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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Jul 01. 2023

6월의 밑줄(3/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6월 19일 월요일


빠른 속도로 깊게 생각하는 법을 나는 모른다.

_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388면


욕심이 많죠. 빠르면서 깊게 생각하고 싶어요. 그런데 작가님처럼 그렇게 하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아마도 불가능하겠죠. 몸과 마음은 습관처럼 또 나쁜 길로 미끄러집니다. 오늘도 빠른 속도로 깊지 않은 빠른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로 행동에 옮겼어요. (개발사에 왜 업무에 진척이 되지 않냐고 불만을 제기했는데, 내일 천천히 좋은 말로 이야기했어도 좋았겠다 생각을 합니다.)

원래 성격도 조급하고 안심을 못하는데, 요즘은 출산이 10주 밖에 남지 않아서 그런지 그 증세가 더 심해집니다. 그전까지 모든 것을 마치고 싶은 욕심이 또 생겨서요. 조금만 더 천천히,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 제가 한심합니다.


06월 20일 화요일


비행기 탈 때 아이디어가 가장 많이 샘솟는데 그건 공항에서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예요. 자신에게 심심할 틈을 주는 건 창작자에게 있어서 무척 중요한 일이랍니다.

_ 최혜진,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어떤 상황에서 아이디어가 샘솟으세요?

그런 상황이 딱히 있진 않지만, 저도 비행기를 탈 때가 맞는 것 같아요. 비행 중에는 이상하게 한 가지에 몰입이 잘 됩니다. (기내에서 영화 보다가 오열하는 것, 저만 그런가요?) 언젠가부터 저에게는 비행기를 타는 시간은 글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내 인생에 쌓인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서사화하거나, 비행기에서 내려 내가 기대하는 것들에 대해 적어보거나, 말도 안 되는 공상을 쓰기도 합니다.


심심할 때 뭐 하세요?

현대인이라면 도파민 중독은 기본이죠. 저도 그렇습니다. 심심한 것을 참지 못하죠. 남편이 3주 동안 부모님을 만나러 독일에 갔습니다. 냉장고에 음식이 줄지 않아 음식물 쓰레기를 만드는 죄책감과 함께 심심한 시간도 늘었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은 읽는 책들에도 마음을 빼앗기지 못하고, 마음이 끈 떨어진 헬륨 풍선처럼 이곳저곳을 배회하고 있네요. 다른 분들은 무료한 시간에 어떤 좋은 방법으로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06월 21일 수요일


요즘 나를 가슴 뛰게 하는 것

_ 서유미, <한 몸의 시간>, 134쪽


요즘 가슴 뛰게 하는 것, 있으세요?

여름비를 맞으며 개구리가 울던 어젯밤, 이 주제로 소설 쓰기 수업을 하셨다는 부분을 읽었어요. 책을 덮고 한참 동안 창 밖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어요. 걱정하는 일은 참 많은데, 가슴 뛰는 일이란 서랍은 텅 비어있더군요. 마음이 가난하구나 싶었어요. 근심보다는 희망을 더 품는 것에 대해 생각하며 오늘의 문장을 골라 보았습니다.


06월 22일 목요일  


호미 한자루를 사면서 농업에 대한 지식을 장악했다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_ 안도현, <호미> 부분,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18-19쪽


문장을 읽자마자 찔려서 속이 쓰렸다. 책 한 권 읽고 그 분야에 대해 다 아는 것 같고, 한 사람과 20분 정도 대화를 나누고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고 판단한 적이 너무 많다. (그리고 얼마나 자주 그것들은 부정확했는지...) 그렇다. 나는 겉 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험 보는 날에는 항상 엄마가 학교 가는 내 뒤통수에 “겉 넘지 말고!”를 외치셨지.

어제 드디어 50%가 진척된 테스트 url을 받았다. 오늘부터 꼼꼼하게 테스트를 하고 개발사에 피드백을 드려야 한다. 분명 겉 넘어 신중하지 못하게 테스트를 하겠지. 좀 더 세심한 눈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 이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또 겉 넘게 되지 않을까. 지금 준비하는 것은 단지 호미 한 자루일 뿐이고, 이제 땡볕 아래, 장마 속에서, 언 땅에 콕콕 점을 찍으며 가는 길일뿐이라는 것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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