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라는 과목의 오답노트
남편과 일상의 평화를 찾기 위해 오답노트를 쓰기 시작하고 신통방통하게 싸우는 횟수가 줄었다. 주로 싸우는 영역은 제한적이고 그 영역에서는 어느 정도 노력을 하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6개월 전만 해도 파동처럼 매우 규칙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싸우다 요즘은 안 싸우니, 이건 또 제대로 돌아가는 것인가 하는 혼란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역시... 이렇게 주책맞은 생각을 하면 안 되지. 나는 이번 주 또 새로운 지옥을 경험했다.
난임일기(22-02-23): 결전의 날이다. 열심히 키운 난자를 채취하는 떨리는 날. 초조하고 경직된 나를 잘 구슬려서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7번째인데 뭐 이 정도야 하는 의연한 마음을 씌워서 스스로도 눈치 못 채게 숨기고. 개수는 적지만 다행히 채취는 성공이다. 휴. 그런데 나는 왜 이리 마취에서 이렇게 빨리 깨는지 매번 앞에 들어간 분보다도 30분 이상 먼저 깨서 한참을 침대에 누워서 있게 된다. 또 자연스럽게 수술실 상황이 들리고 시각적 정보가 없는 오만가지 소리에 더욱 불안해진다. 아.. 몇 개나 채취가 되었을까, 앞으로는 결과가 어떨까 하는 불안감이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들불처럼 일어나서 머릿속에 아예 산불을 냈다.
한 시간 즈음 지났을까 다정한 눈을 가진 간호사님이 와서 결과를 알려주었다. 목소리도 말투도 진심으로 다정해서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채취는 잘 되었고요. 남편분 결과가 좋지 않아서 결과를 따로 들으셔야 할 것 같아요."
고생스러운 시간을 마치고 마취약과 불안으로 얇디 얇아진 마음에 이런 소식이 던져지니, 감당이 안되었다. 무슨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바로 회복실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문 앞에 앉아있는 남편에게 무조건 화를 내버렸다. 그동안 남편이 잘못한 것들을 쏟아내며 마구 몰아붙였다. 급기야 집에 가는 도중 더 이상 같이 있기가 어려워서, 차에서 내려서 혼자 걸었다.
일기(22-02-24): 오늘 아침 산책은 혼자 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내려오는 길에 기다리고 있을게.' 혼자 걷고 싶다고 문자를 썼다가 지웠다.
다행히 나에게는 막 다운로드한 오디오북이 있었다. 좋아하는 책을 들으면서 걸으니 기분이 조금씩 나아졌다. 유난히 노래하는 새가 많고 햇살이 좋다. 이런 날이라면 기분 좋은 아침산책만으로도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기대대로 뒷산을 오르며 기분도 함께 올라왔다. 정상에 도착해서는 내려가서 만날 남편의 모습에 기분이 내려앉았다. 그래도 오디오북 손을 꼭 잡고 평화로운 기분을 유지하며 내려왔다.
저 멀리 남편이 보인다. 부부의 징그러움인지 어깨 실루엣만 보고도 알겠다. 기다리다가 올라왔다보다. 좋은 산책의 기분이 털썩 무너졌다. 내려오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곧 미팅에 갔다가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싫어서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저녁에 들어가 보니 남편도 종일 밖에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다른 게 지옥이 아니구나. 같이 사는 사람이 꼴 보기 싫어진다는 것은 지옥에 사는 것이구나. 그렇게 좋아서 같이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갑자기 꼴도 보기 싫은 걸까 스스로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감정은 확실했다.
나름의 노력: 일단 싸운 이야기니깐 또 A6 카드에 싸운 이야기를 적었다. 역시 적으면서 상황도 마음도 조금 정리가 되었다. 적으며 느낀 것은 이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인 나의 지랄이었다. 나는 우리가 싸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일방적인 행동이었구나 하고 무척 뜨끔했다. 생각해보니 남편은 이 상황이 무척 억울할 것 같았다. 나는 내 마음 상함만 생각하고 앞, 뒤, 옆 모두 안 가리고 남편에게 화만 내고 있었다. 너무나 어린애 같았다. 상황은 보이지 않고 나만 보였다.
며칠 두고 내 마음을 뜯어보니, 내가 몸과 마음이 힘들다고 남편에게 부리는 응석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해외에 있을 때 난임치료를 혼자 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어른스럽게 대처했던 것 같다. 그때 일기를 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꿋꿋하게 잘 지냈다. 그러면서 <어른스러운 산책>에서 한수희 작가님이 이야기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결혼한 지 11년이 되었다. 이제 나는 혼자 하는 그 모든 일에 무능해져 버렸다.
못 박을 일이 있으면 남편을 부른다. 무거운 짐은 남편이 들어준다. 집주인과의 싸움도 남편에게 맡긴다. 병원에 갈 때도 남편이 데려다준다.
비가 오면 남편이 우산을 들고 나올 것이다.
언젠가 차를 몰고 가다가 접촉 사고를 낸 적이 있는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남편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결국 남편과 보험 회사 직원이 통화를 한 후에야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어찌나 울적했던지.
이렇게 나는 무능력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수희 작가님은 이어서 박경리, 박완서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징징대고 싶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이런 대단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고 했다. 그리고 언제나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응석받이가 아주 쉽게 돼버린다고 조언을 해주었다.
같이 살기 시작하고 무거운 것도 들어주고 정서적으로도 의지할 사람이 같은 집에 산다는 것이 참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그 안심을 너무 남편에게 찾았던 모양이다. 응석받이가 되어가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에 나를 피해 한쪽에서 자고 있는 남편 옆에 누워서 안아주었다.
어제까지 꼴도 보기 싫던 남편이 오늘은 그렇지가 않다. 이런 게 결혼 생활인 것 같지만 그래도 참 스스로 너무 변덕이다 싶다. 어제까지는 남편을 쳐다보지도 않고 이야기도 안 하다가 오늘은 농담을 주고받다니. 지옥을 스스로 만들고 들어가서 며칠을 살았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나이만 먹지 나아지는 인간이 아니라 한탄스럽다.
그래도 호르몬 주사를 맞고 난자 채취를 한 이후의 내 상황도 조금 생각을 해주자. 특히 지난 3번의 채취 이후 나는 심리적으로 급격히 무너졌었다. 모두는 아니라도 일부 미성숙한 감정적 대응은 과도한 호르몬 변화에 책임을 물어야겠다. 그리고 남편에게 오늘 아침 두 가지를 부탁했다. 채취 당일에는 내가 마음이 많이 약해지니 좀 챙겨달라. 극도로 응석 부리는 마음이 커지니, 애처럼 굴어도 조금만 이해를 구한다. 두 번째는 채취 이후 일주일간은 매우 불안해지니 서로 조금만 조심하자. 그냥 앞으로 조심하자고 약속한 것뿐인데도 나 자신이 한탄스러웠던 마음이 가시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피어났다.
하지만 곧 또 무너지는 날이 찾아오겠지. 그때는 세상에게, 남편에게 응석을 부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여유를 줄 수 있기를 나에게 기대해볼 뿐이다. 응석부리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