 한 것을 챙겨보니, 이룬 것이 없다. 0. 제로. 분명 무언가 하긴 했는데 성과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다. 3개월 동안 모래 같은 걸 가지고 장난을 했던 걸까? 우린.


풀이 죽을 대로 죽어 이번 주를 시작했다. 그런데 월요일이 무슨 날이었나 하면, 그동안 간절히 원하고 원했던 창문이 있는 사무실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내 몸의 반절은 기뻐 날뛰고 반절은 이게 아닌데 하며 의기소침했다. 책상 정리도 손에 안 잡혀서 한참을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드디어!) 이사한 창문이 있는 사무실

그렇게 어정쩡한 마음으로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모두에게 보여주겠어' 같은 의지와 표상은 없었다. 창문이 있으니깐 좋긴 좋다고 혼잣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참 한심했다. ‘좋텐다. 일은 안 하고 사무실만 옮기냐?’ 스스로 묻게 되었다. 기분이 영 개운하지 않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것도 월요일 아침부터다.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2007년에 발행한 이 책을 주변에 두 명이나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그래서 나도 한 번 읽어보자 하고 잡았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일주일을 바꿔 놓았다.

내 경우, 이렇게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까닭은 ‘소설을 착실하게 쓰기 위해서 신체 능력을 가다듬어 향상한다’라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므로 레이스나 연습을 위해서 작품을 쓸 시간을 빼앗겨버리고 나며, 그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고 할까, 약간 곤란한 일이 되고 만다. 그런 이유로 현재로서는 비교적 온건한 단계에 나 자신을 머물게 하고 있다. (264p)

온건한 단계라고요? 아닌데요! 그는 매년 추운 시즌에는 풀코스 마라톤 레이스를 하고 여름철에는 트라이애슬론에 참가한다. (당시에 그랬다는 것이니 요즘은 얼마나 뛰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준비 없이 이렇게 경기에 참가하면 정말로 죽을 수 있다. 그러니 그는 주마다 60-80킬로(달마다 260-350킬로)를 뛰고 수영과 사이클 연습도 따로 해서 대비를 철저하게 한다고.

하와이로 온 이후에도 매일 거르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다.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리는 생활을 다시 시작한 지 이제 꼭 두 달 반이 된다. (18p)
달리는 일이 다시 매일의 생활에 하나의 중심축이 되었다 꽤 착실하게 달리고 있다. 내가 ‘착실하게 달린다’고 하는 말은 구체적인 숫자를 들어서 말한다면 일주일에 60킬로를 달리는 것을 의미한다. (21p)
설사 절대적인 연습량은 줄이더라도, 휴식은 이틀 이상 계속하지 않는 것이 트레이닝 기간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113p)
나는 이런 일에 관해서는 비교적 집요한 성격이다. 뭔가 잘 안 된 일이 있으면, 그것이 잘 될 때까지 납득도 할 수 없고, 마음도 안정되지 않는다. (241p)

본업이 아닌 일에도 이 정도의 준비를 하는 사람인 것이다. 본업을 더 잘하기 위한 부캐 활동에 대한 자신의 기대도 무척 높은 것이다. 이런 그가 본업을 대하는 태도는 정말 진지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절절히 들었다. <<직업의로서의 소설가>>도 읽었지만 이토록 와닿지는 못했다. 아마도 소설가의 정신세계에서 일어나는 그 노력과 태도는 모두 글로 담아 전달하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나도 그처럼 '지성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육체적인 인간'(44p)이기 때문에 이 책에서 그의 신체적 고통을 들으며 그의 진지함이 더 와닿았다. 예를 들면 오리지널 마라톤 코스를 달리며 햇볕에 그을려 상반신에 물집이 잡힌 것이나, 트라이슬론 수영 스타트에서 옆구리를 걷어 차이는 고통을 들을 때, 100킬로 대회에서 마지막까지 걷지 않고 정신을 부여잡고 11시간 42분 만에 완주하는 과정을 들을 때 그랬다. (그리고 그의 고통이 내 고통처럼 느껴지는 그의 표현력에 진심으로 감동했습니다.)


영 잼병인 영역이 있다. 어느 마음이든 적정선을 찾는 것이다. 이번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볍게 툭툭하자고, 너무 과열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랬더니 힘 빼는 것에 너무 집중했나 보다. 필요한 힘까지 너무 빠졌다. 수영 선생님이 항상 강조하는 것처럼, 할머니 수영에서 조차 반드시 코어에는 힘이 들어가야 하는데 말이다. 하루키 씨의 달리는 정신을 접하고 내가 얼마나 헬레레하고 일했는지가 보였다. 충분히 진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지해지면 또 지나치게 무리할까 봐 걱정되지만, 결국 무리해보지 않으면 또 어느 선에서 멈출 것이지도 알 수 없지 않은가? 조금만 더 코어에 힘을 주고 리듬을 탈 시간이다.


이 책 한 권을 연료로, 이번 주에 시동을 걸어 건너왔다.(이러니 제가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구하려고 합니다.) 다음 주는 어떤 책을 연료로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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