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것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좋은 말, 듣기 좋은 말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만, 듣기 힘든 말은 얼마나 들을 수 있을까?
구지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나는 목소리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고, 개개인의 목소리를 '생명'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그러다보니 직업적 훈련으로서, 누군가가 말을 할 때에는 생명을 다루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듣는 훈련을 해왔던 것 같다. 다만 이 훈련은 내가 퍼실리테이터라는 옷을 입고 있을 때에는 익숙했지만, 내 일상에서는 그러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식사하며 대화를 하는데,
나의 사랑하는 사람은 늘상 말하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말했다.
이 말은 내가 자주 듣는 말이었고, 그의 반응은 매번 비슷했으며,
출구 없는 굴레를 매번 돌리고 있었다.
나는 훈련된 상태로 그의 상황을 공감하며 듣기도 하고,
그의 질문에 나의 생각도 이야기 해주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런데 이 날은 그 대화가 나에게 불편하게 다가왔다.
매번 같은 고민을 말하고 같은 대응을 하고,
한번은 좀 이 문제를 풀어가려는 시도를 해보면 좋겠는데,
속에서 답답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 날의 대화는 여기에서 끝이 났다. 나는 더이상 들어줄 마음이 없었고(듣기가 괴로웠고), 말하는 이도 나의 마음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이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그도 그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인데... 나는 분명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그가 어려움을 잘 헤쳐나가기를 누구보다 바랐지만, 나의 의도와 다르게 우리는 아쉬운 대화로 마무리를 한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할 수 있는, 그를 응원하는 방법은 그의 마음을 온전히 공감하며 듣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다음에 또 그를 만났고, 그는 또 같은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날은 내 마음에 답답한 마음이 생겨날 때, 그 마음을 알아보았고, 그 생각을 내려놓고,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저래가 아니라 당신은 그랬군요 그 마음이 일어났다. 내게 일어나는 다양한 마음과 생각을 내려놓고 그 사람의 마음을 듣다보니 이것이 경청이었겠구나 싶었다. 내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 마음을 더 활성화시키지 않았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생명인 나의 의견을 포기, 버렸다(죽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고 나니, 그제서야 그의 마음이 보였다. 나의 생명, 나의 목소리를 비운다는 것은 놀랍게도 다른 사람의 생명,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살리는 밀알과도 같다는 것을 나는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이런 대화 속에는 교제가 있다. 위로와 공감이 있고, 내가 남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가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그 힘을 얻는 과정을 보면서 내 안에 기쁨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 나는 그동안 경청을 허트로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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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이 말씀 구절들이 마음에 새겨지는 밤입니다.
깊은 밤, 지혜를 구하는 밤, 모두에게 평안한 밤이 되기를 바랍니다.