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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May 24. 2023

4월의 밑줄(2/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4월 10일 월요일

그런 건 없다. 큰 행복이란 것. 행복에게 덩치가 있다면 분명 아주 작을 것이다. 눈 밝은 사람만 찾을 수 있을 만큼.

_ 박연준, <모월모일>, 104p


세심하지 못한 편입니다. 큰 것들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약점이라고 생각하고 고쳐보려고 해도 덩치가 작은 행복들이 잡기 전에 술술 사라져 버려요. 어떻게 하면 지나가는 덩치가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약점을 말했으니, 장점을 이야기하자면: 전 고집이 없습니다. 내가 잘 못하는 게 있으면 납작 엎드려 배우고 싶습니다 하고 절이라도 합니다. 그러니 메이트 님들 도와주세요. 어떻게 작은 행복을 알아보는 눈을 밝힐 수 있나요?


04월 11일 화요일

”시간을 낭비하는 가장 쓸데없는 일이 뭐라고 생각하니? “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일”

_ 찰리 맥커시,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효주 님이 소개해주신 그림책 <핑>을 보고 그림책이 읽고 싶다는 마음이 폭발해서 잡은 책입니다. 앞으로는 그림책을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씩은 읽으려고요. 에세이나 소설이 원투 쨉을 맞는 느낌이라면, 그림책은 펀치가 센 어퍼컷 한 대씩 맞는 느낌이에요. (결국 KO는 어퍼컷이던데..)

다른 동네 수영장에 등록한 지 딱 일주일 되었어요. 이제 슬슬 7시에 수영 오는 사람들이 익숙해집니다. 수영 스타일로 사람을 기억하게 되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에요. 수영장에서 대개 그렇듯, 옆 레인과 자주 대결 구도가 생깁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질 수 없지 하는 마음이 팔, 다리를 마구 돌리게 만듭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지만 7시 아침 수영 거의 유일한 여성 회원이므로 XX 염색체를 대표해서 없는 광배 근육을 더 당겨 봅니다. 그렇게 알레그로(빠르게)로 수영을 한 지 50분쯤 지나니 정신이 좀 없더군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고요. 종일 바쁘게 여기저기 쏘다니다 주의력이 방전되는 것처럼 멍했습니다.

근시가 심한 저는 안경만 벗으면 온전한 저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마법이 있으니, 잠시 물안경을 벗어놓고 머리 들고 개구리 수영으로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러니 나만의 안단테(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본연의 빠르기) 리듬으로 돌아왔습니다. 수영장에 혼자 있었다면 안단테도 아닌 아다지오(느리게)로 힘 없는 할머니 수영을 했을 겁니다. 다행히 타인들의 자극으로 좀 더 좋은 수영을 했지만, 너무 타인을 의식하다 보니 제 리듬을 잃었어요. 마음속 타인과 나의 비율에 대해 수영장을 나오며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문장이 더 마음에 남나 봅니다.


04월 12일 수요일


그것은 쌓이는 것이다. 페이스트리처럼 한 겹 한 겹, 견고하게 쌓이는 것이다.

_ 박연준, <모월모일>


작가는 피로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페이스트리처럼 쌓이는 피로라니 다정한 비유 같지만 피로가 조용히 침묵 속에 견고하게 한 겹씩 피로가 쌓이는 모양을 상상하니 울 것 같은 마음이 되버린다.

이 문장을 읽고 줄곳 쌓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한 일주일 정도 된 것 같다. (사진에 쌓이는 것들을 적어 보았어요. 혹시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그러다 요즘 왜 이리 불안도가 높지? 평화로움을 흠뻑 즐겨도 될 상황인데? 의 질문과 쌓이는 것은 무엇일까? 의 질문이 마음속에서 합체를 하더니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

3년 정도 매우 불안한 시기를 살아서 내 안의 평화가 쌓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평화를 실감하려면 더 평화가 쌓여야 하는 것은 아닐까... 눈발이 날리는 것만으로는 눈이 왔다는 것을 실감하기는 어려운 것처럼. 전쟁을 겪은 군인이 본국에 돌아가서도 당장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기는 어려운 것처럼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불안해해도 괜찮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직 평화가 쌓이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조용히 눈 오는 풍경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눈이 쌓인 모습도 볼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무엇이 쌓이고 있는지도 가끔 생각해 봐야겠다. 경험, 지식, 노화, 각질, 가고 싶은 여행지들, 뭐든. 쌓이는 것들은 조용할 테니 더 주의를 기울여 봐야겠다.


