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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May 24. 2023

4월의 밑줄(3/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4월 17일 월요일


위로는 단지 뜨거운 인간애와 따뜻한 제스처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나를 위로할 수는 없다. 더 과감히 말하자면,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38p


위로는 어렵다. 작가의 말처럼 뜨거운 마음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몰랐는데 이 문장을 읽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겪는 이만 내가 위로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나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위로보다는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위로를 받으면 불쌍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여겼다. 그때 위로가 이해라는 것을 알았으면 나에게서 나를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신형철 작가가 이야기한 나에게서 나를 지키기 위한 공부가 이런 것인가 보다. 그 시절 타인에게 받는 위로는 거부했어도,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는 열심히였다. 무의식적으로 내가 택한 것은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들어있는 책이었다. 책 속에서 그들은 나처럼 울고 있었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사람들을 경계했고, 감정조절을 못해 화를 냈으며, 주변 사람들의 즐거움을 보는 것을 괴로워했다. 그런 비슷한 마음들을 만나고 슬픔과 화가 아주 조금씩 침식되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통과하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이해(인식)하며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구나. 이 문장을 읽고 이제야 알게 된다.


04월 18일 화요일

'폭력이란? 어떤 사람/사건의 진실에 최대한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모든 태도. 단편적인 정보로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면서 즐거워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나는 느낀다.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93p


아빠의 전화를 몇 주째 피했다. 받으면 기분이 확 나빠져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빠는 참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참아야 한다. 당연히 말허리를 자르는 것은 기본이고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본인이 무언가 필요할 때만 명령으로 전화를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화를 피하게 된다. 죄책감이 들긴 한다. 아빤데... 내가 자녀가 있는데 내 전화를 피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다. 하지만, 나도 참는 것은 잘못해서 어차피 싸울 거니 차라리 안 받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나는 아빠를 참 많이 닮았다. 같이 일할 때 첫 1년 동안은 매일 전쟁이었지만(매일 내일 그만둬야지 생각했어요. 왜냐? 사무실에서 소리 지르면서 싸웠거든요.), 일단 팀워크가 생기니 또 비슷한 사람끼리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통하는 면 때문에 업무 효율이 최최고였다. 그때 더 확실히 느꼈다. 나는 미니 아빠구나.

그러니까 나도 가끔 가까운 사람에게 신형철 작가가 이야기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조금 넓은 정의를 내린 이 문장을 읽고 내가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는 데서 만족한 수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일단 남편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는다. 친구들의 상황을 제멋대로 결론 낸 적이 많다. 초면에 이 사람은 이럴 거다 판단하고 더 이상 다가가거나 다가오지 못하게 벽을 친다. 내 마음도 섬세하게 보려는 노력을 포기한 적도 많다. 나는 말도 직설적이라 이런 생각들이 가감 없이 입 밖으로 나간다. 내 말에 상처받은 사람이 많을 거다. 내 거친 판단에 억울한 사람도 많을 거다. 부슬부슬 비 오는 아침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가한 거친 행동과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더 섬세해지려는 노력을 하자고 다짐해 본다.

PS: 아.. 이것은 작가가 이야기한 나에게서 타인을 지키기 위한 공부로구나.


04월 19일 수요일


가끔 그는 관객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너무 오래 단둘이 있지 않기 위해서 무대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때 그는 자신의 고통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88p


가수 이소라 이야기다. 신형철 작가의 문장이 비유가 아닌 사실이라고 해도 믿겠다. 나도 그런 적이 많아서일까. 그때마다 그녀가 노래 부르는 것 같은 그런 얼굴로 현관문을 나서 타인을 만나곤 했다.(만나서는 얇은 가면을 쓰고 웃었는데, 분명 티가 났겠지?) 혼자 있는 것. 고통/슬픔의 순간에는 무척 위험한 일이다. 처음 몇 번은 혼자 있는 것이 편하고 좋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우울한 자신과 너무 오래 단둘이 있게 되니 비이성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생각이 계속된다. 악몽에서 아무리 달리고 싶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내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꿈쩍도 안 한다.

함께 난임병원에 다니며 서로 의지했던 가까운 두 사람이 지금 무척 힘든 상황이다. 둘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그녀들이 자기 자신과 단 둘이 있지 않게 그녀들을 계속 그녀들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산책이라도 하면 확실히 효과가 있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생각의 해류가 변하고 긍정적인 결론이 있다는 것을 아주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실감은 전혀 안되지만, 거의 우리 은하 곁에 안드로메다 은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정도의 실감이지만 그게 어디냐!?)

