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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May 24. 2023

4월의 밑줄(1/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4월 03일 월요일

운동은 수련이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지기 위해,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 그런 게 좋다. 이제 그런 것만 믿는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전.

_ 박연준, <모월모일>, 71p


마음이 포개지는 문장이 가득한 책이다. 얼마 남지 않아서 울고 싶은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넘기게 된다. 그러면서 마음은 또 철없이 내달려서 다음 문장을 만나고 싶다. 올봄에는 고르는 책마다 마음 한복판으로 달려오는데, 책이 나에게 오는 건지 내가 책에게 뛰어가 안아버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근사한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작가는 매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수련이 좋다고, 이제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전만 믿는다고 했다. ’호락호락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더니 일이나 사람이 만만하여 다루기가 쉽다는 뜻이란다. 나..만만한 것만 찾고 있었구나... 다정한 줄 알았던 박연준 작가님에게 또 뺨을 한 대 맞았다.

벚꽃 눈이 내리는 어제 개발 프로젝트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 새로 시작하는 일이 만만하지 않고 다루기 어려운 주제라고 무척 쫄아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이용할까,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어떻게 하면 용기가 날까 이런 걱정이 마음속에 한가득이다. 나에게 이 일은 오늘부터 발레를 배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것 같이 아득하고 무섭게 느껴지는 일이다. 어제 목련나무 앞에서 책을 읽다가 이 문장에 서서 골몰해졌다. 왜 이 문장이 눈에 들어왔는지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 아침에 다시 보고 알게 된다. 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발전을 소망하고 있구나. 당장 무대에 오를 수는 없지만, 발레를 배우는 심정으로 목을 빼고 허리를 세우는 동작을 매일 반복하는 것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몸을 둥글게 말고 겁내고 있는 나를 잘 타일러 봐야겠다. 매일 조금씩만 연습하면 돼.


04월 05일 수요일  

나는 시에 ‘갇히는 것 중 제일은 빗속이야’ 라고 쓴 적이 있다. 그 마음은 지금도 오롯해서, 이따금 비 내리는 산장에 머무는 상상을 한다. 비에 발이 묶여 한 사흘 오도 가도 못하는 일을 꿈꾼다.

_ 박연준, <모월모일>, 141p


달달한 비가 내리는 식목일이네요. 식목일에는 햇볕이 쨍쨍한 것보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나무가 가장 기다리는 건 시원하게 들이켜고 싶은 물이었을 테니 나무가 선물 받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게 되네요.

며칠간 서울 어딜 가나 벚꽃이 만개해서 사진첩이 터져라 꽃 사진을 찍었어요. 그런데 뭔가 서늘해지는 기분이 들어 왜 그러나 싶었는데, 왜 꿀벌이 보이지 않지? 벚꽃 나들이 갈 때마다 웽~하던 소리가 들렸는데, 올해는 그저 고요했어요. 잠시 뉴스 검색을 해보니 따뜻해진 겨울이 원인이래요. 대기는 따뜻해져서 꽃들은 지금이야 하고 나오는데, 대기보다 늦게 온도가 오르는 땅속에 있는 벌들은 아직도 겨울인 줄 알고 자고 있다네요. (일어나 꽃 다 진다. 아이고) 꿀벌들 이제 나가서 밥 먹어야지 했는데 밥상을 다 치우고 없애버린 느낌일 것 같아요. 이를 어째요.

촉촉한 봄비에 마음도 보드라워져 어제 찍은 매화 사진을 보며 웃고 있다가, 곧 깨어날 꿀벌들이 배고플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울상이 돼버렸습니다.


04월 06일 목요일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엄살이 많은 사람과 아예 없는 사람. 정말이다. 엄살을 어중간하데 부리는 사람은 못 봤다.

_ 박연준, <모월모일>, 187p


희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픈 희희님이 너무 안쓰러워서 우리 엄살을 좀 부리며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것처럼 저녁에 <모월모일>을 읽는데 시인이 그런다. 엄살이 많은 사람과 아예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고. 시인의 관찰력이니 믿어볼 만하다. 그리고 내가 봐도 그런 것 같다. 몸빵 레벨 최고수인 동생은 생일인 오늘도 다양한 스케줄(남들이 정한)을 소화하느라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반면, 엄살 레벨 최고봉인 내 아버지는 손주를 못 본 지 무려 이 주일이 지났다고 너무 보고 싶다고~ 싶다고~ 엄살을 부려 잠이 부족한 동생가족과 저녁식사를 하셨다. 그러니 맞는 것 같다. 엄살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뉘는 것 같다.

