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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Jun 06. 2023

5월의 밑줄(3/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5월 22일 월요일


상대가 여성이든 시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_ 존 윌리암스, <스토너>, 350p


열정이 뭔가 했더니 살아 있다는 느낌이구나. 언제 살아 있다고 느끼는지를 찾아가면 내 열정의 얼굴을 볼 수 있겠네. 자, 언제 살아 있다고 느꼈더라. (그런데 살아 있다는 느낌은 또 뭐지? 어려워서 죽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의 반대를 떠올려 보았다.)


1- 새로운 인식이 내 안에 들어와서 그간 보던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다시 태어난 느낌 비슷한 것을 느낀다.

2- 기대한 나를 초과했을 때 (내일까지 읽자고 계획한 책을 오늘 다 읽어 버리거나, 2km만 수영하고 가려고 했는데 2.5km 하고도 기운이 남을 때): 내 안에 있는 생명력이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3- 조카랑 순수한 대화를 하며 깔깔거릴 때: 지성과는 상관없는 순수한 대화에서 살아 있음을 강렬히 느낀다. 이뻐 죽겠다. 재밌어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오니까.

4- 남편과 감각의 세계에 있을 때: 이것저것 걱정이 많았다가도 오감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면, 역시 잘 사는 게 별게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5- 입이 벌어지는 풍경을 보거나 제철 한복판에 서 있을 때: 내가 자연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의 심장과 내 심장이 동시에 뛰고 있는 것을 느끼니까.


나머지는 오늘 더 생각해 봐야겠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네. 살아 있다는 기분에 대해서도 더 섬세하게 생각해 뵈야겠다.


05월 23일 화요일


저는 ‘어림’을 아낍니다. 놓고 싶지 않아요. 늙어 죽을 때가 되어도 몸 어느 구석에는 여전히 ’어림‘이 붙어 있길 바랍니다. “어린애 같이 왜 저런담”, 끝내 이런 말을 듣고 싶어요.

_ 박연준, <소란>, 9-10p


저도요! 꼭이요! 책을 읽다가 이렇게 외쳤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걸까요? 혹시 누가 알면 조금만 알려주세요. 잃어버린 것은 다시 찾아오기 너무 힘드니,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것을 잘 지켜봐야겠어요.


1- 어린애들은 좋아하는 친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한다고 말하잖아요? 저도 그래요. 숨기려야 숨겨지지 않아요. 제가 갑자기 좋아한다고 말해도 너무 당황하지 마세요.

2- 놀러 간다고 하면 전 날 잠이 안 와요. 주말에 기다리는 일정이 있으면 월요일부터 신나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들썩거려요.

3- 그림 그리는 시간이 좋아요. 아이들은 모두 예술가잖아요? 저는 애들처럼 잘 그리진 못하지만, 그림 그리며 노는 시간에는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어요. 최근에 다시 그리기 시작했는데 역시 잠시 다른 곳에 다녀온 것 같은 그 기분은 그대로였어요. 제게 남아있는 아이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4- 여름에 비 맞는 것이 왜 이리 좋을까요? 온몸이 다 젖을 때까지 걸으면서 감기 걸릴지도 모르는데 그냥 그렇게 비 맞고 있는 게 좋아요.

5- 잠들기 싫어요. 더 신나는 일이 오늘이 끝나기 전에 있을 것 같아요. 침대에 누워서도 잠으로 들어가는 시간이 아직도 어색해요. 더 놀고 싶어요.


내 안의 ‘어림’ 더 찾아볼래요. 그리고 간직할래요. 시간은 가끔 엄청난 마법을 부려서 잘 될지 모르겠지만요.


05월 24일 수요일

아무쪼록 잘 사는 일이란 마음이 머물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순간의 시간을 온전히 할애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_박연준, <소란>, 81p


잘 사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박연준 작가님은 마음이 머물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 시간을 온전히 할애해 주는 것일지 모른다고 하네요.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이 문장을 읽고 한참 생각에 잠겼어요. 그동안 잘 사는 일이란 대체로 내 마음을 억제하고 극기하면서 나와 싸우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마음이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알아채는 것도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제 마음은 어디에 머물고 싶어 했는지 이번 기회에 한번 생각해 보았어요. (미래에 마음이 갈피를 못 잡으면 지도로 보여주려고요!)


1- 집중에 머물고 싶고: 그것이 운동이든, 독서든, 청소든, 글쓰기든, 일이든, 수다든 상관없어요. 집중한 시간과 잘 살았다고 느끼는 시간은 대계 비례하더군요.

2- 좋아하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에 머물고 싶고: 누구 웃는 얼굴을 보고 싶나 가끔 생각해 봐요. 그 사람이랑 같이 웃는 시간을 보내면 잘 산다 느낌이 들더군요.

3- 산속 깊은 곳에 머물고 싶고: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는 깊고 깊은 옹달샘이 있는 산속에 들어가 있으면 정말 바랄 것이 없어요. (전생에 저 그 토끼였을까요?)

4- 처음이 나에게 도착하는 순간에 머물고 싶어요. : 처음 가보는 도시에 내릴 때, 처음 고모가 되었을 때, 처음 경험하는 음식을 먹었을 때, 심지어 처음 고산병을 겪었을 때 이럴 때 느껴요. 온전히 내 삶이 주는 것들에 머물고 있구나.


리스트를 늘려 봐야겠어요. 잘 사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니까 이 리스트를 이어가는 일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마음이 머물고 싶어 하는 것들에 더 집중해 볼래요.


05월 25일 목요일


생각해보면 가능이란 먼 것만은 아니었어요

_이규리, <상자> 부분, <당신은 첫눈입니까>, 14p


<이 시에게 고마운 것 두 가지>

1. 잊고 있던 내 인생이 말을 걸었다. 예전 남자친구들과의 약속, 이제는 절대 신지 않을 하이힐, 이제는 절대 입에도 대지 않을 알록달록 칵테일들. 그리고 그 과거를 상자에 넣어 시간의 아래층으로 보내는 상상을 했다.(인셉션 지하처럼)

2. 전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이 실감을 더 실감 나게 표현해 주어서 참 고맙다. ‘생각해보면 가능이란 먼 것만은 아니었어요’ 나중에 또 생의 청명이 모두 꺼져버린 시절에 이 문장이 한 번은 날 살려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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