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문화 차이 영역

남편이라는 과목의 오답노트

by 카후나

“이 노래 알지?”라며 중, 고등학교 때 감수성을 만들어 주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커플이 배가 꼬이게 부럽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감정을 서양인 남편과는 나누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그렇게 한탄스러울 수가 없다. 최애 무한도전을 주기적으로 꺼내 보며 하루의 위로를 받거나, 신해철 1, 2집 가사를 통째로 외워 가끔 밤에 흥얼거리는 나의 감수성을 남편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래도 이렇게 다르다는 것만 꼬집어서 서로에게 눈총을 쏘게 되는 그런 매일을 사는 것은 아니다. 평소엔 같은 점이 많아서 다른 나라 사람이라는 것도 잊고산다. 어떤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이번 선거에는 누굴 뽑고 싶은지,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인지 같은 큰 마음은 정말 비슷한 모양이다. 단지 그 안의 구성이 조금 다를뿐. 다르다고 해봤자 사실 싱거운 것들 뿐이지만.


#1. 부모님과의 대화에서


남편은 부모님과 같이 안 산지는 20년도 넘었고, 10년 전부터는 아예 고향 대륙을 벗어나 해외근무를 하고 있어서, 1년에 한 번씩만 얼굴을 보여주는 해외동포 같은 아들이다. 이런 40대 중반의 아들이 적어도 이틀에 한 번은 - 그것도 한 시간이 넘게 - 부모님과 페이스타임(영상통화)을 한다. 뭘 그렇게 열성적으로 이야기했냐고 물어보면, 별 이야기 안 한다고 한다. 별 주제 없이 사는 이야기에 대해 한 시간 이상 수다가 가능하다는 것은…


‘부모님이랑 엄청 친하구나.’ 저렇게 할 이야기가 많을 만큼 부모님과 친할 수 있구나. 스타트렉 외계 종족을 보는 듯 신기하다. 내가 아는 부모, 자녀 관계가 생각나며 비교하는 시선이 고개를 들었다. 나부터도 부모님과는 용건만 간단히. 특히 아빠와는 3분 이상 전화통화를 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남동생은 부모님이 전화하셔도 받는 일이 거의 없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어제 전화하셨던데요. 무슨 일이에요?”라고 전화 온다고 하던데. 이런 관계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남편의 수다는 놀라웠다.


대화의 기록(22-01-05): 오늘 저녁에 남편은 유난히 시아버지와 통화를 오래 했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아 궁금해서 오늘 대화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싱겁게도 정말 별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밥은 뭘 먹었는지, 날씨가 어떤지, 뉴스에 나온 코로나 이야기 같은 작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이어서 우리 ‘부부 이야기’도 그 사소한 이야기에 포함된다고?! 그렇게 사적이고 은밀한 우리의 이야기를? 정말? 그런 이야기를 도대체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았더니, 너무 자연스러운 사는 이야기 아니냐고 한다. 할 말을 잃었다. 그 말도 사실이지만, 충격이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말은 안 통하지만 그래도 그간 잔잔한 교감을 쌓아왔는데, 다음 통화에 시부모님 어떻게 얼굴을 봐야 할지 막막해졌다.


이후 나의 대처: 이 집 가풍이 좀 특이한 건 아닌가 싶어서 일단 주변 친구들을 토대로 리서치를 해보았다. 예상 밖의 답이 돌아왔다. 독일, 스위스 친구들은 부모님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꽤 스스럼없이 한다고. (그러나, 여자 형제들과는 절대 안 한다고. 너무 어색하다고.) 반면 미국, 호주 친구들은 부모님과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고 할 생각도 못해봤다고 했다. 표본이 4명뿐이라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 그 문화권에서는 보통의 ‘정상적인’ 대화라니 진심으로 놀랐다.


사실, 대처할 방법이 없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이게 문화 차이구나. 우리 부부 안에도 말로만 듣던 컬처쇼크가 있구나 하고, 처음으로 우리의 문화적 뿌리의 다름을 인지하게 되었다.


#2. 식탁에서


대학 선배가 해준 이야기이다. (이 선배는 국제결혼 분야에서도 선배.) 언니가 막 아기를 낳고 집에서 산후조리를 시작하는데 자상한 미국인 남편이 아주 자랑스럽게 인도네시아 볶음밥인 나시고랭을 만들어, “정말 맛있겠지?”하며 가지고 왔단다. 미역국을 한 사발 먹어야 살 것 같았던 언니는 울면서 상을 엎었다고 했다.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고. 그러면서 먹고 싶은 것이 달라서 싸우는 국제 커플이 많다고 일러주었다.