나도 엄살을 못 가진 자다. 국립공원 관계자들의 인터뷰에서 태풍에도 끄떡없는 고목이 차분하게 쌓이는 눈에 넘어진다는 말을 읽고 놀란 적이 있다. 나도 가끔 그렇게 쌓인 피로에 넘어진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엄살을 못 가진 자들은 어떻게 스스로 피곤한지, 언제 쉬어야 할지 알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알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 그러니 엄살이 없는 사람이라면, 미리 쉬어야 한다. 피로가, 불편이, 어색함이 쌓이기 전에 조금씩 털어 주어야 한다.


04월 07일 금요일

자신이 맡은 프로젝트를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걱정에 망설이고 있다면, 한 시름 놓아도 좋다. 당신의 상상 속 흠 잡을데 없는 기준으로 판단했을 때는 잘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_ 올리버 버크먼, <4000주>

걱정에도 끝이 있었으면 좋겠다. 퍽퍽한 마음에 사전에 걱정이라고 검색했다. 잘못될까 불안해하며 속을 태우다는 뜻. 사전적 의미가 이렇다면... 이건 평생 매 순간 할 것 같은데 어쩌지... 또 걱정이 되네. 걱정과 나쁜 관계로 더 지내다가는 숨 막힐 것 같다. 방법을 찾고 싶다. 제이유 님이 어제 나눠주신 신형철 작가님의 말처럼 나도 내 과오에서 가장 처절하게 배울 것이니 내 안에 결정적 답이 있다고 믿고 생각해 보자.


<걱정에 대해 나에게 하고 싶은 말>

1. 걱정을 다 써봐. 머릿속에 있으면 두, 세 개라도 그게 엉켜서 더 크게 느껴질 거야. 서랍에 있는 전선들처럼 엉켜 있을 테니 하나씩 풀어서 고무줄로 묶어봐. 생각보다 몇 개 안 돼서 놀란다?

2. 쓴다고 걱정이 해소되지는 않지. 그렇게 쓴 걱정에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일단 해 봐. 그런데, 당장 해결을 바라고 하면 금세 힘이 빠질 거야. 또 실망해서 기분이 상해 버릴 테니 해결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마음으로 하면 좋겠어. 또 너무 헉헉대고 뛰어가면 얼마 못 간다. 조금 걷고, 조금 쉬어. 그래야 도착할 수 있어.

3. 걱정에도 강도가 있고, 현실이 될 확률이 있지 않겠어? 작은 걱정까지 큰 걱정으로 부풀려 무섭게 만드는 습관은 이제 버릴 때가 됐어. 그런데 마음속에 있는 걱정은 모두 고강도로 중요하고, 모두 100% 현실이 될 것 같잖아. 그러니 입으로 말해야 해. 친구든 동료든. 벽이든. 네가 말하면서 네 안의 판단자가 이건 그렇게 걱정할 거리가 아니잖아라고 즉석에서 판결을 내려줄 거야.


4월의 첫 번째 금요일 아침 9시. 개발 프로젝트 킥오프미팅을 했다. 함께 2023년 봄, 여름을 보내며 내가 세상에 선보이고 싶은 것을 함께 만들 귀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반가웠다. 3월 내내 고민했던 개발사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전문가들 곁에서 이제는 걱정도 덜 하겠지 싶었다. 이런 마음으로 킥오프미팅에 참석했다. 하지만, 킥오프미팅을 하며 확실히 깨달았다. 이 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고, 걱정도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번 미팅부터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어렵고 중요한 문제(보안 이슈, 아이디 관리 정책 등)가 수취인에 내 이름이 적혀 배달되었다. 앞으로 걱정하며 불안하게 살 내가 걱정돼서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과거의 나의 조언을 믿고 의지하며 천천히 걸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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