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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후나 Jun 17. 2023

6월의 밑줄(2/3)

인생의 모든 답을 책에서

06월 12일 월요일


나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게 평안이나 행복과 깊이 연결돼 있다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다.

_ 서유미, <개의 나날> 중, 소설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 57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고 생각한 적 있으세요?

전 긴장하거나 집중하는 것과 깊이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문장을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평안이나 행복과 깊이 연결돼 있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가끔 배가 고프지 않은데 꼭 뭘 먹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건강한 음식이 아니라, 매운 떡볶이, 알싸한 양념치킨, 짜장라면, 치즈맛 도리토스 이런 고지혈증 유발 음식을 먹고 싶어요. 몸이 아니라 마음이 뭔가 먹고 싶은 상태죠. 일상에 분명 크건 작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있는 거고요. 제 식욕에 대해 조금 더 섬세하게 볼까봐요.


06월 13일 화요일


낙관의 논리는 ‘언제나 가능하다’는 것이고 희망의 논리는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_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132면


낙관적인 시선을 경계합니다. 그런데 희망적이고는 싶어요. 이 문장을 읽고 불가능하지 않다를 입에 달고 살아봐야겠어요. 생각도 습관일 테니 희망적 생각을 습관처럼 하게요!


06월 14일 수요일  


저는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섬세한 사람이 되어볼 수는 없을까 생각합니다.

_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책머리에서


섬세해지고 싶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정확하게 사랑하려면 섬세해져야 한다는 신형철 님의 말이 며칠째 나를 따라다닌다. 둔하게 사는 것이 편하고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사람도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고, 책도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다. 친구도 정확하게 애정하고 싶고. 나 스스로도 정확하게 사랑하고 싶다. 그러려면 섬세해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섬세해질 수 있는 것일까? 요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다.


06월 15일 목요일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_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26면


결혼을 (다시) 할 줄 몰랐다. 계속 누군가를 만나긴 했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나는 그들을 떠나야만 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는데, 이 문장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힌트를 준다. 그것은 욕망의 세계였나보다. 그래서 그들의 '있음'이 '없음'이 되는 순간이 오면, 그렇게 힘들지도 않게 작별했나 보다. 그런 경험만 20년을 한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은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


그러니 의문은 어쩌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는 지다. (하필 이런 남자에 빠져! - 역시 박연준 시인의 말처럼 사랑에는 '하필'이라는 부사가 어울린다. - "하필이라고 말을 하고 보니 참 좋네요. 어찌할 수 없음. 속절없음이 사랑의 속성일 테니까. 사랑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싶네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할게요." - 박연준, <소란>, 30면)


신형철 작가의 이 문장을 만나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의 '없음'에 실마리가 있겠구나. (항상 나는 ‘있음’에 집중했다.) 나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려니 쉽게 떠오르질 않는다. 하지만 여기에 결정적 단서가 있다고 생각하고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다. 나의 ‘없음’보다 더 궁금한 것은 남편의 '없음'. 어떤 결여가 만나서 우리를 결속시킨 것일까?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나와 남편의 결여는 도대체 무엇일까?



06월 16일 금요일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

_ 허수경, <꽃핀 나무 아래> 부분, 시집 <혼자 가는 먼집> 중


지금의 나를 이곳에 도착하게 만든 것은 환희와 기쁨이 절대 아니다. 비애와 눈물과 반성이다. 하지만 냉동창고 같은 곳들에서 그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허수경 시인이 말한 것처럼 나도 나아감을 믿는 바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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