04월 13일 목요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작업을 자기 존재의 수준기로 사용하는 것이며 또한 계속 그렇게 사용해 나가는 것이다.

_ 무라카미 하루키, <먼 북소리>, 21p


며칠간 문장일기에 소홀했다. 병렬독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고 싶다. 재미있는 책을 읽기 위해 공부하는 책을 매일 50p씩 읽기로 선언했는데, 난 병렬독서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책도 양다리를 걸칠 순 없다. 지고지순 이 순간 최고의 책은 너야' 의 마음이랄까요? 병렬독서 하시는 분들 모두 존경합니다.) 경영서를 읽고 있는데 그곳에서는 마음이 포개지는 문장이 정말 단 한 줄, 단 한 단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느낄만한 내용도 없으니 빠르게 읽어버려 더 남는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1월부터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쓰던 문장일기와 며칠 멀어져서인지 속이 불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 며칠 영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일단 읽는 즐거움을 챙겨보자 싶어 책장 앞에서 산책하듯 이 책 저 책 들고 나다가 <먼 북소리>에 도착했다. 그리고 머리말 이 문장에서 한 동안 넘어가지 못하고 문장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글을 쓰는 것을 내 존재의 수준기로 사용하는 것이라니! (수준기의 사전적 정의: 어떤 평면이 수평한가를 조사하는 기구. 유리관에 알코올을 넣고 기포가 생기도록 하여 움직이는데, 측정하는 면이 수평이면 그 기포가 가운데로 온다. 출처: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정말 맞지 않은가! 글쓰기를 하면 여지없이 내가 몰랐던 기울어진 마음이나, 연속적인 삶과 존재의 한 단면을 잘라 내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수준기를 언제든 어디서든 계속 꺼내 내 존재의 0점을 확인하자고 다시 다짐하는 봄밤이다.


04월 14일 금요일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이지만, 그렇다고 생명을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니, 줄 수 있다. 생명은 ‘일생’ 이라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시간이라는 형태로 분할 지불이 가능하다.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6p


독서의 도파민이 궁금하다. 이유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중독적일까? 읽는 생활의 질이 하루의 질을 결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해답 중 일부는 은유 작가님의 이 문장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안다는 것보다 느낀다는 것에 굶주린 존재인지 모른다.‘ <글쓰기의 최전선> 경영서적을 읽을 때 분비되는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도파민보다 내 뇌는 깊은 감정의 광맥을 건드리는 책을 만났을 대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분출한다.

오늘 아침에는 신형철 작가의 책을 읽었다. 정확히 첫 두 페이지에 밑줄을 다 쳤다. 밑줄이 끝날 때쯤 눈물이 터져 버렸다. 당황스럽게도 그의 책 <인생의 역사>도 머리말을 다 읽었을 때 울고 있었다. 이렇게 들으면 매번 책만 읽으면 울어버리는 감정 과잉자인가 싶지만, 태어나 책을 읽으며 운 경험은 5번이 안되고, 머리말에서 운 것은 그의 이 두 책이 처음이다. 그는 100%의 확률로 나에게 전속력으로 다가와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다.

도대체 왜? 나는 그에게 이토록 쉬운 독자가 돼버리는 것일까? 아직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 두 책에서 내가 울었던 부분을 보면: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슬픔과 그리움에 대한 문장이었다. 그는 정확하고 대체 불가능한 문장으로 그의 마음을 나에게 이식했다. 그런데 이뿐이 아니다. 그의 문장은 마음의 저 깊은 본질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 문장과 생각의 아름다움과 정곡 찌름(혹은 정곡 찔림)으로 마음의 방어선이 뚫려버리는 것이다.

아직 책이 400 페이지나 남았다. 한 동안 내 읽는 생활과 하루의 질의 예보는 매우 맑음이다. 느낀다는 것에 굶주린 내 마음에 건강한 밥상이 일주일치나 생겼다.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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