이런 입맛 충돌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오겠지 생각은 하고 있다. 다행히도 아직은 이럴 다할 충돌은 없다. 남편이 나보다 더 ‘한식파’라 아직까지는 무난한 식탁 생활 중이다.

그럼에도 아침은 각자 먹는다. 남편은 도저히 아침에는 밥을 먹기가 부담스럽다며 오트밀을 먹는다.

그런데… 예상 범위 밖에서 다름을 발견했다. 같이 살기 시작하고 2-3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대화의 기록(21-04-08):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앉자마자 국 먼저 한 그릇 딱 비우고 다른 것을 먹는 남편을 보았다. 국을 저렇게 좋아했나? 하고 고개가 갸우뚱했다. 인지를 하고 나서 3일 즈음 살펴보았는데 항상 같은 순서였다. 국 먼저.

짜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나: 왜 국만 먼저 먹는 거야?

잭: 내가 그랬어? 몰랐네.

나: 응. 3일 연속으로 그랬어.

잭: 모르겠어. 국물 먼저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프를 먼저 먹는 것처럼?


아, 한식을 서양식처럼 코스로 먹는 것이구나.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남편은 무의식적으로 서양식을 먹는 순서로 한국식을 먹고 있었다. 남편에게 일부러 그렇게 하는지 물었더니, 정작 본인은 전혀 몰랐단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결혼 전 밥을 300번 이상 같이 먹었을 텐데 이 점은 전혀 알지 못했다. 결혼해서 살면서 바로 코 앞에서 봐야지 보이는 것이 있다더니. 신기했다.


나름의 노력: 이 점을 알고부터는 국을 더 먹겠냐고 묻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돼서 볼 때마다 신기할 뿐이다. 나도 나만의 습관이 있어서 이렇게 밥을 먹는 사람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제는 남편의 이 습관을 가족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장모님은 밥상에 앉자마자 김치찌개를 원샷하는 외국인 사위를 보면서 “한 그릇 더 줄까?”를 멈출 수가 없다. 남편도 그런 장모님에게 “아니요”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남편의 허리가 점점 두툼해지고 있다. 이게 다 끼니때마다 국을 두 그릇씩 먹게 되는 그 습관 때문인 것만 같다.


문화 차이라고 제목에 쓰고 나머지를 적고 보니 참 사소하다. 사실 결혼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걱정을 안 했다면 거짓이다. 말로만 듣던 국제결혼을 해서 문화 충격이 있지 않을까 무서운 마음이 있었다. 남편이 타국에서 살면서 문화 차이 때문에, 입맛 차이 때문에 뮌헨이 너무 그리워지면 어쪄지 걱정되었다. 나무꾼이 선녀의 옷을 숨기는 것처럼 나도 뭔가를 해야 하나 이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단골 분식집에서 순대와 내장을 먹는 남편의 한국 적응 정도를 보면서, 그리고 우리가 공유하는 사람과 경험과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우리의 사고가 너무 비슷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평생 애정 어린 시선으로 자연을 관찰해 온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 교수님은 수필집 <다르면 다를수록> 서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국립생태원에서 초대 원장으로 일하게 되셨는데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고 신설 기관이여서 운영하려니 어려움이 많으셨다고 한다.

그 무렵 내가 은근히 질투하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김정은이었다. 참으로 균일한 집단을 통치하고 있는 아주 운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럽진 않았다. 그런 일사불란한 집단은 절대로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창의성의 꽃은 혼돈의 풀밭에서 피어난다. 다양성이 창의성을 낳는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하고 다름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려주시면서, 최재천 교수님은 이렇게 서문을 마무리하셨다.

다르면 다를수록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특별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요즘엔 장모님 댁에 가도 설거지를 도와주기는커녕 아빠처럼 소파에 늘어져서 티브이를 보는 남편을 보면서, 조금씩 더 능청스러운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를 보면서 이상한 마음이 생긴다.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고 국을 먼저 먹어도 좋으니, 한국문화과 나에게 너무 적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서로가 다르면 다를수록 우리가 더욱 아름답고 특별하고 재미있을테니까. 그리고 혼돈의 세월 이후의 진화된 우리의 모습이 너무도 궁금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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