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라는 과목의 오답노트
평생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난임 세계에 입문한 지도 20개월이 넘었다. 쉽다고 생각하고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일상이 난임으로 뒤덮일 줄은 몰랐다.
그동안 익숙해진 것들도 많다. 재작년 11월 처음 과배란 주사를 맞을 때, 아침 7시 정각에 각 잡고 앉아서 지독한 리추얼을 지키면서 주사를 놨다. 손을 두 번 씻고 주사 놓는 법이 적힌 안내문을 매번 다시 읽었다. 지금은 약을 식염수에 조제해서 맞는 주사도 짝다리 짚고 눈도 다 안 뜨고도 섞어서 우습게 놓는다. 반 간호사님들 수준으로 뱃살 딱 잡고 90도 각도로 정확히 들어간다. 이건 도사가 되었다.
그래도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일만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난임 병원 대기실은 서울에서 가장 명랑한 여자가 와도 5분 안에 눈동자 가득 불안을 넣어줄 공간이다. 여기서는 모두가 눈 내려 깔고 좋은 결과를 듣기만 기도하며 앉아있게 된다. (가끔은 이 대기실의 불안을 모아서 가공하면 엄청난 무기를 제조할 수 있겠다란 공상을 할 때가 있다.) 일단 병원에 가면 두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데 이 대기 시간만 없어도 참 견딜만하겠다. (병원 관계자분께 민원 넣고 싶다. 제발 프로세스 개선 컨설팅 한 번만 받으세요.) 병원에 갔다 오는 날은 참 예민해져서 작은 일에도 큰 반응을 한다. 이런 나를 보고 내가 놀란다. ‘나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되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을 안고 사는 남편에게 거의 모든 불똥이 튄다.
난임 일기(22-01-8): 이제 1시간 후면 수술실에 들어가서 수술 옷으로 갈아입고 마취를 하면…. 그 이후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최대한 생각하지 말자. 그래도 채취는 이번이 5번째라 거의 뿌리 염색하는 기분으로 수술실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긴장하지 않는 척을 했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하고 눈인사를 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녀가 초음파를 보더니, (불길한 정적이 흐르고) “아이고, 이미 배란이 돼버렸어요. 어떻게 해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란다.
그렇지. 아무리 내 몸이지만 내가 통제하는 것은 아니지. 배란은 자연의 섭리에 맞게 된 것이고 나의 의지나 의사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겠지. 이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했다가도, 이런 상황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집에 와서도 ‘괜찮아. 대세에 지장 없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아서 스스로도 당황했다. 응급으로 걸으러 나가서는 나도 모르게 좀 무서운 말이 나왔는데, 남편도 속상해서 울어버렸다. 남편이 우는 것은 처음 봤다.
나름의 노력: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남편과 나는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했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 위기의 상황을 지나가야 하는 것인지 전혀 감이 안 온다. 무력하게 우울해지는 내 모습이 나도 너무 힘들고, 이런 우울한 아내를 봐야 하는 남편에게도 너무 미안하다. 뭔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이 시기를 통과하는 적절한 마음가짐이 있을 것 같다. 꼭 방법을 찾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책을 한 권 잡아서 읽기 시작했다. <기다림이 평화로울 때>. 원제는 <Conquering Infertility>. 난임 여성의 몸과 마음 연구의 권위자인 앨리스 D. 도마의 책으로 16년 동안 수천 명의 난임 환자들과 함께 한 임상 작업에 근거한 책이다. 2002년에 나온 책이지만 2022년의 나에게 이렇게 도움이 될 수가 있나 싶다. 일단, 요즘 우울해지는 나를 보며 내가 드디어 정상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했는데, 책에 따르면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감정이며 지극히 정상이라고 한다.
인터넷 카페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믿거나 말거나 글만 보다가 전문가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알려주는 모든 문장에서 위로를 받았다. 앨리스 박사는 지난 몇십 년간 의학적 치료방법의 발전은 눈부셨지만 그에 상응하는 심리적 고찰과 치료는 거의 제자리걸음이란 것을 인지하고 이 부분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책의 서문에 이 책의 목표가 나오는데 서문부터 벌써 치유받은 느낌이다.
이 책의 목표는 아이를 갖는 것이 아니다. 난임 여성에게 가장 끔찍한 것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의 목표는 난임 여성에게 예전처럼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그들은 임신을 계획하는 것은 물론이고 감정을 조절할 수도 없고, 심지어는 많은 경우 남편과 언제 잠자리를 가질지조차도 통제할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은 조각난 느낌이며 직장생활은 휘청거리고 인간관계도 취약해졌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심리적 건강에 타격을 가한 난임 때문이었다.
그동안 내 심리적 면역력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평소와 다른 점만을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고작 이런 것에 나약 해질 것이냐’하면서 바보같이. 이 바닥이 원래 이렇다는 것을 안 것만으로 마음이 한결 괜찮아졌다.
