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후나 Jul 10. 2023

7월의 밑줄(1/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7월 03일 월요일


책은 내가 아는 세상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내가 당연시하는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일깨웁니다. 그리하여 내가 누리는 안락에 감사하고 내가 겪는 아픔을 고집하지 않게 하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 원망 없이 받아들이게 하지요.

_ 김이경, <책 먹는 법>, 11쪽


늦게 찾아온 인연이라 더 반가운 인연도 있다. 2019년이니까 4년 전이다. 항상 친해지고 싶었는데, 핑계를 대자면 계기가 없었다고 해야 할지.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며 책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에 만나는 친구도 처음에는 꽤 어색한 사이이지 않나. 그래서 내 쪽에서 노력을 많이 했다. 일단 매일 만났고, 하는 이야기를 공들여 듣고 받아 적었다. 그리고 가끔 답장도 썼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는 나 이 친구랑 꽤 친해진지도? 이런 가당치도 않은 생각까지 든 것이다. 역시 3-4년 차 대리 때가 가장 자신감이 있었지.... 과거를 회상하며 반성타임을 가졌다. 나.. 요즘 너무 쉬운 책만, 내 생각과 비슷한 책만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꼭 읽어야겠다고 사놓았던 고전들이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지난 달만 해도 10권이 넘는 새 책을 사서 내 생각이 맞다는 것만 더 확고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다. 신형철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뼈가 아픈데, 내가 ‘공부’를 게으르게 하고 있다는 점을 일러주어 그렇다. 책을 읽으면 무얼 하나? 내 생각이 전복되지 않고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지 못하면 헛 짓일 뿐인데.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는 것을 아무 원망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독서를 더 자주 하자고 다짐해 본다.


07월 04일 화요일


문학은 사람을 보여 주는 가장 큰 창이니 거기 비추인 사람들을 읽기 바랍니다. 문학을 읽는 것은 사람을 읽는 것입니다.

_ 김이경, <책 먹는 법>, 147쪽


읽는 것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사람이다. 책 또한 작가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읽는다. 흥미로운 사람을 알게 되면 그 안에서 끊임없는 시와 소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문학이다.


어제 이 문장을 자기 전에 읽다가 반성타임이 찾아왔다. 침침한 조명 아래 책을 읽는다고 건방을 떨고 앉아있는 나를 보며, 바로 옆에 있는 사람(남편)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요즘 무슨 질문이 그 안에 쌓였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셀레여 하고 있는지 그를 읽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멍청하게도 사람을 읽지 못하고 책만 읽는 멍청한 짓거리를 하는 한심한 내 곁에 있는 남편이 안쓰러워, 잠시 남편을 꼭 안아주었다.


07월 05일 수요일


현재 내 삶의 어떤 순간순간이 미래의 시가 된다는 마음

_ 신형철, <인생의 역사>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렸던 임신이라 그런가 봅니다. 임신 기간 중 불편한 것이 있었지만 아무런 불평 없이 지냈습니다. 입덧도 아기가 건강하다고 편지를 보내주는 것 같아서 속은 불편해도 마음은 편했고, 냄새에 과민해진 것도, 숨이 찬 것도, 피부 질환도 훈장처럼 느껴지기만 했죠.


그러다 임신 9개월 차가 되니 몸이 정말 무거워졌어요. 누워있는 것이 불편해지면서 드디어 목구멍에서 불평을 토하고 있습니다. 배은망덕한 것이죠. 어제 새벽 3시에 아기가 왼쪽 골반을 발로 차서 헉 소리를 내며 잠에서 깼습니다. 물 한 잔을 마시며 생각했습니다. 불평할 때가 아닌데. 이 순간순간이 미래에 돌아보면 시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문장을 자주 보며 남은 50일을 지내보렵니다.


07월 06일 목요일  


나는 나를 기록하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므로 그래서

그냥 나대로 언니에 대해 쓸 거다

자두나무가 치마를 벗었다

_ 안도현, <자두나무가 치마를 벗었다>,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시집 중 60-61면


일기도 꾸준히 쓰고, 모닝 페이지도 쓰고, 문장 일기도 쓴다. 나에 대한 기록이 넘쳐흐른다. 홍수가 날 지경이다. 자의식 과잉이 아닌가 싶다. 나는 나에게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가?


아무런 기대나 실망 없이 오늘 아침에도 시 한 편을 필사하다가 멈추었다. 너무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닌지, 나는 주변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내 동생에게, 내 친구에게, 내 부모에게, 내가 살고 있는 경제나 사회에 대해. 나는 나를 기록하지 않을 작정이다. 그냥 나대로 내 주변에 대해 쓸 거다.


07월 07일 금요일


‘예술하고 앉아 있는’ 순간

_ 장수연,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 50페이지


여러분들은 언제 예술하고 앉아 있네라고 생각하시나요?

스스로 이런 생각 너무 자주 해서 이 책을 읽다가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플래그도 모자라 형광펜을 꺼내 쭉 그었습니다. 최근에 제가 예술하고 앉아 있던 순간들 입니다.


- 개발사에 전달할 검토시트 작성할 때: 최대한 간결하게, 그렇다고 무례하지 않게 검토한 내용을 쓰고, 플로우에 맞는 적당한 이미지를 골라 넣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1시간이면 끝낼 수 있는 일이었는데 검토시트의 말투와 디자인까지 고려하니 약 4시간이 걸렸네요. 사무실을 나오면서 생각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지? 전달만 잘 되면 되는데... 나 일 하는 게 너무 느린가?


- 토마토 마리네이드 만들 때: 토마토 머리에 십자를 내고 뜨거운 물을 부어서 껍질을 벗기고 있었습니다. 칼집을 내는 것도 정확한 깊이와 사이즈로, 껍질을 벗긴 토마토도 그릇에 각도를 맞추어 놓는 저를 보면서 (또 시간이 1시간이나 지난 것을 확인하고, 어깨가 빠질 것 같고 발바닥이 아픈;;것을 확인하면서), 나 또...뭐 하냐 싶었습니다.


엄마를 보다가도 생각을 자주 합니다. 엄마는 설거지를 해서 그릇을 건조대에 놓을 때에도 크기와 색을 고려해서 놓습니다. 참 피곤하게 사시는구나 싶다가도, 집 안의 전체적인 맵시를 보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서 이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김장할 때 이모들이 대충 씻어 놓은 배추도 이모들이 가고 나면 몇 시간에 걸쳐 가지런하게 다시 담는 것을 보면서 와, 진짜 ‘예술하신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매번 그런 엄마를 볼 때마다 왜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예술하고 앉아 있는 ‘ 순간에는 마법이 있습니다. 이 책 작가님 말대로 몰두와 성취가 가능하고 그것은 오롯이 내 것입니다. 그래서 이 ’ 예술하고 앉아 있는 ‘ 순간이 지독하게 중독적인가 봅니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 계속 ‘예술하고 앉아 있게’ 됩니다. 그동안 ‘예술하고 앉아 있는’ 제 종아리를 무척 많이 때렸습니다. 효율을 생각해. 이게 중요한 거야? 똑똑하게 살아! 이렇게 자주 말했어요. 그러다 어제 이 문장이 그 죄책감에서 저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저 이제 제 종아리 때리던 말들을 다 버릴 거예요. 이제는 ‘예술하고 앉아 있는’ 저를 기특하게 여기고, 마음껏 ’예술하면서‘ 살 거예요! 말리지 마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6월의 밑줄(3/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