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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May 24. 2023

5월의 밑줄(1/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5월 08일 월요일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 낸 사람만을, 바꾼다.

_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재활병원 앞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는 생각보다 훨씬 밝은 얼굴로 차에 올라탔다. 생기 있는 목소리로 많이 기다렸냐고 내 안부부터 물었다. 아픈데도 곁에 있는 사람을 먼저 챙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모든 것을 멈추고 꼭 안아주고 싶다.

그와 햇살이 가득한 식당 창가에 자리를 잡고 보쌈을 주문했다. 창밖도 찬란했지만 그와의 대화가 5월의 햇살보다 더 반짝여 창밖을 볼 새가 없었다. 우리는 질병과 치료, 회복,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화는 가끔 무거웠지만, 입에 쌈을 미어지게 넣고 우물거리고 있자니 나중에 이 시간을 생각하면 또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책을 무척 좋아하고 지냈다고 내가 말했더니, 그도 이 책을 좋아한다며, 바로 이 문장을 말했다.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 낸 사람만을, 바꾼다.” 이 문장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고. 우리는 이 문장에 대해 한참 동안 말했다. 좋아하는 문장으로 오랫동안 이야기 할 수 있는 이 사이가 더 귀하게 느껴졌다.

그가 겪고 있는 이 사건이 그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를 하게 된다. 그는 분명 이 사건을 감당해 내리라고 믿고 있으니까.


05월 09일 화요일


사람이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은 그 이해가 이미 그의 생에 아무 의미가 없어졌을 때에야 가능한 걸까.

_ 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 123p


내 인생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타인은 고사하고 내 열정도, 공허도, 불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왜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걸까? 그래도 지난 일이나 사건은 가끔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 문장처럼 그 이해는 내 생에 아무 의미가 없다. 멀어진 친구도 돌아올 수 없고, 안 해본 일들을 다시 할 수도 없다.

엄마가 올해 칠순이 된다. 환갑 때는 나와 유럽 여행을 했다. 엄마는 딸과의 유럽 여행이 인생에 일어난 최고의 일인 듯 행복했지만, 엄마에게 내색도 못 했던/여행 내내 내가 질질 끌고 다니던 터질 것 같은 불안과 불행이 떠오른다. 며칠 전 택시를 타고 가다가 창밖을 보며 그 여행이 10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나에게 도착했다. 그리고 막을 새도 없이 그동안 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가 머릿속에 유성처럼 쏟아졌다. 얼마나 많은 기대와 다른 일들이 일어났고, 상상도 못 했던 일이 자주 일어났으며, 무엇보다 그것이 얼마나 짧은 시간이었는지가 놀라웠다.

2023년 5월의 나는 언제가 되면 이해가 될까. 어떤 봄으로 기억하게 될까. 이해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후회를 하게 될까?


05월 11일 목요일


우리는 모두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거의 뭐든지 하려든다. 하지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이 모든 회피 시도는 고통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_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62p


나를 해방시키는 말을 찾고 있다. 역시 찾는 것이 있으면 그것만 보이는 것인지, 오늘 아침에 잡아 읽기 시작한 (해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책에서 내가 어디에 나를 묶어놓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쾌락에 묶여있었다. 고통받고 싶지 않고 불안과 불행이 예상되는 곳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다. 이 조심하는 마음이 유배지의 가시덤불처럼 나를 막고 있었다. 내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에 너무 집중하고 고통을 회피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알 수 없게 힘이 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어린이가 심리적으로 연약하다고 여기는 것은 철저히 현대적인 사고방식이다. 고대에 어린이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축소성 성인으로 여겨졌다.”(같은 책, 52p) 이 문장을 읽으면서도 뜨끔했다. 나는 나를 연약하다고 여기고 있구나... 몰랐다가 이 문장을 읽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있었다.

책을 읽고 수영장에 갔다. 평소 같으면 임신 중이니까 수영도 조심해서 해야지, 너무 무리하면 피곤하지, 숨차면 쉬어야지 생각했는데 고통을 피하지 말자고 생각하니 그런 것보다 허벅지 근육이 땅기는 고통 속으로 더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평소 하지 않던 전속력 수영을 몇 바퀴하고 수영장을 나오는데 꼭 같은 사람인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05월 12일 금요일 인증글  


나는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생각할까?

_시바타 쇼, <그래도 우리의 나날>, 82p


오늘은 긴 말없이 문장만 두고 자러 갑니다. 자기 전에 생각을 한번 해보려고 해요. 나는 죽음을 앞두고 무엇을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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