남편도 이 책을 킨들로 사서 함께 읽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읽은 책이 되었다.) 몇 가지 실제 케이스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남편도 깊게 위로를 받았다. 여러 면에서 난임부부는 정서적으로 고립되게 되는데 비슷한 처지의 이야기를 보고 위안을 얻은 것이다. 특히 남편이 크게 공감했던 포인트는 아래 브렌다라는 분의 남편의 마음이었다.
“임신하기까지는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저는 무기력하고 의기소침했습니다. 남편 역시 우울해하는 제 모습을 보는 게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항상 무언가를 사주고 무엇이든 해주려고 노력했지만 어떤 것도 제 기분을 바꿀 수 없었기에 절망감을 느꼈을 겁니다.
당분간은 이 책에 나온 많은 조언과 추천해 준 이완 방법에 기대 보려고 한다. 제발 내가 무너지고 도미노처럼 남편이 덩달아 무너지는 이 상황에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 아주 조금이나마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고 싶다.
일기(22-01-15): 한수희 작가님의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를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릿속 감정들이 주인공인 레전더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의 한 장면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었다.
어느덧 사춘기 초입에 접어든 라일리는 정든 고향을 떠나 대도시 시카고로 전학을 간다. 집도 학교도 거리도 라일리에게는 모두 낯설기만 하다.
라일리의 감정은 점점 ‘슬픔’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만다. ‘기쁨’은 ‘슬픔’을 저지하며 라일리의 유쾌하고 장난기 넘치고 낙천적인 성격을 되찾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도 ‘슬픔’에게 주도권을 넘겨주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아는 나는 유치원에 갈 적부터 좀 수줍긴 해도, 낙천적이고, 자주 웃고(가끔 너무 웃고) 친구들을 무척 좋아한다. 굳이 따지자면 '기쁨'의 지분이 많은 사람에 속했다. 삶의 여러 어두운 골목을 지나오면서도 이 정도로 의기소침한 적은 없었다. 이상한 오기가 올라왔다. 이렇게 나를 잃을 수는 없어.
나름의 노력: 이제는 팬이 되어버린 사적인 서점의 정지혜 님의 책이 바로 떠올랐다.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좋아하는 것을 맘껏 하는 일을 했지만 번아웃이 온 지혜님을 도 구해준 것도 좋아하는 것(덕질)이었다.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더 빠져서 나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활동을 그동안 참 하지 않았다. 소라게처럼 나만 있는 공간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한 번에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조금 더 세상 밖으로 나가서 좋아하는 사람들도 더 자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나름대로 도와주고 있다. 내가 '우울'에게 머리채를 잡혀서 나락으로 떨어진 지난 금요일에 남편이 메모를 하나 쓰윽 방으로 넣었다. 자주 원수 같은 남편이지만, 남편이 없었다면 이 끝을 기약할 수 없는 모래바람 속에서 벌써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일기(22-01-18): 호르몬의 영향인지 뭔지 가족들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아빠와 짧은 통화를 하는데 소리 지르는 내 모습을 보면서 너는 누구냐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리 상담이라고 검색창에 쳤다. 어색했다. <기다림이 평화로울 때> 책에서도 앨리스 박사님이 심리상담을 추천했으니 한 번 해보자 싶었다. (연구결과나 권위에 약한 나)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전화를 하고 예약을 잡았다. 예약한 것뿐인데 벌써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일기(22-01-20): 인생 첫 심리상담에 다녀왔다. 큰 도움이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수확이 있는데, 심리상담 선생님의 눈으로 내가 나를 보는 시각을 얻었다는 것. 대화를 하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각도가 매우 객관적이었다. 나에 대해 코멘트를 하시는데 딴 사람 이야기 같았다. 내가 나를 너무 가까이에서 보고 있어서 내 문제가 안 보이는 걸까’ 생각이 스쳤다.
나름의 노력: 내 인생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보는 좋은 방법이 뭘까 한참을 고민했다. 잘 모르겠지만 일단 노트에 객관적인 내 지표와 상황을 써봤다. 최대한 병원 차트같이 썼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 ‘차트’를 보고 이 차트의 주인공이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떤 조언을 하겠는가를 생각해 봤다. 너무 자명해서 깜짝 놀랐다. 이 여자의 가장 큰 리스크는 모든 과정을 너무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이라는 것이 딱 보였다. 이런 바보를 봤나.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에서 한수희 작가님이 영화 <안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안경>을 다시 보았을 때는 이 장면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해변에서 사쿠라 할머니가 팥을 삶고 있다. 타에코는 가만히 서서 조용히 팥 냄비를 지켜만 보는 사쿠라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본다. 그때 사쿠라가 말한다.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가스레인지 불을 끈 후 덧붙인다.
"초초해하지 않으면 언젠간 반드시"
만성 조급증을 가진 나에게 이런 마음은 아예 심장과 뇌에 인쇄를 하고 싶을 정도로 필요한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타투를 하는 걸까?) 나 스스로를 구하고 내 결혼생활을 구하기 위해 조급해지지 말자. 제발.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생각해야겠다. 또 조급해지지 않기 위해 조급해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