웬만해선 멘탈이 꺾이지 않는 우리의 기둥, 우리의 언니 S님이 내일 만날 수 있냐고 연락을 해왔다.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정말 힘들구나 알아챘다. 그녀가 자신과 단둘이 있기 싫으니 도와달라는 말을 한다는 것을 해석할 수 있었다. 내가 당장 내일 만날 수 없는 형편이라 무척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장이 더 큰 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었는지도 모르겠다.


04월 19일 수요일  


그리하여 여행이 끝날 때마다 나는 같은 사람인 채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_ 한수희,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계획도 준비도 없이 갑자기 후다닥 결정해서 여행 왔습니다. 당일까지 못 갈지도 모르는 일이 있어서 그런지 와서도 실감을 못하고 있어요. (왜 갑자기 나는 여기에 있는가?) 내 영혼이 미쳐 따라오기 전에 일이 발생해 버려서 영혼은 뒤늦게 도착하는 기분이랄까요? 당장 내일 미팅도 두 개나 있으니 마음은 아직 서울이라 그래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두 줌으로 하니 이렇게 여행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네요.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20대의 저에게 이런 여행을 가게 될 거라고 했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튼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곳에 있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이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뭐라도 붙잡을 것이 필요해요. 역시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어 매주는 것은 문장이죠. 구원을 찾아 에버노트 독서 정리 폴더를 열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이라고 검색하고 읽다가... 역시 마음을 파고들어 와서 떡하니 자리를 잡는 것은 갓수희 작가님의 문장. ‘여행이 끝날 때마다 나는 같은 사람인 채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문장을 읽고 생각해 보니 정말 모든 여행에서 저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었네요. 이 문장에 마음을 묶고 효주 님의 문장처럼 깔깔거리는 경험을 하며 지내다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가겠습니다.


04월 20일 목요일


다시없을 지금. 여기. 다시없을 내가 있다.

_ 김민철, <모든 요일의 여행>


갑자기 와서 어색하지만, 일단 여행을 왔으니 잘 놀아보자 다짐을 했습니다. 습관은 여행을 와도 눈치 없이 따라와서 가지고 나갈 문장을 찾아 에버노트를 뒤적였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을 적고 가지고 나가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효과가 있었나 봅니다. 다시없을 지금. 여기. 다시없을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계획을 더 치밀하게 세우고 시간을 짜내서 하루를 촘촘하게 보냈어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예약한 소수만 받는 국립공원 웹사이트에서 티켓구매를 하고(아싸 성공! 3분 컷이었는데), 아침 독서도 하고, 버스 타고 해안가 투어 다녀와서, 중간에 줌 미팅 하나 하고, 바로 나가서 해변에서 수영을 좀 더 한 다음에 수영장에 또 들어가서 수영했어요. 저녁 먹고 근처 로컬들이 가는 슈퍼마켓에 가서 이 동네 사람들은 뭐 먹고사나 궁금해서 종류별로 요구르트며 견과류, 그래놀라, 각종 과자들, 소스류들을 구경했어요. 이제 잘 시간인데, 저 침대에 누울 힘도 없어서 의자에 앉아서 쓰고 있습니다. 아하아...

이렇게 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갑자기 아침에 함께 읽었던 같은 책의 문장이 생각나네요.

‘여행까지도 잘하도록 독촉하는, 실수 하나 없도록 감시하는, ’지금'에 몰입하기보다는 '방금 전-지금-그다음-이라는 거대한 먹이사슬 안에 살도록 나를 길들인, 여기 주저앉아도 되는데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데 마치 그러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나를 계속 채찍질한 나의 슈퍼에고.’

저도 오늘 김민철 작가님과 비슷한 슈퍼에고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오늘을 분명 잘 즐겨보자고 시작한 하루였는데, 무슨 프로젝트 하나 마친 것 같은 피로감이 들어요. 노는 것도 못하면 뭘 잘하나 싶네요. 노는 것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아요.


04월 21일 금요일


행복은 연결망 안에 놓여있는 듯하다.

_ 정세랑,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어젯밤 일기를 쓰는데 여행 중 내가 좋았던 것도 쓰지만 남편이 환하게 웃고 있던 순간도 쓰고 있었다. 이곳이 보고 싶었던 것인지 이곳에서 웃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또 누가 웃는 풍경을 보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정세랑 작가의 말처럼 내 행복은 분명 나와 연결된 것들 사이에 놓여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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